인생에서 '오버액팅'하지 않는 법 : 진짜 나로 사는 행복 | 고준 배우 | 타짜 나 혼자 산다 영화 | 세바시 1947회
하하하하
짱이라고 막 얼굴 뭐 했냐고,
되게 힘든데 안 힘든 척 할 수도 있고,
그 내면과 그것들을 표현하는 외면의 이 차이,
이 유격이 있을 때 오버 액팅이라고 합니다.
일상에서는 이걸 척이라고 또 정신과 전문의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단 한 가지밖에 없다고까지 얘기하세요.
1. ‘오버 액팅’과 우리의 일상
강연자는 연기 용어인 오버 액팅을 통해, 감정은 크지 않은데 표현만 과장되는 상태를 설명합니다. 이는 연기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흔히 나타나며, 우리는 힘들어도 괜찮은 척, 상처받아도 아닌 척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짚습니다.
2. 상처를 숨기며 살아온 어린 시절
어린 시절 화상으로 인한 신체적 상처와 그로 인한 차별과 공격은 강연자에게 깊은 트라우마와 자격지심을 남겼습니다. 그는 자신을 숨기고 ‘척하며’ 살아가는 법을 일찍부터 배웠고, 이는 정체성과 삶 전반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3. 인정하지 못한 자신, 그리고 반복된 실패
대학 진학 이후에도 자신의 약점을 직면하지 못한 채 도망치듯 살아가며, 연기 인생에서도 오랜 무명과 오디션 탈락을 겪습니다. 진짜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표현만 앞섰던 삶이 결국 한계로 돌아왔음을 깨닫습니다.
4. 받아들임에서 시작된 변화
30대 초반, 큰 결심으로 자신만의 연습실을 만들고 오랜 시간 스스로를 관찰하며 단점을 인정하고 수정하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비로소 성장의 감각을 느끼고, 배우로서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5. 타인을 돕는 삶과 또 다른 상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무명 배우들을 돕기 시작하지만, 오해와 배신으로 큰 마음의 상처를 입고 결국 신체적 병까지 겪게 됩니다. 이는 다시 삶을 멈추게 하는 큰 시련이 됩니다.
6. 예술을 통한 치유와 새로운 깨달음
정신과 치료와 함께 미술을 다시 시작하며, 강연자는 ‘척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통해 스스로를 회복합니다. 이 경험은 예술이 자신을 구원했음을 깨닫게 했고, 나아가 타인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곧 자신의 행복이라는 인생의 본질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합니다.


안녕하십시오. 안녕하세요.
네 고준희가 아니고 고준입니다.
고준

얼마 전에 나혼산도 나왔어요. 봤어요 아 감사합니다.
아 여러분 어 혹시 오버 액팅이란 말 아세요?

연기에서 이제 막 크게 연기하고 과장되게 연기하는 어 그럴 때 오버 액팅이라는 말을 쓰는데
오버 액팅을 잠깐 연기 분야에서 설명을 해 드리자면 어 감정이 있고 표현이 있잖아요.

어 근데 이제 감정과 표현의 어떤 유격 이 간극이 있을 어 그 공간을 오버에이킹 구간이라고 얘기를 해요.
그래서 뭐 흔히 그냥 크게 연기한다고 그래서 오버액팅이 아니고 감정은 적은데 표현을 크게 하는 거 그걸 오버액팅이라고 합니다.
연기에서는 감정이 어 외부 자극에서부터 온다고 얘기를 해요.
그래서 외부 자극이 뭐냐면 여러분들이 흔히 만나는 뭐 사람들이 될 수도 있고, 장소가 될 수도 있고, 그리고 냄새, 온도, 날씨 뭐 부모님 잔소리, 남자친구의 잔소리 뭐 이런 것도 다 자극으로 치부합니다.
그래서 외부 자극에 집중을 하다 보면 감정은 선물처럼 찾아와요.
그래서 감정이 저절로 생성이 되면 감정이 밀어내는 만큼 외면에 표현을 하게 되는 게 연기의 순서예요.
시퀀스입니다.
근데 보통 연기할 때 긴장을 너무 많이 하면은 외부 자극을 받아들이지 못해요.
자의식에 빠져가지고 오감이 싹 막힙니다.
그래서 상황을 인지를 못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상황에 맞지 않게 생뚱맞은 연기가 시작됩니다.
뭐 일단 우리가 일상에서도 예를 들을 수 있는데 여러분들 회식 같은 거 하시잖아요.
그러면 뭐 상사 분이 계시잖아요. 그럼 그분이 되게 재밌는 얘기를 해 주신단 말이에요.
그럼 정말 재밌잖아요. 진짜 재밌어요.
그래서 우리 막 박수를 칩니다.
하하하하.
짱이라고 막 정말 재미있었서 그런 거죠.
네네
그리고 또 여성분들은 이제 오랜만에 지인 여성 분을 만났을 때 이런 얘기 많이 하죠.
아 너무 예쁘다고, 얼굴에 뭐 했냐고, 어 요즘 사랑하냐고
뭐 이렇게 말씀 많이 하시잖아요.
진심이죠. 그죠?
어 세상에 예쁜 분들이 굉장히 많으세요.
우리가 아마 속마음의 진심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 내면과 겉으로 표현하는 외면의 이 간극 이 차이 이 유격이 있을 때 오버 액팅이라고 합니다.
아마 일상에서는 이걸 척이라고 또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어 우리가 아마 일상을 살면서 굉장히 많은 척을 하고 있지 않을까. 예를 들자면 또 뭐 그런 것들이 있겠죠.
뭐 되게 힘든데 안 힘든 척할 수도 있고,
저는 사실 어려서부터 굉장히 많은 자격지심과 트라우마 거기에 갇혀 살았던 친구였던 것 같아요.
실은 제가 태어나자마자 얼마 안 돼서 어 좀 사고를 당해서 몸에 크게 어 흉터가 생겼어요.
화상 환자였었어요.
그래서 어려서 남들이 다 입을 수 있는 반팔티를 입어본 적이 없습니다.
상처를 남에게 드러내지 않으려고 계속 숨었던 것 같아요.

근데 이게 좀 더 심해져서 어린 나이다 보니까 다른 아이들이 되게 솔직하게 얘기를 했어요.
너무 다르니까 나랑은 괴물이다.
저한테 뭐 돌팔매질도 할 때도 있었고 막 약 올리고
그러다 보니까 정말 사회와 이렇게 좀 소통하고 싶지가 않아 졌었던 것 같아요.
응 그러면서 화상 환자인데 공격을 많이 받았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이제 자꾸 숨기고, 척을 했죠.
안 공격 당한 척 , 안 상처받은 척
그렇게 하면서 저도 모르게 그게 유아기 때 아동기 때 생겼던 사건들이라
저도 모르게 그게 오랜 시간 동안 배에 왔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청소년기를 지나서 나름 저의 돌파구를 찾아서 어 대학에 진학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서울예대 영화과에 합격을 하게 돼요. 또 자격 지실이 또 시작됩니다.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안 했거든요.
항상 그 그림 그리고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하고 막 이랬었는데, 연기 전공자임에도 불구하고 수업에 들어갔는데
제가 영화과를 들어갔는데 영화과 수업은 거의 대부분이 영어로 돼 있어요.
그래서 수업을 안 들어갔어요. 또
또 어울리지 못했던 거죠.
계속 그런 시간을 계속 지내다 보니까. 계속 괴리가 되고 분리가 되는 거예요. 제 자신이
저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조금이라도 용기를 내서 받아들이고, 세상이 주는 피드백을 받아들이고 했으면 아마도 음 좀 더 빨리 개선되는 부분이 많았을 텐데
사실은 되게 두렵고, 괴롭고, 힘든데 안 그런 척, 괜찮은 척

그렇게 척을 오래 하다 보니까 거의 20대 10년을 계속 오디션에서 낙방하는 현상이 생겨요.
왜냐하면 아까 처음에 제가 초반에 얘기했듯이 연기는 외부 자극을 받아들여서 감정이 형성되고 그 감정이 밀어내는 만큼 표현을 한다. 이 순서를 해야 되는데 척의 달인이잖아요
오버액팅의 달인으로 성장을 해 왔기 때문에
아마도 그 순서에 맞지 않게 제가 오디션을 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계속 낙방을 합니다.
만약에 그때 다시 돌아갔다면 내 약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으면 오브 액팅을 하지 않았고
좀 더 빨리 여러분들에게 알려지는 유명한 배우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음 20대가 거의 끝나갈 무렵 30대가 다가올 때쯤 큰 결심을 하게 돼요.
그런데 저희 친형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합니다.
나는 지금부터 연기를 다시 탐구하고 연구해야 될 것 같아 무릎을 꿇고 바지 끄덩이를 잡아당기면서 부탁을 해서 2천만 원을 얻어서 저만의 감옥 연습실을 차리게 됩니다.
무려 7년이라는 시간을 칩거 생활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 연습실을 차려놓고 거기서 카메라로 저를 계속 찍어보기 시작해요.
근데 생각보다 정말 많은 단점들이 있더라고요.
보완해야 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어요.
단점을 카메라 모니터라는 어떤 시스템을 통해서 알게 되고, 받아들이기 시작을 했어요.
그래서 막 쭉 받아들이다 보니까 단점들이 개선하게 되고 점점점 좋은 성과가 생기게 됐어요.
그래서 20대의 10년은 사실은 굉장히 버티고 기다리고 언젠간 될 거야라는 생각으로 되게 고통스러운 10년이었는데
제가 연습실에서 제 단점을 까놓고 받아들이고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30대의 10년은 하루하루가 성장하고 어 내가 보완되는 기분으로 설레면서 고통스러웠거든요.
앞전이든 뒷전이든 고통스럽지만 뭔가 보람이 있는 30대였습니다.
그러면서 30대 중에 34살에 제가 타자 2라는 영화에서 몇 백 대 1을 뚫고 유령이라는 인물로 짜잔해가지고 합격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결국에 받아들임이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제 단점을 직면하고 그것을 수정해 나가고 보완해 나가는 그때
제가 또 이상한 호기심이 발동을 해서 다른 쪽으로 어떤 에너지를 틀어버렸어요.
저를 잘 되기 위해서 에너지를 쓰기보다는
제가 오랫동안 겪었던 무명 시절에 겪었던 이 서러움을 겪고 있는 친구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니까
이 친구들 너무 돕고 싶은 거예요.
왜냐하면 저는 반대로 제가 문명일 때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나 도움을 받아본 적이 별로 없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더 척이 세졌던 거죠.
너희들 도움 필요 없어 내가 알아서 할 거야 하면서 속은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한 번만 기회를 주시면 정말 잘할 수 있습니다.
이런 나날을 보냈었는데
그 친구들이 눈에 보이니까 그냥 못 지나가겠는 거예요.
그래서 그 친구들을 돕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돈을 버는 족족 무료 강의를 연기 강의를 하고 그리고 독립 단편 영화를 제작 연출 기획을 하면서 그 친구들의 포트폴리오를 찍어주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지금 되게 많은 배우들이 활동을 하고도 있고 그리고 되게 훌륭하게 자기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지금도 잘 지내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지만 어떤 소수의 친구들은 제가 원치 않는 상태가 돼서 뒤에서 험담을 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어떻게 해야 될까
그러면서 되게 큰 상처를 얻게 돼요. 마음의 상처를
그러면서 어 큰 병을 앓게 됩니다. 반이 마비가 와요.
한참 주가가 막 치고 올라가고 있어서 이제 저도 잘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딱 반이 마 배 오면서 시간이 정지가 됐어요.
그래서 여러 군데 병원에서 다시는 배우를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습니다.
정말 열심히 기도하고 매일같이 치료를 받아서 대략 한 2년 정도 치료를 받아서 나아서 다시 배우가 됐어요.

근데 겉모습은 많이 좋아졌는데, 속이 치료가 안 된 거예요.
마음을 더 이상 못 열겠는 그런 느낌
사람을 만나면 두려워지는 거
어렸을 때 내가 돌팔매질을 당했던 그런 것과 약간 비슷한 느낌이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정신과 선생님께서 저에게 권유를 하셨어요.
미술 치료를 병행해 봐라. (약물 치료 플러스)
그래서 잘 생각해 보니까 어렸을 때 그림 그리고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하고 이게 제 삶이었는데
그림 그리는 걸 까먹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용기를 내서 그림을 한번 그려봅니다.
옛날에 어차피 했었던 거니까
그래가지고 막 그리는데 정말 효과가 좋더라고요.
저를 만나는 저를 좋아하는 시간이 굉장히 많아졌어요.
척할 필요도 없고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잖아요.
캔버스에 내가 그리는 내가 멋대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거니까 어 그러다 보니까 조금씩 치유가 되더라고요.
근데 또 너무 신기하게도 제가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1년도 채 안 돼가지고 뉴욕 갤러리에서 초대를 받았어요.


자꾸 막 제 자랑하는 거 같아서 죄송한데 버킷 리스트 중 하나가 어 할리우드 진출하는 게 또 꿈인데 어 뉴욕에 갔으니까 비행기 타고 LA 한 번 들려서 그 내가 가고 싶은 어 할리우드을 한번 밟아봐야겠다.
그래서 또 가서 한 달 살이를 해요.
그러면서 한 달 살이 하는데 그 물가가 엄청 비싸거든요.
근데 고맙게도 거기서 LA에 사시는 한인 부부께서 굉장히 많이 도와주셨어요.
물질적으로도 도와주시고, 많은 지인분들을 소개해 주셨는데,
그분들이랑 이제 친해지고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니까 제가 질문을 하게 됩니다.
혹시 남을 도우면서 상처받아본 적 없냐고
저는 지금 마음에 상처가 있는 상태였었어서 그랬더니 있지 왜 없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저한테 그러는 거예요.
준아 남한테 상처받는다고 너무 주눅 들거나 꺾이지 마. 그 사람들이 널 놓친 거야.
와 근데 그 말을 듣는데 눈물이 왈칵 날 뻔했어요.

망치로 머리를 딱 만지는 기분이었어요.
뭐가 두려워서 이렇게 마음을 닫고 또 사람과 소통을 안 하려고 그러고 또 피해 다니려고 그러고 어 자꾸 숨기고 척하고
울어버리면 되는 거고 솔직하게 말하면 되는 건데 아무튼 그래서 그분들한테 굉장히 큰 깨달음을 얻고 다시 남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시작해서
최근에 제가 어 저의 과거 저처럼 무명 내지는 꿈을 이루지 못하는 친구들을 위해서 콘텐츠를 제작하고 연출하고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정신과 전문의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단 한 가지밖에 없다고까지 얘기하세요.

타인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만이 유일한 나의 행복이 될 수 있대요.
그래서 남을 도우려고 노력했던 그 시간이 내가 행복을 찾아가는 무수한 발걸음이었구나라는 생각이 요즘 듭니다.
음 네네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혹시나 나의 길을 찾지 못하거나 방황하거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들
그렇다면 나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지 나의 본질
그것을 찾는 시도를 멈추지 마세요.
나 자신과 솔직한 대화
나 자신과의 조우를 할 수 있는 시공간을 늘려 가시길 권장합니다.
미술처럼 나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그 일과 시간을 노려보시고 꼭 이루시길 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말인데 마지막으로

꿈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을 때 더욱 분명해진다.
밖을 보는 자는 꿈을 꾸지만 안을 들여다보는 자는 깨어난다.
네 많이들 깨어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더 좋은 작품으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고준희가 아니고 고준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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