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15. | 세바시 2103회 | 이소연 (『수상할 만큼 완벽한 결혼식』 저자)
요새 결혼은 줄었다는데 청첩장은 왜 이렇게 많이 날아올까요. 신나게 축하하고 돌아온 날이면 이상하게 기운이 쭉 빠집니다. 『수상할 만큼 완벽한 결혼식』을 쓴 이소연 작가가 한국의 결혼식이 어쩌다 이토록 피곤한 자리가 되었는지 그 비밀을 파헤칩니다. 5만 원짜리 웨딩드레스로 얼렁뚱땅 결혼식을 치른 그의 이야기입니다.
📖 이 강연의 순서
1. 한국 결혼식은 어쩌다 이렇게 피곤해졌을까
2. 천편일률 '완벽한 신부'와 웨딩 박람회의 민낯
3. 축하의 자리가 '소비의 전시장'이 될 때
4. '신부가 주인공'이라는 말 뒤에 숨은 진실
5. 5만 원 드레스, '얼렁뚱땅 결혼식'을 한 이유
6. 정답이 아니라, 나의 기준을 찾는 일

한국 결혼식은 어쩌다 이렇게 피곤해졌을까
요새 결혼을 잘 안 한다지만, 정작 결혼식에 갈 일은 참 많습니다.
신나게 축하하고 돌아왔는데 이상하게 집에 들어오면 기운이 쭉 빠집니다.
한국의 결혼식은 어쩌다 이렇게 피곤한 자리가 되었을까요.
2년 전 '5년째 새 옷을 사지 않은' 경험을 나눴던 이소연 작가가 30대가 되어 다시 무대에 섰습니다.
이번 주제는 결혼식입니다.
새로 낸 책 제목이 『수상할 만큼 완벽한 결혼식』인데, 바로 그 '완벽함'에 피곤함의 비밀이 숨어 있다고 말합니다.
조명은 화려하고 꽃은 화사하고 신부는 눈부시지만, 그 완벽한 장면 뒤에는 철저히 연출된 무대가 숨어 있었습니다.
당연해 보이는 이 완벽함 속에, 자본주의와 산업이 생각보다 깊숙이 침투해 결혼식 본래의 의미마저 훼손하고 있었습니다.



천편일률 '완벽한 신부'와 웨딩 박람회의 민낯
평소 모습 그대로 식에 서는 신부를 본 적이 있으신가요.
결혼을 한다 하면 살을 빼고 머리를 단아하게 올리고 예쁜 드레스를 입습니다.
개성 강한 친구들도 결혼식 사진만은 어쩐지 다 비슷합니다.
신부들이 이렇게 똑같이 '완벽'해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책을 쓰며 처음 가본 웨딩 박람회, 한국에서 결혼하려면 꼭 들러야 한다는 그곳에서 정신을 차려보니 플래너 앞에 앉아 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상담을 받고 있었습니다.
드레스를 고를 차례, 신이 나서 어떤 드레스를 입고 싶은지 물어볼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플래너의 첫 질문은 '가리고 싶은 부위 없으세요?'였습니다.
팔뚝, 부유방, 승모근 가운데 가리고 싶은 곳을 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광고 모델을 하러 간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러 간 것인데, 왜 내 몸을 부위별로 나누고 숨기고 관리하게 만드는 걸까요.
이런 일은 신부에게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자녀 결혼을 앞둔 부모는 기미 제거와 피부 관리를 하고, 하객은 계절별 하객룩과 명품백을 처음 고민합니다.
결혼식이 쏘아 올린 소비의 공은 축하의 마음만 안고 왔어야 할 가족과 하객에게까지 퍼져 나갑니다.


축하의 자리가 '소비의 전시장'이 될 때
더 큰 문제는 감정마저 소비로 치환된다는 점입니다.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한다면 이 가방, 이 시계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부부는 자본과 감정의 경계를 혼동하기 시작합니다.
하객도 마찬가지입니다.
식장에 들어서며 '여기는 돈 좀 썼네', '뷔페에 와인이 나오네' 하고 평가하고, 청첩장의 장소만 봐도 급을 가늠합니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평가하는 이들조차 진심으로 축하하고 즐기고 싶어 합니다.
다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비용 이야기가 그 시선을 만들 뿐입니다.
그렇게 결혼식은 어느새 함께 축하하는 자리가 아니라 자본과 소비의 전시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신부가 주인공'이라는 말 뒤에 숨은 진실
'그날 하루는 신부가 주인공이잖아'라는 말을 흔히 합니다.
그런데 정말 신부가 주인공이 맞을까요.
결혼을 준비하는 신부는 사실상 프로젝트 매니저가 됩니다.
300일, 길게는 1년 반 동안 외모·일정·예산·상견례·답례품을 모두 총괄하는 컨트롤타워입니다.
화려하게 식을 진두지휘한 뒤 맞닥뜨리는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가정의 기획 노동을 도맡고 출산 이후 신체 변화까지 관리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낍니다.
기혼 여성 4명 중 1명은 일하던 일터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비용은 계속 오릅니다.
2025년 기준 서울에서 무난하게 치른 결혼식 비용이 약 7천만 원입니다.
사회 초년생 둘이 1년 내내 번 돈을 하루에 쓰는 셈이고, 통계적으로 남성에게 더 큰 부담이 지워집니다.
그렇게 모은 축의금은 신랑 신부 주머니를 거치지도 못한 채 곧장 정산 비용으로 빠져나가고, 정작 큰돈은 대형 중개업체와 포털·SNS 기업으로 흘러갑니다.
게다가 SNS 업로드가 통과의례의 연장이 되면서 보정된 완벽한 사진만 남습니다.
다음 세대는 그 사진을 보며 기대를 높이고, 결혼식은 끝없이 더 아름다워지고 더 비싸집니다.
그 곁에서 함께 늘어나는 것이 결혼식 한 번에 발생하는 탄소 약 14.5톤과 폐기물 180kg입니다.

5만 원 드레스, '얼렁뚱땅 결혼식'을 한 이유
문제가 이렇게 많다면 그냥 안 하면 되지 않을까요.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그런데 반전은, 책을 쓰면서 저는 결혼식을 했다는 것입니다.
작은 규모로 많은 걸 셀프로 진행한 '얼렁뚱땅 결혼식'이었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행사와 축하의 자리를 포기하자는 게 아닙니다.
다만 소비에 소비를 거듭하는 대신 '우리 기준'대로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결제하고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사람으로 말이죠.
환경에 덜 해로웠으면 좋겠다는 기준을 세우자 눈앞의 소비 옵션들이 자연스럽게 사라졌습니다.
웨딩드레스는 중고 거래로 5만 원에 사서 끝나자마자 4만 원에 되팔았고, 스튜디오 촬영 대신 신혼집과 공원에서 가족·친구가 찍어준 사진을 썼습니다.
반지는 처음 맞춘 커플링을 그대로 썼고, 당일엔 음식이 남을까 봐 반찬통을 싸 들고 갔습니다.
남들 하는 만큼 맞추며 사는 일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소중한 가치관을 희생해야 한다면, 그거야말로 진짜 큰 희생 아닐까요.
물론 쉽지 않았습니다.
스몰 웨딩이라 초대하지 못한 지인들에게 따로 자리를 만들고, 축의금 문제로 양가 부모님께 양해를 구하는 과정은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벨라인이냐 A라인이냐를 고민하던 시간보다 그 대화의 시간이 훨씬 귀했습니다.
정답이 아니라, 나의 기준을 찾는 일
오해는 말아 주세요.
화려한 컨벤션 웨딩은 나쁘고 친환경 스몰 웨딩이 옳다는 이야기가 결코 아닙니다.
저마다의 기준을 가져 보자는 것입니다.
당연하게 여기던 자본의 논리와 '남들이 하니까'라는 관성 대신,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은 무엇인지 묻는 질문.
그 질문의 시작이 결혼식이면 좋겠습니다.
결혼식은 인생에 한 번뿐이라지만, 사실 우리의 모든 순간이 인생에 단 한 번뿐입니다.
준비 과정이 힘들고 피곤하기만 한 게 아니라, 더 멋지고 우리다운 인생을 위한 마중물이 되어 줄 것이라 믿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결혼하든, 나아가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그 다양한 결정을 당신의 기준으로 만들어 가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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