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땅의 야수들』·『밤새들의 도시』 저자 김주혜가 세바시 X 유네스코 토크 특집 '국경을 넘은 연대 : 정체성의 확장' 세 번째 회차에 서서 풀어낸 17분.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장 회상부터 144개국에 수출된 한국 독립운동 소설, 일본계 미국인 독자의 치유, 100년 만에 한반도로 귀환한 호랑이, 그리고 "5년이 아니라 30년 미래를 바라보라"는 피닉스 펀드 대표의 한 마디까지.
📌 한 줄 요약
세계 시민성은 어디에 살고 몇 개 언어를 쓰느냐가 아니라, 인간과 생명과 지구에 대한 책임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가의 문제다. 소비가 아니라 창조, 5년이 아니라 30년 미래를 바라보는 일.
⭐ 추천 점수
★★★★★ 5/5
유네스코 특집 3회차 — 이재성 선수(축구), 알파고 시나씨(언론·일상)에 이어 김주혜 작가의 문학 시선. "한 권의 책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톨스토이 상금 전액을 한국 호랑이·표범 보전에 기부한 작가가 답하는 17분. 책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반드시.
👥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① 문학·예술이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회의하는 사람 — 한 일본계 미국인 독자가 한국 독립운동 소설에서 평생의 죄책감을 치유받은 이야기
② 자연 보전·동물 보호에 관심 있는 사람 — 100년 만에 한반도 백두산으로 돌아온 호랑이와 한국범보전기금 활동 이야기
③ 단기 성과에 지친 사람 — "5년이 아니라 30년 미래를 바라보세요"라는 한 마디가 묵직하게 박힙니다
📑 목차
1. 톨스토이 문학상 + 한강 노벨상 — 한국 문학에 위대한 날
2. 세계 시민성은 소비가 아니라 창조 — net positive의 삶
3. expat·immigrant·refugee — 차이는 종잇장 하나
4. 『작은 땅의 야수들』 144개국 — 브라질 독자와 일본계 미국인 독자
5. 한국 호랑이·표범 보전 — 100년 만의 한반도 귀환
6. 자연은 국경을 모른다 — 30년 미래를 바라보는 책임
7. 한 권의 책이 세상을 바꾸는가 — 피닉스 펀드의 가르침

세계 시민성은 결국 얼마나 깊이 연결되었느냐의 문제입니다
1. 톨스토이 문학상 + 한강 노벨상 — 한국 문학에 위대한 날
김주혜 작가가 강연을 연다. 지난 가을 자신의 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이 톨스토이 문학상을 수상해 모스크바에 초청받았다고. 야스나야 폴랴나는 톨스토이 백작 가문이 대대로 물려받은 영지. 첫날부터 레프 톨스토이의 고손자 블라디미르 톨스토이와 러시아 문학계 인사들이 작품을 극찬했다.

"긍지 높은 러시아 문학계에서 어떻게 한국 문학인의 지성과 인격을 잘 대표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한 가지 솔직한 고백을 덧붙인다. "톨스토이는 많이 읽었는데 도스토옙스키는 잘 모르는 게 들통날까 봐 모스크바 가기 직전에 1,000페이지 넘는 카라마조프 형제들을 황급히 읽었다"고 — 며칠 뒤 대화 도중 카라마조프가 자연스럽게 나와 손 들고 아는 척한 기억이 난다고 한다.

시상식 날, 호텔에서 옷을 입고 있는 김주혜에게 블라디미르 톨스토이의 장녀 아나스타시야로부터 문자가 왔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기사와 함께 "한국 문학계에 있어서 오늘은 위대한 날이다"라는 메시지. 그 순간 김주혜는 자신이 러시아 문학계뿐 아니라 세계 문학계에서 한국을 대표하고 있다고 느꼈다.

몇 시간 후 볼쇼이 극장 무대에서 한 시상식 연설은 자기 개인이 했다기보다는 한국 문학인으로서 세계에 전달한 메시지라고 한다. 전쟁과 고립주의로 인류 전체가 양극화되는 요즘, 러시아에서 문학의 본질이 왜 평화와 인도주의일 수밖에 없는지 증언한 그 날은 김주혜에게 세계 시민성을 실천한 중요한 기회였다.

2. 세계 시민성은 소비가 아니라 창조 — net positive의 삶
김주혜는 한 줄로 정리한다. "세계 시민성은 해외 여행을 많이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심지어 국제 뉴스를 많이 본다고 해서 세계 시민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여행도 뉴스도 외국 문화도 자기중심적으로 섭렵하면 결국 '좀 더 고급스러운 소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세계 시민성은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며 그 치유에 기여할 때 비로소 세계적 소비자가 아닌 세계적 창조자가 됩니다."

수학적 표현도 덧붙인다. 우리의 삶이 세계의 net negative가 아니라 net positive가 될 때, 우리가 가져가는 것보다 더하는 것이 많을 때 우리는 세계 시민이 된다고. 국적·인종·언어를 뛰어넘어 인간의 존엄성을 우선시하고, 그 존엄성을 훼손하는 상황에 책임을 지는 것 — 그것이 세계 시민성. 그리고 이 책임은 인간을 넘어 자연까지 포괄해야 한다고 한다. "21세기 세계 시민의 가장 큰 과제는 80억 인류뿐 아니라 후손·동물·식물 모든 생명을 지탱할 파란 행성을 보존하고 남기는 것."

3. expat·immigrant·refugee — 차이는 종잇장 하나
얼마 전 BBC 프로그램에서 아프리카 난민 이슈를 다룬 소설에 관해 토론할 때의 이야기. 김주혜는 자기 배경을 설명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교육받고 지금은 런던에 거주. 그 순간 그가 느낀 것은 독일에 사는 영국인 록 뮤지션 출연자와 자신은 이민자가 아니라는 사실. 영국이 받아들이건 배척하건 상관없이, 원하면 언제든 다른 나라로 가서 살 여권과 자유가 있다.

이런 사람을 영어로 expat이라 한다. 한국어 동일 단어는 없다. 그런데 expat은 주로 해외에 거주하는 백인을 연상시키기에, 김주혜는 오랫동안 이 단어에 인종차별 의식을 느껴왔다고 한다. 본인은 약 17년간 철저히 이민자(immigrant)로 살았기 때문이다. expat에 비해 이민자는 이주가 어렵고 차별·억압을 받을 확률이 훨씬 높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프리카·중동에서 전쟁과 기아를 피해 탈출하는 refugee(난민)들이 가장 많이 차별·억압받는 비극적 현실.
김주혜는 정리한다. "이 세 명칭 — expat, immigrant, refugee — 이 결코 본질적으로 다른 부류가 아니고 그 차이는 종잇장 하나처럼 얇다. 태생·국적·거주지와 상관없이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걸 체험으로 배웠습니다."

4. 『작은 땅의 야수들』 144개국 — 브라질 독자와 일본계 미국인 독자
김주혜의 데뷔 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은 한반도 100여 년 전 독립운동에 관한 작품이다. 2015년 집필을 시작했을 당시 한국 역사 소설은 영미권 출판계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저자 이름 석 자부터 등장인물·배경 철학까지 지극히 한국적인 작품을 세계 독자를 위해, 세계를 향해 썼다. 무모한 발상이었지만 소설은 예상을 뒤엎고 144개국에 수출되어 인터내셔널 베스트셀러가 됐다.

기억에 남는 독자가 셋이라고 한다. ① 브라질의 한 독자 — 자기 나라가 겪고 있는 정치적 억압 속에서 이 책을 읽으며 영감과 용기를 얻었다고 전했다. 그에게 한국의 독립운동사는 단순한 타국의 역사가 아니라 지금 자신의 삶을 살아갈 용기를 주는 서사였다. "국경을 넘는 문학은 단순한 지적 즐거움이 아니라 정신적 양식이자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

② 콜로라도에서 버클리대까지 김주혜를 만나러 온 미국 독자 — 그분은 오기 전에 『작은 땅의 야수들』을 두 번째로 읽었다. 현재 미국의 이민자·이주자 억압 정치 상황에 견주어 보니 더욱 큰 울림이 있었고 희망을 준다고 말했다.
③ 가장 기억에 남는 일본계 미국인 독자. 김주혜의 차기작 『밤새들의 도시』를 먼저 애독하고서야 『작은 땅의 야수들』을 읽게 됐다고 한다. 원래 그분은 평생 동아시아 근대 역사를 회피했던 분. 일본의 만행에 극심한 수치심과 죄의식을 느꼈기 때문. 친할아버지는 1937년 남경에서 일본 제국군으로 싸우다 전사했고, 아버지는 그 수치심으로 알코올중독에 시달리다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그분이 김주혜의 차기작에 감동받아 망설임을 극복하고 한국 독립운동 소설을 읽게 된 것이다. "한일 양쪽 인물로 서술되는 사랑·인간성·우정에 공감했고, 마음속 깊은 치유를 경험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의 책은 나를 감동시켰어요. 나는 미래의 한국이 통일을 이루어 하나의 독립된 국가가 되기를 바라며, 한국·중국·일본 사이에 평화로운 관계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5. 한국 호랑이·표범 보전 — 100년 만의 한반도 귀환
김주혜의 책들은 각각 호랑이와 표범 보전·소말리아 개발·민간 풀뿌리 동물 보호에 수익금 일부를 보탠다. 그중 가장 오래된 활동이 한국 호랑이·표범 보전 사업. 2021년부터 기부와 홍보, 2023년부터는 한국범보전기금 홍보대사로 일하고 있다.
한국 호랑이는 약 1세기 전 일제강점기의 민족정신 말살 정책으로 한반도에서 절멸됐다. 그러나 우리 조상이 똑같이 "범"이라 일컬은 표범은 러시아·중국·북한 접경 지대에 아직 살아 있다. 약 600여 마리 호랑이와 120여 마리 표범이 온갖 위험을 물리치고 꿋꿋이 남아 있다. 더불어 러시아·중국 보호구역이 포화 상태라 호랑이 개체가 본래 고향인 한반도로 넘어오고 있다.

2024년에는 드디어 국경을 넘은 호랑이가 북한 쪽 백두산에서 목격됐다. 100여 년 만에 철조망·강·철도 등 치명적 장애물을 넘어 호랑이가 한반도에 귀환한 것이다. 한국범보전기금은 러시아·중국 생태학자들과 협력해 야생동물 유전자 연구·밀렵 방지 시스템·생태계 통로를 한반도까지 잇는 작업을 하고 있다. "수십 년째 고립주의와 정치적 갈등의 시대에 국적을 넘은 민간단체와 과학자들의 협력은 현대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범인류적 연대를 보여줍니다."
6. 자연은 국경을 모른다 — 30년 미래를 바라보는 책임
한국 범 보전 활동을 하며 김주혜가 절실히 깨달은 한 줄. "자연은 국경을 알지 못합니다. 인간이 정한 정권·이념·경제적 이해관계와는 무관하게 생명은 본능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책무입니다."

세계 시민성이 인류 사이의 연대에만 국한되지 않고, 지구라는 공동의 집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에 대한 책임에서 비롯된다는 것. 누군가는 여러 나라를 오가며 살아도 자기만을 위한 삶을 살고, 누군가는 평생 한 도시에 살면서도 온 인류를 향해 마음을 열고 책임을 다한다. 세계 시민성은 거주지나 언어 수가 아니라 '범인류적 책임'에서 판단된다.
7. 한 권의 책이 세상을 바꾸는가 — 피닉스 펀드의 가르침
김주혜는 종종 받는 질문을 던진다. "문학이 세상을 정말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한 권의 책이, 단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까?"
그는 한 일화로 답한다. 2021년 초 『작은 땅의 야수들』 계약 후 선인세를 받고 처음으로 목돈을 뜻깊은 일에 기부하려 했다. 러시아 비영리 호랑이 보전 단체 피닉스 펀드와 화상 채팅을 했다. 신바람이 나서 대표에게 5년 계획을 물었다. 그러자 피닉스 펀드 대표의 답이 김주혜를 멈춰 세웠다. "앞으로 5년 성과를 바라보고 기부하지 마십시오. 지금의 마음이 진심이면 앞으로 20년, 30년 뒤의 성과를 바라보고 꾸준히 지원해 주세요. 그러면 진정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그 순간 김주혜는 고개가 수그러졌고 자신의 성급함을 뉘우쳤다. 그렇게 30년을 바라보며 차분히 노력을 더해 5년이 지난 지금, 처음 5년 계획을 물었을 때는 상상도 못 한 보전 성과가 있었다고 한다. 톨스토이 상금 전액을 러시아 국립공원과 한국범보전기금의 공동 연구에 기부했고, 한국 호랑이가 한국의 자연유산이며 대한독립의 상징임을 세계에 각인시킨 점 등.
김주혜의 마무리. "만약 지금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자신의 책임의 범주를 개인이 아니라 세계로 넓히고, 5년이 아니라 30년 미래를 바라보고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꾸준히 기여하신다면 세상은 분명히 바뀝니다."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것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는 이들에게 애정과 관심을 나눠 단 하나뿐인 파란 행성의 밝은 미래를 같이 이끌어 가기를 바란다고.
✍️ 내가 밑줄 친 세 문장
"세계 시민성은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며 그 치유에 기여할 때 비로소 세계적 창조자가 됩니다."
"세계 시민성은 결국 우리가 얼마나 멀리 나아갔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깊이 연결되었느냐의 문제입니다."
"앞으로 5년 성과를 바라보고 기부하지 마십시오. 지금의 마음이 진심이면 20년, 30년 뒤의 성과를 바라보고 꾸준히 지원해 주세요."
📝 블로거 한 줄 후기
김주혜 작가의 17분이 그 회의에 답을 줍니다. 일본계 미국인 독자가 한국 독립운동 소설을 읽고 평생의 죄책감을 치유받았다는 일화가 가장 깊게 박혔습니다. 친할아버지는 1937년 남경에서 전사했고, 아버지는 그 수치심에 알코올중독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한 가족이, 한 권의 책으로 한일 사이의 평화를 꿈꾸는 사람으로 바뀐 이야기. 책 한 권은 절대 작은 게 아니라는 사실이 어제 일처럼 분명해집니다. 책을 좋아하는 분께, 자연을 사랑하는 분께, 그리고 단기 성과에 지친 한국 어른 모두께 권합니다.
💡 오늘, 단 한 가지만 해본다면
오늘 하루 자신이 하고 있는 일 한 가지를 떠올린 뒤, 그 일의 5년 뒤 성과가 아니라 30년 뒤 어떤 사람의 인생에 닿을지를 상상해 보세요. 그 한 줄의 시간 확장이, 오늘 자기 평가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어 줍니다.
📚 더 보면 좋을 자료
김주혜 작가의 데뷔작 『작은 땅의 야수들』과 차기작 『밤새들의 도시』를 함께 추천드립니다. 한국 호랑이·표범 보전 활동에 관심 있다면 한국범보전기금 공식 사이트와 후원 페이지를. 그리고 같은 유네스코 특집 시리즈인 세바시 1994 이재성·1995 알파고 시나씨 회차를 짝지어 보시면, 축구·언론·문학 세 분야에서 세계 시민성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입체적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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