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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아 CBS 기자, 청년들은 왜 아이를 안 낳을까 직접 물었다 | 세바시 210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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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6. 8. | 세바시 2100회 | 황민아 (CBS 시사 콘텐츠 PD·기자)

 

 

회사의 창사 70주년 특집 아이템은 '저출생'이었습니다. 임신과 출산에 별 관심이 없던 33살 기자는 일로 도망치듯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평생 볼 일 없을 청년들, 육아휴직을 택한 아빠들, 스웨덴의 워킹맘, 일본의 '침묵 가족'을 차례로 만납니다. 그 끝에서 발견한 것은 아이를 원하지 않는 마음이 아니라, 내 아픔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 이 강연의 순서
1. 일로 도망치듯 시작한 저출생 특집 취재
2. 평생 안 볼 7명이 모여 가장 먼저 꺼낸 '돈' 이야기
3. 논리가 아니라 각자의 상처로 싸우고 있었다
4. 아버지처럼은 되고 싶지 않다는 아빠들
5. 대물림하고 싶지 않은 것, 그리고 스웨덴이 지킨 '선'
6. 일본 '침묵 가족'이 다시 묻는 질문, 가족이란 무엇인가

 

 

황민아 CBS PD 강연 타이틀
황민아 CBS PD 강연 타이틀

 

 

일로 도망치듯 시작한 저출생 특집 취재

 

저는 CBS 보도국에서 시사 콘텐츠를 만드는 황민아라고 합니다.

2024년, 사회부장이 저를 부르더니 창사 70주년 특집을 맡으라고 했습니다.

아이템은 '저출생'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왜 저출생이지?'라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33살, 소위 말하는 가임기 여성이었지만 임신과 출산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제 인생의 우선순위는 늘 일이었고, 커리어를 쌓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고 또 재미있어 했습니다.

게다가 그 무렵 8년을 만난 애인과 막 헤어진 시점이라, 일로 도망치자는 마음으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기획 취재팀이 꾸려졌는데 넷 모두 30대 싱글 여성이었고, 연애도 하지 않았으며 이른바 K-장녀였습니다.

의도치 않게 이런 조합으로 시작했지만 막상 취재하려니 막막했습니다.

저출생은 한국 사회 문제들의 총체적인 결과여서 이미 관련 통계와 정책이 넘쳐났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질문의 방향을 돌려보기로 했습니다.

서로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아이를 낳고 싶어?

우리는 왜 아이가 있는 삶을 살지 않을까?'

정말 우리 사회의 청년들은 출산이나 양육, 가족을 욕망조차 하지 않는 걸까요?

 

평생 안 볼 7명이 모여 가장 먼저 꺼낸 '돈' 이야기

 

 

'평생 안 볼 7명'의 떼토크 시작
'평생 안 볼 7명'의 떼토크 시작

 

 

'보수·중도·진보' 7명의 정치성향
'보수·중도·진보' 7명의 정치성향

 

저출생에 대한 분석은 넘쳐났지만, 청년들이 모여 솔직하게 터놓고 이야기하는 자리는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번 까놓고 이야기해 보자고 했습니다.

단 하나의 조건은 '평생 볼 일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을 모으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성별도, 정치 성향도, 살아온 환경도, 경제적 배경도 모두 다른 청년 7명이 모였습니다.

 

'7명 중 5명, 가난하면 안 낳겠다'
'7명 중 5명, 가난하면 안 낳겠다'

 

대화가 시작되자마자 가장 먼저 나온 것은 돈 이야기였습니다.

7명 중 5명이 '나는 가난하면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답했습니다.

새삼 놀랐습니다.

누구도 낭만적인 사랑만으로 가족이 유지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족이라는 관계에는 친밀함과 사랑도 중요하지만 권리와 의무가 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책임감을 가질 수 없게 만드는 불안이 출산을 주저하게 만드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가난한 탓이다' 아버지의 뒷모습
'가난한 탓이다' 아버지의 뒷모습

 

패널 중에는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공장에서 일하다 다쳐 지금은 간호대에 입학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처럼 현장 실습 중 사고로 숨진 고 이민호 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 아버지가 했던 '내가 가난한 집에 태어나게 한 내 죄 때문이다'라는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그는 생각했다고 합니다.

'내 아이가 상층부에 진입하지 못하면 저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래서 출산 파업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 것 같다고 했습니다.

 

논리가 아니라 각자의 상처로 싸우고 있었다

 

다음 주제는 페미니즘이었습니다.

촬영장이 얼어붙었습니다.

한쪽은 페미니즘 때문에 연애와 출산이 더 어려워졌다고 했고, 다른 한쪽은 여전히 성 불평등이 문제라며 맞섰습니다.

대화는 한 시간 넘게 거의 평행선을 달렸습니다.

이러다 촬영이 파투 나겠다 싶어, 저는 준비해 둔 약속문을 꺼내 다 함께 읽자고 했습니다.

'내가 속한 문화가 일방적이라고 단정 짓지 않겠습니다.

의견 대립을 협력적으로 풀어 나가겠습니다.'

 

'토론 약속문' 첫 번째 약속
'토론 약속문' 첫 번째 약속

 

약속문을 읽고 한숨 고른 뒤에는 각자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보수 정당 활동 경험이 있는 여성 패널은 대학 시절 결혼과 출산을 이야기하면 자신이 실패한 여성으로 취급받았던 경험을 꺼냈습니다.

한 남성 패널은 대학 시절 같은 동아리 여성 후배가 폭행으로 사망했던 일을 들려주며, 그 일을 겪은 뒤 구조적 불평등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습니다.

 

CBS '2030 7시간 떼토크' 인터뷰
CBS '2030 7시간 떼토크' 인터뷰

 

가만히 듣다 보니 사람들은 논리로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가 품은 상처를 붙들고 싸우고 있었습니다.

 

'저마다의 아픔이 담긴 주장' 취재 노트
'저마다의 아픔이 담긴 주장' 취재 노트

 

돈과 사랑과 페미니즘을 넘나든 7시간의 대화는 매끄럽지 않았습니다.

싸우고 침묵하고 격해지면 다시 약속문을 읽었습니다.

그렇게 끝까지 이야기한 끝에 도달한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솔직히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다.

다만 내가 가진 상처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싶지 않을 뿐이다.'

 

아버지처럼은 되고 싶지 않다는 아빠들

 

다음 편에서는 육아하는 아빠들을 취재했습니다.

저는 솔직히 '남성은 돌봄에 서툴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고, 그 편견을 한번 깨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인정한 주 양육자 수준의 아빠들을 만나 보았습니다.

 

육아휴직을 택한 승남씨 인터뷰
육아휴직을 택한 승남씨 인터뷰

 

 

'지금 자리 포기할 수 있어?' 자막
'지금 자리 포기할 수 있어?' 자막

 

가장 기억에 남은 분은 승남 씨였습니다.

그는 딸이 태어나기 전부터 육아 휴직을 결심한, 회사 최초의 남성 육아 휴직자였습니다.

휴직을 말하자 회사는 '그럼 지금 자리를 포기할 수 있겠냐'고 되물었고, 그는 망설임 없이 '네'라고 답했습니다.

2년간 아이를 돌본 뒤 복직했을 때 그를 기다린 것은 성과 평가 최하위와 사라진 자리였습니다.

직장을 옮겼지만 둘째 육아 휴직 뒤에는 직원 등록마저 말소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제가 만난 아빠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나는 우리 아버지처럼은 되고 싶지 않다.' 무뚝뚝하고 평일에는 일하느라 얼굴 보기 어려웠던 아버지들.

그러나 그 아버지들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사랑이 제대로 전해지지 못했을 뿐임을 다들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처럼 되고 싶지 않다' 인터뷰
'아버지처럼 되고 싶지 않다' 인터뷰

 

그래서 이 아빠들은 아이와 부대끼며 보낸 시간을 나중에 후회 없는 기억으로 간직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대물림하고 싶지 않은 것, 그리고 스웨덴이 지킨 '선'

 

팀원끼리 서로를 알고 싶어 크로스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막내 희영 기자가 행복하지 않았던 유년 시절을 털어놓았습니다.

명문고, 명문대, 안정적인 직장까지 '도장 깨기'의 연속이었지만, 치열한 경쟁 때문에 늘 행복을 미뤄야 했던 그 시절을 자기 자식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데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우리는 왜 아이를 이토록 사랑하면서 동시에 압박할까요.

'네가 잘돼야 내가 행복하다', '부모 말 들으면 실패 안 한다'는 말들.

부모의 불안이 자녀에게 전이되면 아이는 막연한 압박감을 느끼고, 자기 감정보다 부모의 감정을 먼저 돌보다가 정작 자기 마음이 무엇인지 모른 채 자라기도 합니다.

스웨덴에서 만난 이니 씨는 13년째 워킹맘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결혼했을 때 한국 가족들은 '왜 아이를 안 낳느냐'고 물었지만, 스웨덴 시어머니는 단 한 번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뒤늦게 임신 소식을 전하자 시어머니는 '네가 아이를 원하지 않을 수도, 건강상의 이유가 있을 수도 있으니 묻지 않는 것이 예의라 생각했다'고 그제야 말했습니다.

가족이어도 선을 넘지 않을 수 있구나, 낯설면서도 인상 깊었습니다.

남편 안드레아스는 말했습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영향을 줄 수 있어도 대신 결정할 수는 없으며, 실패하더라도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존중의 경험이 쌓여 자존감이 된다고요.

그 존중받는 감각이 오히려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아이 인생을 대신 결정할 순 없다'
'아이 인생을 대신 결정할 순 없다'

 

 

일본 '침묵 가족' 일러스트
일본 '침묵 가족' 일러스트

 

 

일본 '침묵 가족'이 다시 묻는 질문, 가족이란 무엇인가

 

마지막 이야기는 책 한 권에서 시작된 일본의 '침묵 가족'입니다.

1995년 도쿄, 스물셋 싱글맘이던 가노 호코는 생후 8개월 된 아들을 안고 동네에 전단지를 뿌립니다.

'내 아이를 함께 키워줄 사람을 구합니다.' 처음엔 이게 가능한가 싶었는데, 전단지를 보고 모인 사람들을 보니 더 놀라웠습니다.

취업에 실패한 히키코모리, 관계 맺기에 서툰 20~30대 청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손팻말을 든 일본 육아 캠페인
손팻말을 든 일본 육아 캠페인

 

그들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를 함께 키웠습니다.

호코 씨는 20명 안팎의 돌보미들과 함께 아들을 길렀습니다.

돌봄의 기준은 높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이 옆에 있어 주는 것.

누군가는 밥 먹인 시간을 적고, 누군가는 육아 노트에 아이가 하는 말을 기록했습니다.

다만 어느 누구도 아이와 돌보미를 단둘이 두지 않았고, 유일한 규칙은 경험 있는 돌보미들이 여럿이 함께 돌보는 것이었습니다.

돌보미들도 아이와 관계를 맺으며 함께 변했습니다.

스스로를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 여겼던 이는 '내가 이렇게 살아도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구나'를 느꼈다고 했습니다.

호코 씨의 아들 스치는 세 살 생일에 어른 70명이 찾아와 축하해 준 이야기를 하며 함박웃음을 지었고, '엄마한테 혼나도 도망갈 곳이 있어서 좋았다'고 덧붙였습니다.

30년이 지나서도 그 시절을 떠올리며 함께 웃는 사람들을 보며, 저는 가족이란 무엇일까를 다시 생각했습니다.

 

'저출생은 미래 상상을 멈춘 것' 결론
'저출생은 미래 상상을 멈춘 것' 결론

 

각기 다른 마음들의 바닥에는 결국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내 아픔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입니다.

 

'내 아픔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지 않겠다'
'내 아픔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지 않겠다'

 

취재를 마치며 깨달았습니다.

청년들은 아이를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난이 대물림될까, 경쟁에 짓눌릴까 두려워 미래를 상상하는 일을 잠깐 멈춘 것뿐이었습니다.

내가 가진 상처에 정직해지고, 곁에 있는 타인에게 조금 더 포근한 곁을 내어주며 함께 살아도 괜찮겠다는 마음과 연결이 많아질 때, 우리는 비로소 미래를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알록달록하게 상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청년들은 왜 아이를 낳지 않을까, 저출생 취재기 | 세바시 210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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