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서 뭐가 그냥, 이렇게 딱, 끊기는 느낌이더라고요."
전화기를 끄고 집에 가 버렸습니다. 2013년 여름부터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무슨 마가 끼었나. 나가는 게 싫더라고요. 나중에 생각해 보니 — 대인 기피증이었던 것 같습니다.
쉽게 비관하지 말자. 쉽게 들뜨지 말자. 그럼 어떻게 살아야 되죠?
📌 한 줄 요약
쉽게 비관도, 쉽게 들뜨지도 말자. 사표 낸 그날이 인생에서 가장 운 좋은 날이었다는 어느 소설가의 회고.
⭐ 추천 점수 : ★★★★½ (4.5 / 5)
👥 추천 대상
· 사표 낸 직후 후회와 두려움에 잠 못 드는 분
· 1~2년째 진로·커리어가 잘 안 풀리는 것 같은 분
· "나는 왜 운이 없을까" 자주 생각하는 분
📑 목차
1. 강연자 소개 — 운 없는 날 한가운데 있는 분들에게
2. 2013년 8월 21일 — 그냥 울컥해서 낸 사표
3. 전화기를 끄고 집에 가 버린 일주일
4. 절박했던 1년 3개월, 두 번의 실패
5. 363일 동안 번 돈 30만 원, 그리고 수림문학상
6. 인생 최고의 운 좋은 날 + 두 가지 교훈
7. 차분한 희망 + 📝 블로거 후기와 추천 자료
"운 없는 날" 한가운데 있는 분들에게
안녕하세요. 소설가 장강명입니다.
살면서 운 없는 날이 좀 있잖아요. 그런 운 없는 날이 계속 이어지기도 하고요. 그런 시간에는 어떻게 지내세요? 무슨 생각을 하세요? "나 왜 이렇게 지질히 운이 없냐" 하면서 침대에서 잠 못 주무신 적, 있으세요?
혹시 지금 이 순간 그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을 위해, 제 이야기 하나를 공유해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정말 운이 없었다고 생각한 1년, 정확히는 363일 동안의 이야기입니다.

2013년 8월 21일 — 그냥 울컥해서 낸 사표
저는 소설가가 되기 전에 11년 차 신문 기자였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표를 내고 전업 작가가 됐다고 하면 "용기가 대단하다, 부럽다" 같은 말을 듣곤 하는데, 정말 쑥스럽습니다. 대단한 결심이나 용기가 있어서가 아니었거든요. 그냥 그날, 울컥해서 냈습니다.
아무 계획도 없었어요. 그날 아침 출근할 때까지도 "내가 오늘 사표 낼 거야" 이런 거 몰랐습니다. 2013년 8월 21일, 되게 더운 날이었습니다.
회의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기자라는 직업 자체에 회의가 있었고, 회사가 가는 방향도 마음에 안 들었고, 건강도 좀 안 좋았고, 그때 소설가로 데뷔는 한 상태였는데 정작 소설 쓸 시간이 없는 것도 불만이었습니다.
그날은 하루 종일 데스크와 싸웠습니다. 제가 쓴 어떤 기사를 데스크가 "이렇게 고쳐라" 했는데, 그렇게 하려면 신뢰 관계가 있던 취재원의 뒤통수를 세게 때리는 기사가 되는 거였어요. 오전 내내 통화하면서 "선배, 이렇게 쓰면 안 돼요" 빌어가며 양보해서 마감을 했는데 — 6시 10분, 전화가 옵니다. "9시까지 원래 지시한 방향으로 다시 고쳐라."
그 전화를 받는 순간, 머리에서 뭐가 그냥 이렇게 딱, 끊기는 느낌이더라고요. 아, 내가 이 회사 이제 못 다니겠다.
전화기를 끄고 집에 가 버린 일주일
그래서 어떻게 했냐면 — 그냥 전화기를 끄고 집에 가 버렸습니다. 집에 가서 메일로 사표를 썼고, 그 전화기를 켜지 않은 채로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무책임한 행동이었죠. 그날 써야 했던 기사를 펑크 낸 거고, 4명짜리 팀이 갑자기 3명이 4명 몫을 해야 했고, 제가 쓰기로 돼 있던 사안들도 다 다른 동료가 급히 떠안아야 했을 겁니다.
저도 막연하게 퇴사를 꿈꿔본 적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로망은 "할 일 다 정리하고, 이러저러해서 나갑니다 하고 인사한 뒤, 선후배들이 \"고생했다\" 축하해주며 떠나는" 모습이었어요. 전화기 끄고 잠적해서 도망치듯 나가고 싶지는 않았죠.

그 일주일 동안 밤에 누워 있으면 눈이 감기지가 않았습니다. 무섭고, 두렵고, 무엇보다 부끄러웠어요. 12년 차 기자가 다른 회사로 재취업하기는 어렵습니다. 소설가로 데뷔는 했지만 소설로 돈을 벌고 있던 것도 아니었고요.
진짜 문제는 부끄러움이었습니다. 밤에 누워 있으면 저 자신을 막 때리고 싶었어요. 밖에 나가면 모르는 사람이 저를 보고 손가락질을 할 것 같았거든요. "저기, 무책임한 애 간다고. 갑자기 전화기 끄고 회사에서 나가가지고 — 저기 간다고." 그래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혹시 길에서 회사 동료를 마주칠까 봐 나가는 게 싫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게 대인 기피증이었던 것 같아요.
일주일 후 전화기를 켰습니다. 진동 모드였던 전화기가 5분 동안 부르르 떨었어요. 멈출 줄 모르고 계속 떨더라고요. 문자가 툭툭툭툭 뜨는데 — "강명아, 다시 돌아와라" "걱정하지 말고 와라" "선배, 돌아오실 거죠?" "강명 씨, 몸 괜찮죠?" 보면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아, 내가 회사 생활을 그렇게 허투루 하지는 않았구나. 이렇게 무책임하게 나왔는데도 걱정해 주는 동료가 있었구나.
그래도 일주일이 지났고, 결국 돌아가지 않고 사직 절차를 밟았습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쓰고 싶었던 소설을 쓰자. 2014년 말까지만 한번 써보자, 그때까지 성과를 못 내면 반드시 다른 직업을 얻겠다." 아내한테 호언장담을 하고, 방에 틀어박혀 글만 썼습니다.
절박해서 쓸 수 있었던 — 1년 3개월, 장편 소설 세 편
아침에 일어나서 잘 때까지 계속 썼습니다. 사람이 절박하니까 진짜 집중력이 엄청나게 발휘되더라고요. 지금은 그때처럼 쓰라고 해도 못 씁니다. 그렇게 절박하지 않거든요.
1년 3개월 안에 소설가로 성공할 가능성이 있을까? 사실 제가 저를 안 믿었습니다. 그냥 실력 같은 희망을 품고 두 가지에 도전했어요.
하나는 상금이 1억 원짜리 판타지 문학상. 거기 응모할 장편 소설을 2013년 가을부터 2014년 봄까지 열심히 썼습니다. 또 하나는 출판사 투고 — 이게 베스트셀러가 되면 좋겠다 하며 또 한 편을 썼고요.
"이게 뭐여" — 1억 문학상은 폐지됐고, 출판사는 거절
봄이 됐는데 그 판타지 문학상 공지가 아무리 기다려도 안 뜨는 거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 제가 사표를 낸 그 해까지만 운영하고 폐지된 상이었습니다. 폐지됐다는 사실을 공지조차 안 해서, 저는 폐지된 상을 위해 계속 원고를 썼던 거예요. "이게 뭐여" — 멘붕이었습니다.
출판사 투고 원고는요. 그때까지 제 책을 낸 적 있는 출판사 한 곳에 보냈는데, 한 달 뒤 검토 결과를 듣자고 부르더니 — 별로라서 출판 못 하겠다는 겁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2013년 여름부터 2014년 봄까지 진짜 아무것도 안 하고 장편 소설 두 편을 썼는데, 둘 다 헛고생이 된 거죠. 진짜 우울했습니다. 2013년 여름부터 이렇게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무슨 마가 끼었나.
363일 동안 번 돈 — 30만 원
그래도 뭘 합니까. 백수가. 그냥 또 씨, 이러면서 또 소설을 썼습니다. 절박한 상태는 그대로였고요.
2014년 여름이 왔습니다. 사표 낸 게 2013년 8월 21일, 그날부터 2014년 8월 18일까지 — 363일 동안 좋은 소식이 단 하나도 없었어요.
그 363일 동안 번 돈을 다 합치니 30만 원이었습니다. "내가 진짜 2013년 8월 21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절대 사표 안 낸다. 아무리 비굴해도, 언제 어디서나 무릎 꿇을 수 있는 그 용기 — 그 용기를 발휘하겠다."

"이메일로도 접수가 된대요" — 수림문학상에 그냥 보냈는데
그때 수림문학상이라는 문학상 접수 공고가 떴길래, 출판사에서 거절당한 그 원고를 거기에 보냈습니다.
만약 그 문학상이 원고를 출력해서 우편으로 접수받는 곳이었으면 안 보냈을 거예요. 대부분의 문학상이 그렇거든요. 그런데 이 문학상은 좀 특이하게 이메일 접수도 되더라고요. 1년 동안 30만 원 벌었던 저는 우체국 가기도 귀찮고, 우표값도 아깝고, 출력소 가는 것도 싫었습니다. "어차피 심사위원들이 좋아할 원고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출판사에서 거절당한 그대로, 한 글자도 안 고치고 그냥 보냈습니다. 그런데 — 당선이 됐어요.
인생 최악의 운 좋은 날 — 2013년 8월 21일
원래 판타지 문학상에 보내려고 썼던 원고는 다른 출판사에 보냈는데, 이듬해에 영화 판권이 팔리고 SF 문학상도 받았습니다. 두 편이 다 망했다 생각해 세 번째로 쓴 원고도 다른 출판사에 보냈는데, 그것도 출간이 됐고 영화 판권이 팔리고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그게 『한국이 싫어서』라는 소설입니다.
되게 이상하죠. 저는 2013년 8월 21일이 제 인생에서 제일 운이 없는 날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때까지. 그런데 지금 돌이켜 보면 — 그날이 제 인생에서 제일 운 좋은 날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전업 작가를 할 정도로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렇게 데스크와 싸우다가 울컥하지 않았으면 아마 정년까지 회사를 다녔을 겁니다. 그랬더라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도 못했겠죠.
1년 3개월 동안 그렇게 절박한 상태로 글을 쓴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 노렸던 그 판타지 문학상을 바로 받았거나, 첫 출판사에서 바로 "이거 좋습니다" 했으면 그 절박함은 사라졌을 거예요. 절박해서 그 짧은 기간에 장편 세 편을 쓸 수 있었던 거고요.
제가 불운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사실은 다 감사한 행운이었던 거죠. 그 행운이 없었다면 제 능력을 시험해 볼 기회조차 없었을 겁니다.

두 가지 교훈
제가 뭐 엄청난 불행이나 큰 비극을 극복한 사람은 아니라서 이런 말씀 드리는 게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얻은 교훈 두 가지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 불운을 겪는 것 같다고 해서 쉽게 비관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불운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사실은 행운일 수 있거든요. 오늘 정말 나쁜 하루였다, 요즘 지질히 일이 안 풀린다 — 그 순간에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그런데 그날이, 그 기간이 정말 불운한 시간이었는지 아닌지 즉시 알 방법은 없더라고요. 행운을 누리고 있어도 잘 모릅니다.
두 번째는 반대인데요. 행운이 찾아왔다고 해도 쉽게 들떠서는 안 됩니다. 같은 이유죠. 지금 행운이라 생각하는 것이 나중에 보면 행운이 아닐 수도 있거든요. 복권에 당첨된 뒤 불행해진 사람들 이야기, 많이 들어보셨죠? 그분들이 복권에 당첨됐을 때 "이 사건은 행운이 아니라 위험이다"라고 받아들였더라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을 겁니다.
차분한 희망, 그리고 — 인생 모른다
쉽게 비관하지 말자, 쉽게 들뜨지 말자. 그럼 어떻게 살아야 되죠?
차분하게 희망을 품고. 희망을 품고 차분하게.
2013년과 2014년에 예상치 못한 행운으로 인생 경로가 바뀌는 일을 경험하면서, 저는 "차분한 희망"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새겼습니다. 사람이 조금 겸허해진 것 같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드린 내용,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인생 모른다. 인생 모르겠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그 사실이 참 좋습니다. 그 덕분에 차분한 희망을 품을 수 있으니까요. 좋지 않나요?
인생, 계속 몰라야겠다. 인생, 계속 모르고 싶다. 모르겠네, 인생. 사랑하는 많은 분들, 응원합니다.
마음에 차분한 희망이 깃드시길 바랍니다.
✍️ 내가 밑줄 친 세 문장
"쉽게 비관하지 말자. 쉽게 들뜨지 말자. 그럼 어떻게 살아야 되죠? 차분하게 희망을 품고."
"그 행운이 없었다면 제 능력을 시험해 볼 기회조차 없었을 겁니다."
"인생 모른다. 인생 모르겠더라구요. 그리고 저는 그 사실이 참 좋습니다."

📝 블로거 한 줄 후기
강연을 다 보고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단어는 '차분한 희망'이었다. 절박해서 한 발 더 디딘 그의 1년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 내가 겪는 "운 없는 시기"가 다르게 보인다. 지금 이 불운이, 보이지 않는 행운의 시작일 수도 있다는 가정 하나만 품어도 어제와 오늘이 달라진다.
💡 오늘, 단 한 가지만 해본다면
오늘 밤, 최근 한 달간 "나는 운이 없다"고 느꼈던 순간을 노트에 딱 한 가지만 적어보자. 그리고 그 옆에 한 줄을 더해보자.
"이게 만약, 지금 보이지 않는 행운의 시작이라면?"
📚 더 읽어보면 좋을 자료
·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 강연에서 베스트셀러로 언급된 그 책. 사표 후 1년의 절박함이 만들어낸 작품.
· 장강명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SF 문학상 수상작. 영화 판권이 팔린 또 다른 결실.
· 유튜브 검색: "세바시 장강명", "차분한 희망", "사표 1년차" 키워드로 더 깊게 들어가 보기.
이 글이 위로가 됐다면, 공감 ♥ 한 번 부탁드립니다. 비슷한 시기를 지나는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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