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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교수, '괴물들의 시간' 미중 사이 한국의 생존법 | 세바시 205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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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2. 26. | 세바시 2059회 |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낡은 질서는 죽어가고 새 질서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시대, 그람시는 이를 '괴물들의 시간'이라 불렀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부터 트럼프의 관세, 기술 민족주의, 유엔의 위기까지 세계 질서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한국은 과연 어디로 가야 할까요. 국제정치학자 문정인 교수가 제시하는 '초월외교'와 청년의 역할을 들어봅니다.

 

📖 이 강연의 순서
1. 그람시가 말한 '괴물들의 시간'
2. 무너지는 질서, 네 가지 병든 현상
3. 한국은 어디로 가야 하나
4. 초월외교, 샌드위치 국가들의 연대
5. 결국 미래의 주인은 청년

 

 

문정인 교수 세바시 2059회 강연
문정인 교수 세바시 2059회 강연

 

 

🌍 그람시가 말한 '괴물들의 시간'

 

 

'관세전쟁…전세계가 들썩였다' 트럼프 관세 정책을 다룬 뉴스 기사 화면
'관세전쟁…전세계가 들썩였다' 트럼프 관세 정책을 다룬 뉴스 기사 화면

 

지난 두 달간 오스트리아 빈에 머물며 유럽 여러 나라를 순방하고 강연을 다녔습니다.

그곳 지식인들이 요즘 가장 많이 인용하는 인물이 바로 이탈리아 공산당을 창설한 안토니오 그람시였습니다.

그람시는 무솔리니 파시스트 정권 아래 투옥되었다가 1936년 2월 출감하며 '옥중수고(프리즌 노트)'를 남겼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습니다.

낡은 질서는 죽어가고 있고 새로운 질서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이 궐위의 시대에 병든 현상들이 나타나며, 지금은 괴물들의 시간이 되고 있다.

그람시가 말한 궐위의 시대는 곧 파시즘과 나치즘, 유럽의 보호주의, 그리고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유럽 지식인들이 이 말을 다시 꺼내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지금이 바로 1936년 그 시기와 닮았다는 것입니다.

 

🔥 무너지는 질서, 네 가지 병든 현상

 

오늘의 세계를 보면 그 진단이 과장이 아닙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가자에서는 무자비한 전쟁이 벌어졌으며,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을 선제 타격했습니다.

인도와 파키스탄, 태국과 캄보디아까지 곳곳에서 충돌이 이어집니다.

그런데도 과거의 패권국 미국은 아무 역할을 하지 않고, 유엔도 나토도 유럽연합도 손을 놓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데 국제사회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합니다.

지정학적 불확실성, 곧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가 현실이 된 것입니다.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수지 악화를 이유로 일방적인 상호관세를 매겼습니다.

한국에는 25%를 매겼다가 협상 끝에 15%로 낮추는 대신, 미국에 수천억 달러를 투자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더구나 투자처는 트럼프 대통령이 결정하고, 돈은 한국이 대는데 이익은 50대 50으로 나누자고 합니다.

산업통상부 장관이 '이런 불공정이 어디 있느냐'고 반발할 정도입니다.

미국이 스스로 만든 자유주의 경제 질서를 미국이 무너뜨리고 있는 셈입니다.

세 번째는 과학기술입니다.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기술 패권을 유지하며 '기술 세계주의'를 내세웠지만, 한국과 일본, 유럽, 중국이 따라잡자 태도를 바꿨습니다.

이제는 완전한 기술 민족주의로 돌아서 중국은 물론 동맹국에까지 수출 통제를 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은 글로벌 거버넌스의 위기입니다.

미국이 주도해 만든 유엔에서 미국 스스로 발을 빼고 있습니다.

분담금을 내지 않고 WHO, 유네스코, 국제노동기구에서 잇따라 탈퇴했습니다.

 

'국제연합헌장 제1장 목적과 원칙' 조문이 담긴 슬라이드 화면
'국제연합헌장 제1장 목적과 원칙' 조문이 담긴 슬라이드 화면

 

 

'트럼프의 미국 국제기구 탈퇴 러쉬..UN 탈퇴까지 추진' 뉴스 기사 화면
'트럼프의 미국 국제기구 탈퇴 러쉬..UN 탈퇴까지 추진' 뉴스 기사 화면

 

미국이 떠난 그 빈자리를 지금 중국이 야금야금 채워 나가고 있습니다.

 

🧭 한국은 어디로 가야 하나

 

그렇다면 이 격변 속에서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국내 논쟁은 크게 넷으로 갈립니다.

첫째는 친미 균형 전략입니다.

패권국 미국과 함께 가서 수정주의 세력인 중국의 도전을 막는 것이 국익에 가장 좋다는 시각입니다.

둘째는 정반대입니다.

병자호란 때 쇠퇴하는 명나라에 베팅했다가 청나라에 수모를 당한 역사를 들어, 지금 편승해야 할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라고 주장합니다.

다만 이런 시각은 소수입니다.

셋째는 홀로서기입니다.

보수 진영은 핵무장을, 진보 진영은 스위스식 영세중립을 말합니다.

그러나 핵무장은 상상을 초월하는 국제 제재를, 중립국화는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종식을 전제로 하기에 어느 쪽도 쉽지 않습니다.

가장 현실적인 답은 현상 유지입니다.

미국과는 동맹을, 중국과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함께 유지하는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처음 시작한 균형 외교입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이 좋았던 그 시절과 달리, 지금처럼 미중 대립이 격화된 상황에서 양쪽 모두에서 국익을 극대화하기란 대단히 어렵습니다.

미국은 대만해협이나 남중국해에서 충돌이 나면 한국이 군사적으로 미국을 지지한다고 명시하라 요구하고, 중국은 미국 편에 서서 적대 행동을 하면 한국을 적으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합니다.

사드 사태가 그 예고편이었습니다.

 

🤝 초월외교, 샌드위치 국가들의 연대

 

그래서 제가 오래 강조해 온 것이 '초월외교(transcending diplomacy)'입니다.

미중이 대결하면 그 사이에서 가장 큰 희생을 보는 나라가 대한민국이고, 일본과 호주, 캐나다, 유럽도 마찬가지로 샌드위치 신세가 됩니다.

그렇다면 이 샌드위치 국가들끼리 협의해 공동 대응하는 국제 협력 체제를 만들면 어떻겠습니까.

핵심은 한국과 일본의 협력입니다.

여기에 호주와 캐나다, 독일, 프랑스가 참여하는 중견국 협의체를 상상해 봅니다.

이들은 모두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으면서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들이 힘을 모으면 미중 갈등을 완화하고 다자 질서를 복원하며 열린 지역주의로 나아가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 결국 미래의 주인은 청년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청년의 역할입니다.

유럽과 동아시아에서 극우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놀랍게도 20대와 30대 청년들이 여기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반이민과 국수주의, 국제협력 배제로 향하는 이 흐름이 과연 우리에게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줄까요.

이 흐름을 역전시키려면 우리 젊은이들이 국제사회의 지도적 역할을 갖추고 새로운 연대를 구축해야 합니다.

그 첫걸음은 '많이 아는 것'입니다.

AI에만 의존하지 말고 많이 읽어 지식을 쌓아야 합니다.

지식이 쌓이면 토론할 수 있고, 토론하다 보면 공감대를 가진 사람들끼리 연대가 만들어집니다.

나아가 공감과 공유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인간은 자기중심적이어서 타인과 다른 나라를 악마화하기 쉬운데, 그 길의 끝은 최악의 결과입니다.

동정(sympathy)이 아니라 공감(empathy)입니다.

공감하면 나눔의 마음이 생기고, 그 마음은 마침내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소극적인 방관자로는 이 질서의 파국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행위의 주체가 되어 국제적 연대를 만들고 세계 시민사회에 직접 참여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곧 사라질 노병이지만, 미래의 주인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미중 패권 경쟁 시대, 한국의 생존 전략 | 세바시 205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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