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호선 교수, 가족 셋 잃은 여인을 살린 '인생 편집'의 힘 | 세바시 2113회

반응형

2026. 7. 10. | 세바시 2113회 | 이호선 (숭실사이버대학교 교수)

 

 

왜 우리는 좋았던 순간은 잊고 불행만 또렷이 기억할까요. 상담심리학자 이호선 교수는 그 이유를 부정성 편향과 피크엔드 룰로 설명합니다. 2년 반 만에 가족 셋을 잃은 여인이 다시 살기로 선택한 이야기를 통해, 기억도 인생도 '편집'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 나의 밑바닥에 숨어 있던 '다행'의 순간을 발굴하는 희망의 편집법을 만나 보세요.

 

📖 이 강연의 순서
1. 불행만 또렷이 기억나는 이유, 부정성 편향
2. 신혼여행이 지옥이 된 이유, 피크엔드 룰
3. 가족 셋을 잃은 여인, 그리고 '다행이다'
4. 불행은 몸으로 겪는다, 건강 일기를 써라
5. 이름만 들으면 아는 배우의 감정 일기
6. 인생은 편집이다, 당신이 역사의 주인공

 

 

이호선 교수 강연 타이틀카드
이호선 교수 강연 타이틀카드

 

 

🧠 불행만 또렷이 기억나는 이유, 부정성 편향

 

상담 현장은 절망의 봉우리에서 눈물의 저수지로 뛰어드는 순간입니다.

무겁고 아프기도 하고, 희망에 설레다가 다시 좌절에 빠지기도 하지요.

우리도 살다 보면 내 인생에서 반복적으로 넘어지는 주제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주제들은 대개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돌아보면 내 인생에는 늘 큰 돌부리가 있었고 불행은 멈추지 않았다고 느끼는 분이 많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며, 우리는 이를 부정성 편향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은 긍정적이게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힘들고 서럽고 아팠던 기억을 가장 먼저, 또 반복적으로 떠올리도록 태어난 존재입니다.

그래야 비슷한 일이 다시 닥쳤을 때 덜 넘어지고 덜 아프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보존하려는 본능적인 사고방식이 바로 부정성 편향입니다.

 

'부정성 편향' — 부정적 경험을 더 오래 기억
'부정성 편향' — 부정적 경험을 더 오래 기억

 

 

💑 신혼여행이 지옥이 된 이유, 피크엔드 룰

 

3년 연애 끝에 결혼한 부부가 파리로 신혼여행을 다녀오자마자 상담실로 왔습니다.

신부가 눈물 범벅이 된 채로요.

7박 8일 중 4일은 정말 잘 지냈는데, 5일째 되던 날 남편이 술을 마시고 전 애인 이야기를 꺼내면서 큰 싸움이 시작됐습니다.

소리를 지르고 몸싸움까지 벌어졌고, 마지막 날 아내는 비행기 안에서 내내 울며 돌아왔습니다.

신혼여행이 어땠냐고 묻자 아내는 '지옥이었다'고 답했습니다.

좋았던 4~5일은 사라지고, 중간의 다툼과 마지막 눈물이 신혼여행 이전의 모든 사랑까지 물거품처럼 형편없는 여정으로 결론짓게 만든 것입니다.

 

'피크엔드 룰' — 절정과 마지막으로 평가
'피크엔드 룰' — 절정과 마지막으로 평가

 

이것을 피크엔드 룰이라고 합니다.

절정(Peak)과 마지막(End) 두 순간으로 경험 전체를 평가하는 현상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과 바로 직전의 순간이 행복했다면 평생이 행복하다고 여기고, 그 두 순간이 불행했다면 평생을 불행이라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정성 편향 탓에 우리가 하이라이트로 떠올리는 순간의 상당 부분이 바로 불행의 순간입니다.

그렇다 보니 우리의 삶은 불행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상담은 이전의 서사가 또 다른 서사로 옮겨 가도록 인생의 전환을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우리의 하이라이트가 정말 한 번뿐이었을까요.

불행의 장면을 하나만 가진 사람은 거의 없고, 오히려 여러 개를 가진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인생의 전환을 믿는 과정' 상담 장면
'인생의 전환을 믿는 과정' 상담 장면

 

 

🕯️ 가족 셋을 잃은 여인, 그리고 '다행이다'

 

8년 전 상담했던 분이 다시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 사이 남편은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두 아들은 함께 여행을 갔다가 교통사고로 한 번에 잃었습니다.

2년 반 만에 가족 셋을 모두 떠나보낸 것입니다.

그분은 말했습니다.

'부모 복 없는 년은 남편 복도, 자식 복도 없나 봐요.' 가난했던 출생과 성장, 좋지 않았던 남편과의 관계, 사랑하던 두 아들을 잃은 장면까지, 짧은 이야기 속에도 불행의 봉우리가 네 개나 드러났습니다.

제 인생은 저주받았고,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나았다고 했습니다.

저는 말씀드렸습니다.

당신은 신에게 불평할 자격이 있고, 소리 지를 자격이 있다고요.

어떻게 하고 싶으시냐 여쭈니 죽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저라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1년 반 남짓 상담을 이어 가면서 이분은 이제 죽고 싶지 않다고, 새로운 선택을 시작했습니다.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피크엔드 룰이었습니다.

극심했던 가난의 봉우리 옆에는 대신 매를 맞아 준 언니가, 다음 불행의 순간에는 가까운 절의 스님이, 무시받던 결혼 생활에는 위로가 되어 준 큰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다행이다'라고 되짚었습니다.

 

'네 번의 불행'에 삶 전체를 부정한 내담자
'네 번의 불행'에 삶 전체를 부정한 내담자

 

마지막으로 남은 막내딸을 이분은 나중에야 기억해 냈습니다.

불행이 깊으면 생각도 기억도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딸이 상담 현장에 나타나 엄마를 끌어안으면서, 상담의 주제는 애도에서 희망으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이분의 이야기를 모두 글로 썼습니다.

만날 때마다 다시 쓰고 집에서 첨삭해 오게 했더니, 9포인트로 빼곡한 258페이지가 되었고, 다시 다듬어 313페이지의 소설 한 편이 나왔습니다.

첨삭을 반복하며 이분은 봉우리가 달라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불행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의 봉우리에서 다음 봉우리로 곧장 옮겨 가지 않습니다.

봉우리를 내려와 꽃밭을 지나고 시냇물을 마시고 나무 그늘에서 봄바람을 맞은 순간들을, 마치 폼페이 화산재 밑에 묻힌 시간을 붓으로 꺼내듯 하나하나 발굴해 내는 것이 상담입니다.

 

'잊고 있던 사랑의 순간을 떠올리다'
'잊고 있던 사랑의 순간을 떠올리다'

 

 

🩺 불행은 몸으로 겪는다, 건강 일기를 써라

 

불행은 늘 몸으로 겪습니다.

그래서 불행한 사람 중에 건강한 분은 거의 없습니다.

오래 아팠던 분들은 피부로, 온몸으로 통증을 안고 들어오지만, 정작 병원 검사에서는 신체적 문제가 없다는 말을 듣습니다.

이것을 신체화 증상이라고 합니다.

 

'마음의 고통은 몸의 증상으로'
'마음의 고통은 몸의 증상으로'

 

우울증이 있는 분들의 안색은 대개 희거나 노란빛에 가깝고, 눈을 온전히 뜨는 경우가 드뭅니다.

허리가 굽고 걸음이 느리며 발이 끌리고, 눈꺼풀의 움직임도 아주 천천히입니다.

한두 가지만 봐도 그가 지나온 삶의 고통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상한 심장 증후군도 있습니다.

큰 충격이나 상처가 지나간 뒤 심장이 일시적으로 약해져, 심근경색과 똑같은 통증을 겪는 것입니다.

심장을 부여잡고 응급실에 가도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상한 심장 증후군' (스트레스성 심근병증)
'상한 심장 증후군' (스트레스성 심근병증)

 

심리학에는 알렉시티미아, 곧 감정표현불능증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감정은 분명히 있는데 밖으로 표현되지 않고, 그 감정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요즘은 20~40대 젊은 세대에서 이런 경우가 크게 늘고 있습니다.

 

'알렉시티미아' 감정표현불능증
'알렉시티미아' 감정표현불능증

 

 

'건강일기' — 몸의 지표를 기록하라
'건강일기' — 몸의 지표를 기록하라

 

그래서 저는 건강 일기를 권합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기분, 통증, 식사의 질을 각각 1점에서 10점으로 매겨 오늘의 점수를 적는 것입니다.

3주만 모아도 내가 환자인지 아닌지, 상태가 좋아지는지 나빠지는지가 금방 드러납니다.

누가 감히 정신 승리를 말합니까.

정신 승리가 그렇게 잘 된다면 웅크리고 울지 말았어야지요.

우리는 취약한 사람들입니다.

말 못 할 불행을 몸으로 겪을 수 있고, 몸의 변화를 통해 정신과 정서의 변화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습니다.

내 몸의 변화가 일상의 변화를 만들고, 일상의 변화는 곧 인생 서사의 변화로 이어집니다.

불행은 우리를 무차별적으로 짓밟는 침범적 사건이 아니라, 걸러 내고 선택할 수 있는 해석의 대상입니다.

 

🎭 이름만 들으면 아는 배우의 감정 일기

 

 

'불행은 극복하고 대처하는 것'
'불행은 극복하고 대처하는 것'

 

이름만 들어도 아는 한 배우가 있습니다.

성장 내내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했고, 친구와 부모에게 매를 맞았으며, 먹을 것이 없어 여기저기 얻어먹으러 다녔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한 작품이 잘됐지만,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죽고 싶다는 생각에 시달리다 상담을 찾아왔습니다.

 

'마음의 병을 앓은 한 배우'
'마음의 병을 앓은 한 배우'

 

그는 불행한 사람들의 표본이었습니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으면서 자신에게 행복은 맞지 않는다고 믿어 웃는 것조차 불편해했습니다.

오히려 고난과 안 될 일을 생각하면 안심이 된다고 했습니다.

나는 원래 그런 인간이니까요.

그때부터 두 개의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는 건강 일기, 다른 하나는 감정 일기였습니다.

감정 일기에는 그날 행복했던 감정 세 개와 그 사건을 적고, 최악을 1점, 최고를 10점으로 하여 그 감정을 수치화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한 달 반이 지나자 평균 점수가 1.8점이나 올랐습니다.

본인도 깜짝 놀랐지요.

비결은 어려운 이야기 끝에 '그래서 참 다행이었다'를 반복해서 쓰게 한 것이었습니다.

그 한마디가 점수를 끌어올린 가장 핵심적인 단어였습니다.

 

✨ 인생은 편집이다, 당신이 역사의 주인공

 

 

'다행이다(多幸)' — 마법 같은 말
'다행이다(多幸)' — 마법 같은 말

 

저는 인생도 기억도 편집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는 실제 팩트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석을 통해 과거를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다시 편집해 보면 좋겠습니다.

고통의 봉우리와 또 다른 봉우리 사이에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 지점을 달리 바라본다면, 가장 밑바닥에 있던 '다행'의 순간들이 반드시 우리의 하이라이트가 됩니다.

상담은 못 보던 지점을 보게 하고, 가장 어려운 순간에도 나를 도왔던 보이지 않는 손들을 기억하게 하는 과정입니다.

역사가 편집본이라면, 살아서 걸어 다니는 움직이는 역사인 여러분의 삶도 편집이 가능합니다.

여러분이 바로 역사의 주체이자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편집이다' 마무리 메시지
'인생은 편집이다' 마무리 메시지

 

불행의 봉우리 사이에 이미 존재했던 희망의 서사들을 발굴하기만 하면, 우리의 역사는 다른 방식으로 편집됩니다.

오늘부터 여러분도 자신의 희망 서사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인생은 편집이다, 희망의 서사 다시 쓰기 | 세바시 2113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