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승훈 금산간디학교 교사, 사막에서 깨달은 진짜 혁신 | 세바시 2060회

반응형

2025. 12. 27. | 세바시 2060회 | 주승훈 (금산간디학교 교사·사막 마라토너)

 

 

경찰의 꿈이 색약 판정으로 꺾인 뒤, 그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감정에 짓눌려 방황했습니다. 그러다 TV 속 사막을 달리는 사람을 보고 단 일주일 만에 나미브 사막 마라톤에 뛰어들었고, 극한의 완주 끝에 뜻밖의 깨달음을 얻습니다. 사막과 교실을 오가며 그가 새로 배운 '혁신'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 이 강연의 순서
1. 경찰의 꿈이 꺾이고 찾아온 방황
2. 일주일 준비로 뛰어든 나미브 사막
3. 완주가 아니라 동행, 조지아 산악 마라톤
4. 다음 세대와 함께, 금산간디학교 교실
5. AI 앞에서, 설거지 문제를 푼 아이들
6. 혁신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완성된다

 

 

주승훈 금산간디학교 교사
주승훈 금산간디학교 교사

 

 

🧭 경찰의 꿈이 꺾이고 찾아온 방황

 

 

'750Km의 사막을 뛴 마라토너, 극지탐험가'라고 소개하는 오프닝 화면
'750Km의 사막을 뛴 마라토너, 극지탐험가'라고 소개하는 오프닝 화면

 

저는 사실 시민을 돕는 경찰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색약 판정을 받으면서 그 꿈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그 이후로 긴 방황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20대와 30대를 지나는 많은 청년들이 공감할 이 질문이 제 인생을 짓눌렀습니다.

꿈이 꺾인 것보다 더 힘들었던 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감정이었습니다.

스스로가 너무 작아 보였고, 꺾인 꿈이 제 가치마저 꺾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TV에서 한 사람이 사막을 달리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울림이 느껴졌습니다.

저건 미친 짓일까, 아니면 나도 할 수 있을까.

저는 그 울림을 따라가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 일주일 준비로 뛰어든 나미브 사막

 

대회까지 남은 시간은 정확히 일주일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인생에는 계획보다 용기가 먼저 필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준비가 짧았던 탓에 저는 참가 선수 중 가장 무거운 17kg짜리 배낭을 메고 사막에 들어섰습니다.

군대를 다녀온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거의 군장 수준의 무게였습니다.

낮에는 54도, 밤에는 영하를 오가는 극한의 환경이었습니다.

물집이 터지고 어깨를 짓누르는 고통을 참으며 5박 6일을 버텼습니다.

기록은 꼴찌에 가까웠지만, 하루하루 버티다 보니 완주라는 선물이 찾아왔습니다.

 

'무모하게 시작했던 첫 도전의 순간' — 사막 길을 홀로 걷는 장면
'무모하게 시작했던 첫 도전의 순간' — 사막 길을 홀로 걷는 장면

 

 

물집 잡힌 맨발을 테이핑으로 감으며 발을 살피는 참가자
물집 잡힌 맨발을 테이핑으로 감으며 발을 살피는 참가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제가 그 일주일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나는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NAMIB RACE 2021' 결승선에서 두 팔 벌려 완주하는 순간
'NAMIB RACE 2021' 결승선에서 두 팔 벌려 완주하는 순간

 

그런데 이상하게도 완주를 하고 나니 마음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돌아보니 답이 보였습니다.

극한의 환경에서 제 생존만을 위해 발버둥 치느라, 정작 옆 사람은 살피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느새 저는 제 기록만 생각하며 누군가의 힘든 모습을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 완주가 아니라 동행, 조지아 산악 마라톤

 

그래서 다음 도전인 조지아 산악 마라톤에서는 다른 삶을 시도하기로 했습니다.

완주보다 동행의 가치를 찾는, 함께 걷는 삶이었습니다.

대회 첫날, 마흔한 명의 참가자 중 스물다섯 명이 길을 잃었습니다.

저는 80세 한인 참가자와 함께 걷고 있었습니다.

길을 잃은 압박감 속에서 그분의 호흡과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이분을 도와야겠다고 마음먹고, 상태를 살피고 가방을 대신 들며 곁을 지켰습니다.

다행히 체크포인트가 나왔고 함께 캠프로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대회를 중간에 포기해야 했지만, 저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혼자 갈 수도 있었는데 옆에 있어줘서 진심으로 고맙다,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가 되길 바란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타인을 도우며 살기를 바란다고요.

놀랍게도 그 대회에서 제가 받은 상은 기록상이 아니라 스포츠맨십 어워드였습니다.

기록이 아니라 사람을 봤기 때문입니다.

 

🌱 다음 세대와 함께, 금산간디학교 교실

 

함께의 가치를 발견하자 자연스럽게 제 소명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경찰의 꿈은 내려놓았지만 사회에 기여하고 싶었고, 제가 가장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은 다음 세대와 함께 성장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세대가 저처럼 꿈을 잃고 헤매지 않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그때 사랑과 자발성을 교육 철학으로 하는 금산간디학교를 알게 되었고, 사회에 베풀라던 할아버지의 뜻을 떠올리며 그 문을 두드렸습니다.

저는 학생들과 함께 '러닝 바이 두잉' 수업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찾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움직이는 수업입니다.

 

'금산간디학교' — 자기 주도적 학습을 지향하는 대안학교 전경
'금산간디학교' — 자기 주도적 학습을 지향하는 대안학교 전경

 

 

'러닝 바이 두잉' —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찾고 해결법을 고민하는 수업
'러닝 바이 두잉' —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찾고 해결법을 고민하는 수업

 

우리는 기후정의를 주제로 해파랑길을 13박 14일 동안 걸었습니다.

처음엔 이걸 왜 해야 하냐고 묻던 아이들도, 강릉의 가뭄을 직접 마주하고 석탄화력발전소의 거대한 굴뚝을 보며 이게 우리의 문제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또 한 번은 아트 프로젝트로 발달장애인분들과 1년 동안 함께했습니다.

처음엔 어색해하던 학생들이 운동과 장기자랑, 직접 만들어 먹는 베이커리를 함께하며 다름이 아니라 함께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 AI 앞에서, 설거지 문제를 푼 아이들

 

기술과 트렌드의 변화는 우리 학교도 예외로 두지 않았습니다.

금산간디학교는 기말고사 대신 학생들이 자신만의 주제에 몰입해 결과를 발표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그런데 학생들은 묻습니다.

선생님, 에세이를 GPT로 쓰면 안 되나요?

AI가 다 해주는데 우리가 배워야 할 이유가 뭔가요?

 

'AI가 다 해주는데 우리가 배워야 할 이유가 뭔가요?' — 노트북을 치는 손 위 자막
'AI가 다 해주는데 우리가 배워야 할 이유가 뭔가요?' — 노트북을 치는 손 위 자막

 

그래서 교사와 학생들이 식구총회에서 AI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GPT를 쓰는 게 편하긴 한데, 그 편리함에 제가 생각하는 법을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요.

결국 아이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기술의 편리함과 자기 주도성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습니다.

팀으로 문제를 해결할 때 AI를 활용하도록 한 것입니다.

마침 카페테리아의 설거지 문제가 이슈였습니다.

컵들이 씻기지 않은 채 싱크대에 방치되고 있었거든요.

순번을 정하자, 카페를 금지하자, 격론 끝에 학생들은 AI에게 어떤 주장이 가장 설득력 있는지 물었습니다.

AI는 두 주장 모두 문제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순번제는 공평하지만 책임감이 낮고, 카페 금지는 너무 극단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학생들은 한 발 물러서서 생각했습니다.

누구의 잘못을 따질 게 아니라, 왜 설거지를 안 하는지 이해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 이유는 결국 함께 쓰는 공간이라는 인식의 부재였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만든 포스터는 네가 문제다라는 지적도, 설거지 해라라는 강요도 아니었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니 함께 돌보자는 따뜻한 메시지였습니다.

아이들은 AI를 답을 얻는 도구가 아니라, 생각을 더 입체적으로 만드는 도구로 삼았습니다.

 

✨ 혁신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완성된다

 

저는 한때 혁신을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던 혁신은 오픈AI의 샘 올트먼,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처럼 천재 한 명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였습니다.

하지만 극한의 환경에서, 그리고 학생들과 기술이 만나는 교실에서 저는 전혀 다른 것을 배웠습니다.

혁신은 한 사람의 아이디어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혁신은 서로를 믿고 함께 성장할 때 완성됩니다.

사막에서 완주만 바라보고 달릴 땐 꼴찌였지만, 옆 사람을 살피기 시작하자 스포츠맨십 어워드를 받았습니다.

기록이 아닌 동행에서 의미를 찾았을 때 비로소 모두에게 성장의 기회가 열렸습니다.

도전은 혼자 할 수 있지만, 성장은 반드시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저는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기후 위기와 급변하는 정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AI의 물결 앞에 선 전대미문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배움의 방식도, 일의 방식도, 관계의 형식도 모두 바뀔 것입니다.

그러나 기술이 우리를 지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기술을 의미 있게 사용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놓치면 안 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의 존재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동행, 그리고 기술과 사람의 동행.

그 길을 저는 앞으로도 아이들과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사막에서 배운 함께의 힘 | 세바시 2060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