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 2. | 세바시 2063회 | 배경제 (전 필립모리스 코리아 대표)
예일대 인류학 박사를 꿈꾸던 사람이 매킨지 컨설턴트, 블리자드 코리아 대표, 구글 영업 총괄을 거쳐 필립모리스 코리아 대표가 되었습니다. 산업과 직무의 경계를 스물다섯 해 동안 끊임없이 넘나든 배경제 대표는 그 비결을 '경계인'이라는 한 단어로 정리합니다. AI가 필요한 기술의 70%를 바꿔 놓을 시대, 스펙이나 직장이 아니라 '경계를 넘는 나의 능력'만이 장기적 안정성을 보장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커리어 개발법을 그의 실제 이야기로 풀어냅니다.
📖 이 강연의 순서
1. AI 시대, 강제로 경계를 넘어야 하는 때가 온다
2. 인류학자는 어떻게 매킨지 컨설턴트가 되었나
3. 게임회사 대표: 경계인의 눈으로 문제를 찾다
4. 구글 영업, 스토리텔링으로 경계를 넘다
5. 담배회사 대표, 게임의 팬덤을 이식하다
6.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경계인이 되라

🌐 AI 시대, 강제로 경계를 넘어야 하는 때가 온다


안녕하십니까, 배경제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은 AI 시대에 내 커리어를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할지 많은 고민을 안고 계실 것입니다.
스펙만 쌓는다고 될까, 지금 배우는 전공이 미래에도 쓸모가 있을까 하는 불확실성과 피로감이 상당히 크실 거라 생각합니다.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AI 때문에 2030년까지 필요한 기술의 70%가 바뀔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직장을 바꾸지 않아도, 직장이 여러분을 끊임없이 변화시키려 하는 세상이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이 질문이 있을 것입니다.
커리어의 장기적인 안정성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저는 인류학자, 경영 컨설턴트, 게임회사 대표, 글로벌 영업 총괄, 그리고 비흡연자로서 글로벌 담배 회사 한국 대표까지 산업과 직무의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들었습니다.
이 모든 여정의 핵심은 바로 '경계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개념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제가 직접 경험한 실제 이야기를 통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커리어 개발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 인류학자는 어떻게 매킨지 컨설턴트가 되었나
저의 첫 커리어는 예일대에서 인류학 박사 과정을 밟고 교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졸업 후 스무 군데가 넘는 미국 학교에 지원했지만 한 곳에도 붙지 못했습니다.
25년 전에도 교수직을 얻기란 너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민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인류학을 좀 더 실질적인 분야에 적용할 수는 없을까?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경영 컨설팅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인류학과 컨설팅을 전혀 연결하지 못했지만, 저는 반드시 그 연결고리를 찾아내야 했습니다.
면접에서 나올 질문은 뻔했으니까요.
인류학을 하던 사람이 왜 갑자기 컨설팅을 하려 합니까?

저는 석 달 동안 매달려 두 분야의 세 가지 논리적 공통점을 정리했습니다.
첫째는 문화 상대주의입니다.
상대 문화의 맥락 안에서 이해해야지 내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 안 되듯, 컨설팅도 그 회사가 처한 상황과 맥락 안에서 문제를 파악하는 상대주의적 접근이 매우 중요합니다.
둘째는 총체론적 접근법입니다.
한 문화의 관습을 사회 전체 시스템 속에서 총체적으로 봐야 온전한 의미를 알 수 있듯, 컨설팅도 재무·조직·리더십·시장 등 전체 시스템 안에서 문제를 봐야 제대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은 현지 조사 방법론입니다.
인류학자가 직접 타문화에 참여해 관찰하고 기록하듯, 컨설턴트가 고객사에 매일 출퇴근하며 함께 일하고 분석하는 과정이 곧 미니 현지 조사와 같습니다.
이 논리를 바탕으로 매킨지 최종 면접에서 저는 '앞으로는 인류학자만 뽑아야겠다'는 평가를 받으며 입사했습니다.
가장 잘 아는 분야를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분야와 연결해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 때, 새로운 커리어의 문이 열립니다.
🎮 게임회사 대표: 경계인의 눈으로 문제를 찾다


인류학자 시절부터 문화 콘텐츠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저는 컨설팅 경험 후 게임 업계로 이직해, 스타크래프트를 만든 블리자드 한국 대표로 취임했습니다.
이 기회는 우연히 사촌 동생의 추천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두 시간 동안 진행된 첫 인터뷰에서 저는 일반적인 경영 질문 대신, 인류학자로서 마지막 질문을 던졌습니다.
200명이 넘는 한국 직원을 관리하는 데 문화적 충돌이나 조직상의 문제가 있지 않느냐고요.
아시아 총괄 대표는 놀라며, 한국 블리자드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조직 문제인데 이를 질문한 사람은 제가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질문은 한 시간이 넘는 심층 논의로 이어졌고, 결국 저는 비(非)게임업계 출신 최초로 한국 대표에 채용되었습니다.
입사 후에도 인류학적 통찰은 이어졌습니다.
본사 개발자들은 한국 유저들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방대한 세계를 즐기기보다 최종 보스를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잡는 루트에만 관심을 두는 것에 큰 불만이 있었습니다.
미국 유저가 1년 동안 즐길 콘텐츠를 한국 유저는 3개월 만에 소비하고 떠났던 것이죠.
저와 한국 팀은 이 결과 중심적인 한국 게이머 문화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경험치 2배 향상 아이템을 본사에 제안했습니다.
빨리 끝내려는 니즈를 만족시키면서 본사의 철학은 크게 해치지 않는 이 아이템은 출시되자마자 한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경계인의 시각을 가질 때, 익숙한 곳에서 새로운 문제와 기회를 발견하고 창의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강력한 힘이 생깁니다.
📝 구글 영업, 스토리텔링으로 경계를 넘다

블리자드 이후 저는 구글 글로벌 영업팀으로 이직했습니다.
직접적인 영업 경험은 없었지만, 2년간 채워지지 않던 이 자리를 제가 차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스토리텔링이었습니다.
저는 컨설팅 시절의 영업 프로젝트 경험과 게임업계의 디지털 마케팅 경험을 연결해, '영업도 결국 스토리텔링이며 다양한 스토리텔링 경험을 가진 내가 영업도 잘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잘 보이도록 이력서를 완전히 다시 썼습니다.
수많은 이력서를 읽는 면접관은 지원자의 과거 경력과 자신이 찾는 역량의 연결고리를 굳이 찾아주지 않습니다.
그 연결고리는 지원자 스스로가 친절하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실제 업무에서도 이 논리를 활용했습니다.
삼성·소니·LG 등 글로벌 마케팅 총괄을 상대할 때도 구글의 방대한 데이터와 인사이트를 각 브랜드의 의미 있는 스토리로 엮어내며 영업했고, 이것이 저를 차별화했습니다.
워크 더 토크(Walk the talk).
여러분의 스토리는 말한 것을 실제로 실천할 때 더욱 강력해집니다.
🔥 담배회사 대표, 게임의 팬덤을 이식하다
5년 후 저는 비흡연자로서 필립모리스 한국 대표라는 또 다른 경계에 서게 됩니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아이코스라는 혁신적인 전자기기 중심의 비즈니스 전환을 이끌며 전통적인 수직 조직을 수평적인 테크 조직으로 바꿔 달라는 요청은 거절하기 힘든 매력적인 도전이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활용한 것은 블리자드에서 4년간 경험한 게임 커뮤니티의 팬덤이었습니다.
규제가 많은 담배 산업에서 직접적인 마케팅 메시지 전달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팀에게 아이코스를 사랑하는 소비자들에게 게임 업계에서 만들었던 커뮤니티 경험을 제공하는 데 집중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회사가 메시지를 전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아이코스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팬들이 자발적으로 지인이나 SNS에 경험을 공유하는 데에는 제한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멤버십 기반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매장 내 월드컵 경기 관람, 뮤직 페스티벌 내 아이코스 전용 공간 제공 등 독특한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게임 산업의 성공 경험을 전혀 다른 담배 산업으로 가져와 창의적인 시도를 할 수 있었고, 이는 지금도 필립모리스의 지속적인 마케팅 활동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경계인이 되라

제가 걸어온 여정을 통해 세 가지 핵심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첫째,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현재의 기회와 연결해 나만의 스토리를 만드십시오.
둘째, 다양한 경험의 경계에 서서 과거의 성공과 실패에서 배운 것을 새로운 분야에 끊임없이 적용하는 경계인이 되십시오.
셋째, 그 창의적인 시도를 통해 나만의 독특한 커리어 가치를 계속 확장하십시오.
처음 경계를 넘는 시도는 두꺼운 유리벽을 깨고 나가는 것처럼 두렵고 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한 전문 분야의 스펙이나 직장이 아니라, 경계를 넘나들며 가치를 창출하는 나 자신의 능력만이 장기적 안정성을 보장합니다.
그리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경계를 넘는 시도는 반복할수록 점점 쉬워지고 자연스러워지며, 심지어 재미있어지기까지 한다는 사실을요.
지금 이 화면에 보이는 작품은 제 방에 걸려 있는 이철수 판화가의 '길'입니다.
길은 처음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누군가 걷고 또 걸었기에 비로소 길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새로운 길을 만드는 사람, 즉 경계인이 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가장 잘하는 분야와 두려워하는 새로운 분야를 이어주는 작은 다리를 놓는 연습을 지금부터 시작해 보십시오.
그 작은 실천이 불확실한 미래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경계인으로 만드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걸음을 걷고 또 걸으면, 언젠가 사람들이 그 독특한 여정을 보고 '저것이 바로 새로운 길이다'라고 부르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다가올 미래를 부정적인 근심이 아니라 긍정적인 기대로 맞이하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미래의 경계인 여러분,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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