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추석 때 뭘 하나요?" 다문화 가정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봉사 자리에서, 일곱 살 학생이 던진 그 쉬운 질문 앞에 한국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대학원생 심은혜는 멍하니 얼어붙었다. 한국인 엄마와 중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나 인생의 대부분을 중국에서 보낸 그가, 10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빨리빨리 신호등에 동기화되어 가던 어느 날 갑자기 멈춰선 이야기. 11분짜리 자기 고백 강연이다.
📌 한 줄 요약
베이징 사범대학교를 졸업하고 10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다문화 대학원생 심은혜가, 횡단보도에서 뛰는 사람들에게 동기화되어 가다 잠시 멈추고 자기 신호등을 다시 찾은 11분.
⭐ 추천 점수
★★★★☆ 4.5/5 — 11분짜리 짧은 강연이지만, '빨리빨리'에 휘둘리고 있는 모든 청년에게 좋은 호흡 한 번이 될 수 있다.
👥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친구들의 취업·결혼·승진 소식 앞에 자기 속도가 자꾸 작아 보이는 분
대학원·재도전·새 분야 진입을 고민 중인 분
다문화 가정·재외 한국인의 정체성에 관심 있는 분
📑 목차
4. "한국에서 추석 때 뭘 하나요?" — 7살의 질문
횡단보도에서 잠시 멈춘 다문화 대학원생 — 심은혜의 11분 자기 고백
1. 10년 만에 돌아온 한국, 횡단보도의 풍경
"안녕하세요. 여러분, 대학원생 심은혜입니다." 그는 청중에게 첫 질문을 던진다. "여러분은 혹시 조급함을 언제 느끼시나요? 저는 10년 만에 한국 땅을 밟았을 때 그 조급함을 뼛속까지 느낀 것 같아요."


그는 한국인 엄마와 중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살다가 코로나 시기에 중국 베이징 사범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10년 만에 한국에 아예 돌아왔다. 어렸을 때부터 드라마를 좋아했고 카페 알바를 하고 싶어 알바를 시작했다.
카페 교육을 들으러 가던 오전 8시 반 출근길. 신기한 광경이 펼쳐졌다. "빨간 불로 바뀌려는 신호등 소리에 제 앞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뛰기 시작했습니다. 신호등을 따라 길을 건너려고 했던 거였죠."

"중국에서 오랜 유학 생활을 하다 와서 그런지 모르지만 이 모든 게 너무 낯설게만 느껴졌습니다. 중국은 땅이 넓다 보니까 뛰어도 — 이런 풍경을 본 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의아했어요. '사람들이 왜 뛰는 거지? 이번에 못 건너면 다음에 건너면 되는데.'"
2. 빨리빨리에 동기화되는 사이
"그렇게 생각하던 3일. 저는 어느새 그들과 동기화되어 있는 제 자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옆에서 뛰니까 제 마음도 덩달아 조급해지는 거예요. 이번에 못 건너면 다음 신호까지 기다리는 그 시간이 견딜 수 없겠더라고요."
아침이면 발걸음이 빨라진 건 물론, 신호등을 좌우로 살피며 뛸 준비를 했다. "10년 만에 한국에 온 저는 이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에 빠르게 적응했습니다."
대외 활동을 통해 사귄 한국 친구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친구들도 그 신호등 앞의 사람들처럼 바쁘게 뛰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저는 빨리빨리 다른 주변의 친구들처럼 내 진로를 정하고 달리려다가 — 갑자기 멈춰서게 됐습니다."
3. 한국 친구들은 빨리 취업, 나는 대학원
"중국과 달리 한국은 사회에 진출하는 것도 빨리 하더라고요. 중국에서는 졸업 후 대학원에 가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어요. 대학원에 가면 진로도 천천히 고민할 수 있고 장학금도 받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그도 대학원에 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한국인 친구들은 달랐다. "나는 빨리 졸업해서 취직할 거야."

한국 친구들은 대학원에 가겠다는 그의 선택을 듣고 놀라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도 빨리 돈을 벌고 싶다는 압박을 받게 됐다. "번듯한 대기업에 취업해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자랑스러운 아들이 돼야겠다는 친구들을 보면서 저도 고민이 됐어요." 대학원을 나온다고 취직이 잘 되는 것도 아닌데, 기숙사비·생활비·등록금까지 — 남들이 돈을 벌 때 대학원을 간다는 게 속 편한 생각이 아닐까 싶었다.
"그때 문득 한국에 처음 왔을 때가 생각났습니다. 남들이 뛰니까 저도 횡단보도에서 뛰던 그때가요. 그래서 잠시 멈췄습니다. 남들의 신호를 따라 조급해 하던 그 마음을 내려놓고 제 안의 소리에 집중하기로 했어요."
4. "한국에서 추석 때 뭘 하나요?" — 7살의 질문
"한국에서는 추석 때 뭘 하나요? 저는 이 쉬운 질문에 멍하니 얼어붙은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추석 때 뭐 하죠? 송편 먹고, 성묘 가고. 그런데 저는 그 당시 인생의 대부분을 중국에서 보냈기 때문에 한국인이었음에도 한국에서 추석 때 뭘 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그는 중국어 강사였던 어머니를 보면서 교육자의 꿈을 키웠다. 그 결과 자기처럼 한국인과 중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가르치는 봉사 활동을 했다. 일곱 살 학생이 던진 그 한 줄 — "한국에서 추석 때 뭘 하나요?" — 에 답을 하지 못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내가 한국인이라 생각하고 한국어를 아무리 잘해도 한국에 대해 잘 몰랐구나. 내 뿌리를 잘 알고 — 아이들이나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잘 가르쳐 줄 수 있게 연구를 해야겠다. 이런 생각으로 대학원 진학을 결정했습니다."
5. 서울런이라는 길잡이, 세 곳 합격
대학원에서 한국어 교육을 제대로 연구하겠다는 결심은 확고했지만 과정은 쉽지 않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공백기를 가져야 했다. "중국에서는 9월에 학기를 시작하고 8월에 졸업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3월에 학기를 시작하는데, 그 기간 6개월 정도 빈 시간이 생긴 거죠." 다른 친구들은 다 취업에 성공해 입사 전 해외여행을 가는데, 자기 혼자 백수로 남는 그 심정이 좋지 않았다.

"그때 우연히 서울런이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됐습니다." 대학원 지원에는 영어 성적이 필요했고, 중국에서 사느라 영어 성적이 없던 그에게 무료 영어 강의는 딱 필요했다. "매일 아침 TED 영상으로 쉐도잉을 하고, 수업 중간 이동할 때 틈틈이 서울런 강의를 듣고, 저녁엔 집에 와서 문제를 풀고 해설 강의를 듣습니다."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대학원 등록금·기숙사비를 마련해야 해 생활비가 빠듯했지만, 서울런이라는 든든한 길잡이 덕에 다양한 방법으로 영어 공부를 시도해 볼 수 있었다. "그 결과 — 지원한 세 곳의 대학원에서 모두 장학금을 제안하면서 합격시켜 줬답니다."
"누군가에겐 아주 느린 한 걸음일지 몰라도, 제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의미 있는 첫걸음이었어요."
6. 대표님의 한 마디와 어머니의 돋보기
대학원 입시 결과를 기다리며 한중 통역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중국에 함께 출장을 간 대표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뭘 해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되죠. 아마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며 조급한 마음도 들 거예요. 나는 노어노문학과 나와서 창업했거든요. 지금 서른이 넘었는데도 앞으로 도전할 일들을 생각하면 설레서 잠이 안 와요. 은혜 씨는 시간이 충분히 많아요. 불안해하지 말고 지금 바로 도전하세요."
대학원 진학을 결정하긴 했지만 뒤처지면 안 된다는 마음이 보였나 보다. "사실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에는 정해진 길도, 정해진 속도도 없는데, 다들 하고 싶은 분야가 있고 하고 있는 것도 다른데, 저마다의 속도가 있는 건데 — 왜 저런 타인의 기준에 저를 가두고 있었을까요?"
"지금 하고 싶은 공부가 있는데 타인의 기준에 휘둘려 하고 싶은 공부도 포기하고 생각하지도 않던 일을 한다는 게 오히려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돋보기를 맞추실 때가 생각이 났다. "이제는 공부를 하고 싶어도 잘 안 보여서 하지 못하는 것만큼 아쉽고 억울한 일도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지금이 저에겐 공부하기 좋은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나만의 속도로 가도 괜찮더라고요."
7. 내 신호등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들이 신호에 맞춘다고 해서 꼭 그 신호에 따라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는 대학원에 진학해 한국어 교육을 공부하고, 외국에서 살면서 한국인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친구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알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게 자기 마음의 소리였다고 말한다.
"제가 공부를 하는 사이 친구들은 취업해서 자리를 잡고 돈을 벌고 효도하겠죠. 가정을 꾸리는 친구들도 있을 거고요. 저는 졸업까지 한참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그 친구들을 보면 조급한 마음이 아니라 응원하는 마음이 들 것 같습니다."
"횡단보도에서 초록색 신호등이 깜빡일 때 사람들이 뛰면 여전히 같이 뛰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잠시 멈춰 서서 — 내 신호등은 무엇인지, 내가 진짜 가고 싶은 방향이 어디인지 숨을 고르고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혹시 예전에 저처럼 조급함을 느끼거나 막막함을 느끼는 분이 있다면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잠시 멈추고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한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질 것을요.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만의 속도로 한 걸음씩 나아가 보는 건 어떨까요? 시간은 충분하다는 걸 기억하시고 끝없이 도전하고 시도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앞으로도 그럴 테니까요. 그 길 끝에는 성장한 우리가 있을 것이라는 걸 저는 믿습니다."
✍️ 내가 밑줄 친 세 문장
"옆에서 뛰니까 제 마음도 덩달아 조급해지는 거예요. 이번에 못 건너면 다음 신호까지 기다리는 그 시간이 견딜 수 없겠더라고요."
"누군가에겐 아주 느린 한 걸음일지 몰라도, 제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의미 있는 첫걸음이었어요."
"잠시 멈춰 서서 내 신호등은 무엇인지, 내가 진짜 가고 싶은 방향이 어디인지 숨을 고르고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 블로거 한 줄 후기
11분이라는 비교적 짧은 강연인데,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강연 초반 횡단보도의 풍경 묘사였다. 빨간 불로 바뀌려는 신호등 소리에 사람들이 뛰기 시작하는 그 짧은 한 컷이, 한국 사회의 빨리빨리 문화를 가장 정확히 잡아낸 한 장면이다. 그리고 그 풍경 앞에 처음에는 의아해 하던 그가 단 3일 만에 그들과 동기화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는 한 줄은 — 우리 모두가 어떻게 사회의 속도에 휘말려 가는지를 가장 정직하게 보여 준다. 다문화 가정의 시선이라는 외부자의 자리에서 그 풍경을 바라봤기 때문에 가능한 한 줄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오래 남는 건 7살 학생의 한 줄짜리 질문 — "한국에서 추석 때 뭘 하나요?" — 이었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봉사 자리에서 한국인 강사가 그 질문에 얼어붙었다는 그 자리가, 우리가 흔히 모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막연한 자신감이 어떤 자리에서 정확히 무너지는지를 한 줄로 보여 준다. 그 부끄러움이 대학원 진학이라는 한 사람의 결정적 결정으로 이어졌다는 흐름이 이 강연이 도착한 가장 단단한 마디다. 강연 마지막 "잠시 멈춰서 내 신호등은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한 줄은, 친구들의 취업·결혼·승진 소식 앞에 자기 속도가 작아 보일 때마다 다시 꺼내 보고 싶은 문장이다.
💡 오늘, 단 한 가지만 해본다면
횡단보도 신호등 앞에서 — 또는 회사·학교 어디서든 사람들이 빨리 뛰기 시작하는 순간 — 잠시 한 발만 늦춰 본다. 그 짧은 한 박자가 강연자가 말하는 "내 신호등을 다시 보는 시간"의 가장 작은 첫걸음이다.
📚 더 보면 좋을 자료
서울런(slearn.seoul.go.kr) — 강연에 등장한 무료 영어 강의·멘토링 플랫폼. 다문화 가정 자녀의 한국어 교육에 관심 있다면 다문화가족지원포털 다누리(liveinkorea.kr)와 국립국어원의 한국어교원 자격 안내도 함께 살펴보면 좋다. 베이징 사범대학교를 비롯한 중국 주요 대학의 한국학 과정도 함께 보면 강연자의 길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한눈에 들어온다.
♥ 시간은 충분합니다. 오늘 잠시 멈춰 서서 내 신호등을 한 번 더 들여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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