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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준 PM, 15년째 살아남은 서비스 기획자의 협업 비밀 | 세바시 207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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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 24. | 세바시 2076회 | 이희준 (PM · 서비스 기획자)

 

 

PM, 서비스 기획자. 이름은 익숙해도 정작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하기는 어려운 직업입니다. 문과생 출신으로 이커머스를 만들며 15년을 버텨 온 이희준 기획자는 자신이 살아남은 비결이 '협업'이었다고 말합니다. 개발자와의 갈등, 법무팀과의 줄다리기, 그리고 AI와 함께 일하는 시대까지, 세 가지 이야기로 풀어내는 협업의 기술을 만나 봅니다.

 

📖 이 강연의 순서
1. 커피 타는 것만 빼고 다 한다, PM이라는 직업
2. 15년째 살아남았다는 것
3. 개발자에게 화를 냈던 2년 차, 그리고 깨달음
4. 법무팀은 방해자가 아니다
5. AI 시대, 필요한 것은 존중의 기술
6. 무엇을 만드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만드느냐

 

 

세바시 2076회 이희준 PM 서비스 기획자
세바시 2076회 이희준 PM 서비스 기획자

 

 

커피 타는 것만 빼고 다 한다, PM이라는 직업

 

저는 이커머스를 만드는 일을 15년째 해 오고 있는 이희준입니다.

PM, 서비스 기획자라고 제 직무를 소개하면 IT 업계에 계신 분들은 고개를 끄덕이시지만, 대다수는 그게 대체 뭐 하는 직업이냐고 되물으십니다.

저희 어머니도 아직 제 직업을 친척들에게 정확하게 설명하기 힘들어하실 정도입니다.

제가 처음 기획자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을 때, 선배들은 이 일을 이렇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커피 타는 것만 빼고 다 한다.

IT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개발이 필요하고, 그 개발을 위해서는 인터페이스 디자인도 필요합니다.

개발자와 디자이너 두 사람만 있어도 서비스 하나를 만드는 일은 가능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늘 복잡한 문제가 터지고 회사는 리소스가 부족합니다.

서로 다른 전문가들이 최상의 결과를 내려면, 함께 일할 대상과 그 환경을 설계하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기획자의 자리입니다.

협업을 위해서라면 저는 필요하면 커피도 탈 수 있습니다.

기획자가 일을 잘한다는 기준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높은 성과가 아니라, 결국 협업이기 때문입니다.

 

15년째 살아남았다는 것

 

사람들은 제프 베조스가 아마존을 만들고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진두지휘했듯, 기획자라면 '너는 뭘 만들었니'라고 필연적으로 묻습니다.

하지만 이 서비스 전부를 내가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 현실 기획자는 별로 없습니다.

저는 15년 동안 주문 시스템만, 반품 같은 클레임 처리만, 혹은 상품을 등록하는 페이지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이 업계에서 계속 살아남아 있습니다.

살아남았다는 것은 곧 강하다는 뜻이겠지요.

오늘은 문과생 출신이면서 동시에 IT를 만드는 사람이 어떻게 계속 살아남았는지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제가 하는 일은 매일 수많은 이해 당사자와 대화하고 요구를 조율하고 문제를 정의하고 사람을 설득하는 일이며, 모두가 조금씩 양보할 수 있도록 그 틀을 만들어 주는 일입니다.

 

주문 시스템·클레임 처리·상품 페이지까지, 15년 동안 혼자 다 만든 서비스 '0개'
주문 시스템·클레임 처리·상품 페이지까지, 15년 동안 혼자 다 만든 서비스 '0개'

 

 

개발자에게 화를 냈던 2년 차, 그리고 깨달음

 

첫 번째 이야기는 제가 2년 차 때였습니다.

상품을 등록하는 시스템을 기획했는데, 화면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정책이 훨씬 더 많은 프로젝트였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기획했지만, 막상 테스트를 해 보니 제가 설명한 것과 너무 다르게 개발된 부분이 많았습니다.

한마디로 오류투성이였습니다.

저는 저보다 훨씬 나이 많은 개발자 두 분에게 어떻게 정책도 모르면서 개발을 할 수 있냐며 화를 냈고, 팀장에게 가서 이르기까지 했습니다.

그것이 제대로 된 대처라고 생각했지요.

오류를 다 수정해 의기양양하게 배포했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다른 프로젝트를 또 그 개발자들과 함께해야 했는데, 이미 서로 말도 하기 싫은 상태였습니다.

회의실은 도저히 프로젝트를 진행할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하루 이틀 일하고 말 것이 아니라 10년, 20년 이 업계에서 일해 나가려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계속 지속해야 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개발자분들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도 제 잘못이었습니다.

더 좋은 방법이 있는지 물었을 수도 있고, 처음부터 요구 사항만 던질 것이 아니라 함께 기획을 만들어 갔다면 이해도가 훨씬 높았을 것입니다.

그때 배운 것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 그리고 기획자가 일을 잘한다는 기준이 곧 계속 같이 일하기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제 기획안 보신 거 맞아요!? 제대로 알고 하셨어야죠!' 회의에서 언쟁하는 장면
'제 기획안 보신 거 맞아요!? 제대로 알고 하셨어야죠!' 회의에서 언쟁하는 장면

 

 

법무팀은 방해자가 아니다

 

더 넓은 협업을 하려면 상대방의 목표를 알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커머스에는 전자상거래법, 개인정보 보호법, 광고법, 전금법 같은 다양한 법이 얽혀 있어 법무팀과 협업할 일이 굉장히 많습니다.

예컨대 이벤트 신청 완료율을 높이려고 개인정보 동의 체크박스를 기본적으로 체크된 상태로 만들고 싶다고 하면, 법무팀은 표정이 어두워지며 리스크가 있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경험이 없을 때는 법무팀이 대안도 없이 반대만 한다는 생각에 화가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법무팀의 역할은 리스크가 있다는 것을 발견해 알려 주는 것이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리스크를 인지했다면 그것을 어디까지 감당할지 정하고 그 안에서 다른 대안을 찾아내는 일은 기획의 몫입니다.

법무팀이 방해자가 아니라 리스크를 발견하는 사람이라는 것, 결국 우리는 각자 다른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고 나니 협업이 훨씬 유연해졌습니다.

 

'왜 내 기획을 방해하지...!?' 사무실에서 서류를 보며 답답해하는 모습
'왜 내 기획을 방해하지...!?' 사무실에서 서류를 보며 답답해하는 모습

 

 

AI 시대, 필요한 것은 존중의 기술

 

요즘에는 바이브 코딩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AI에게 자연어로 지시하면 바로 프로그램을 짜서 구현해 주는 방식입니다.

덕분에 기획자도 자신의 생각을 실제로 구현해 테스트하고 개발자와 상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주니어 기획자가 상담을 해 온 적이 있습니다.

AI 코딩 툴로 아이디어를 구현한 뒤 공식적인 기획 설명 자리에서 개발자들에게 이렇게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반응이 좋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별다른 언질 없이 개발자가 사전에 해야 할 역할을 자신이 했다고 말하면서, 개발자의 영역을 침범한 셈이었습니다.

저는 사적인 자리에서 먼저 제 기획을 이해하려고 만들어 봤다고 보여 주었다면 분위기도 좋아지고 전달하고 싶은 아이디어도 더 잘 전해졌을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전문 영역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필요한 것은 말의 기술이 아니라 존중의 기술입니다.

내 아이디어와 정보는 주되 주장을 강요하지 않고 상대방의 영역을 존중하는 것, 그리고 타이밍과 맥락을 지키는 것입니다.

 

무엇을 만드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만드느냐

 

그렇다면 성장은 어떻게 측정할까요?

저는 직급이나 회사 규모, 성과가 아니라 협업할 수 있는 사람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을 성장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IT 업계는 무엇을 해야 성공할지 알 수 없어 실패가 굉장히 많고, 그 실패가 좋은 결과를 위한 학습이 됩니다.

성공한 프로젝트로만 성장을 잰다면 실패한 프로젝트는 성장이 아니게 되어 버립니다.

초년 차에 함께 협업한 사람은 개발자와 디자이너 딱 두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채널에 포함된 사람 수를 세어 보니 155명이었습니다.

MD, 법무팀, 개발자, 디자이너, CS 팀까지, 각자 다른 상황과 목표와 책임을 가진 이들이 제가 기획한 내용을 두고 논의합니다.

제 일은 그들에게 명확한 기준을 전달하고 서로의 영역을 지켜 주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업무에서 AI도 많이 사용합니다.

처음에는 주문 이탈률이 떨어지는 이유를 정리해 달라는 식으로 명령만 했고, 당연히 결과는 엉성했습니다.

지금은 사람에게 요청하듯 먼저 상황을 설명하고 구체적인 요구 사항을 전달합니다.

이해하지 못하면 다시 설명하고 또 설명합니다.

사람을 대하던 협업의 기술을 AI에게 그대로 쓰고 있는 것입니다.

기존의 기획자가 무엇을 만드는 사람이 될 것인가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무엇을 만드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만드느냐가 AI 시대 커리어의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소가 될 것입니다.

함께 일할 줄 아는 사람만 살아남습니다.

 

 

커피 타는 것만 빼고 다 하는 PM의 15년 협업 이야기 | 세바시 207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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