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연성 초등교사,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가 교단에 선 이유 | 세바시 2112회

반응형

2026. 7. 8. | 세바시 2112회 | 정연성 (초등학교 교사)

 

 

빨래를 너는 평범한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갖고 싶은 꿈일 수 있습니다. 부모와 떨어져 보육원에서 자란 정연성 교사는 어른이 늘 무서웠던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손 내밀어 준 몇몇 어른 덕분에 그는 초등교사가 되었고, 이제 자신의 상처를 발판 삼아 아이들 곁에 섭니다. 2025 삼성행복대상 청소년부문 수상자의 이야기입니다.

 

📖 이 강연의 순서
1. 빨래를 너던 어느 겨울날의 행복
2. 어른이 늘 무섭기만 했던 아이
3. 오늘 남아서 같이 공부하고 갈래?
4. '동노'라는 조롱과 무너진 첫 꿈
5. 7천만 원, 도움의 손길이 지켜준 다짐
6. 상처를 발판 삼아 교단에 서다

 

 

'상처받은 아이를 구원하는 어른의 기술' 강연
'상처받은 아이를 구원하는 어른의 기술' 강연

 

 

🧺 빨래를 너던 어느 겨울날의 행복

 

 

마당에서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빨래를 너는 따뜻한 만화풍 일러스트
마당에서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빨래를 너는 따뜻한 만화풍 일러스트

 

여러분이 기억하는 가장 행복했던 최초의 순간은 언제인가요?

저에게 그 순간은 뜻밖에도 온 가족이 둘러앉아 빨래를 너던 어느 겨울날이었습니다.

함께 빨래를 넣을 가족이 있고, 보일러를 켤 돈이 있고, 그 온기 속에서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곧 안전한 관계가 있다는 뜻이었으니까요.

누군가에게는 너무 당연한 이 평범함이, 저에게는 오랫동안 신기루처럼 멀기만 했기에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사실 그때 함께 빨래를 넣은 가족은 저의 보육원 가족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아주 긴 세월을 부모님과 떨어져 보육원에서 자랐습니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가족이지만, 제게는 더없이 소중한 사람들이죠.

그리고 지금 저는 매일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어야 하는 초등학교 교사로 살고 있습니다.

 

😨 어른이 늘 무섭기만 했던 아이

 

보육원에 오기 전, 저의 원래 가정은 가정폭력이 일상이었습니다.

폭력을 견디다 못한 어머니는 저를 데리고 집을 나오셨지만 그 뒤의 삶도 쉽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새로 만난 어른들은 저를 짐짝처럼 여겼고, 그렇게 여러 어른을 겪으며 제게 어른이란 늘 무섭고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런 제게 처음으로 살갑게 말을 걸어준 어른은 학교의 사회복지사 선생님이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방임 속에 살고 있다는 것, 집에 가도 반겨주는 사람 없이 굶는다는 것, 어른들의 폭력에 시달린다는 것을 털어놓았습니다.

한참을 말없이 듣던 선생님은 어른이 아이에게 그러면 안 된다며 처음으로 제 편을 들어주셨습니다.

선생님께 제 환경을 말씀드린 일을 계기로, 저는 2012년 8월 10일 보육원에 입소했습니다.

이제 더는 맞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어른이 있다는 안정감, 누군가 나를 걱정해 준다는 경험만으로 제 삶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위해 이렇게 애써주는 어른들이 있다니, 어쩌면 나도 괜찮은 사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 오늘 남아서 같이 공부하고 갈래?

 

제 인생의 방향을 바꿔준 어른이 한 분 더 계십니다.

바로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입니다.

그때 저는 지금 제가 봐도 가장 손이 많이 가는 학생이었습니다.

옷은 늘 꾀죄죄했고 씻지 못해 냄새가 나는 날도 많았으며, 공부도 뒤처지고 친구들과도 자주 부딪혔습니다.

그런 저에게 어느 날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연성아, 오늘 남아서 같이 공부하고 갈래?

17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 말입니다.

선생님은 퇴근 시간까지 저를 남겨 수학을 가르쳐 주시고,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저녁이면 밥을 챙겨 먹여 보내주셨습니다.

감정 조절이 서툴고 자주 갈등을 일으키는 아이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교사가 된 지금은 압니다.

이때의 기억은 나도 언젠가 저런 어른이 되고 싶다는 꿈, 곧 초등교사라는 꿈으로 싹을 틔웠습니다.

 

💔 '동노'라는 조롱과 무너진 첫 꿈

 

하지만 꿈을 가졌다고 삶이 갑자기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여전히 서툴렀고, 세상에는 저를 달갑게 보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저를 동노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살던 동촌동과 엄마가 없다는 뜻을 합친 조롱이었습니다.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한 그 상처는 지금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도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초등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이었습니다.

시험 기간에 휴대폰을 스스로 반납할 만큼 간절히 공부해 고등학교 3학년 때 한 교육대학교의 면접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배경을 언급하면 안 된다는 규정을 모른 채 제가 자란 환경과 노력을 솔직하게 말해버렸고, 결과는 불합격이었습니다.

진심을 말하면 진심이 전해질 줄 알았는데, 처음으로 꿈이 무너지고 눈앞이 아득해지는 기분을 경험했습니다.

차선책으로 지방 사범대에 진학했지만 초등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은 꺼지기는커녕 더 선명해졌습니다.

저는 다시 입시를 준비해 대구에 있는 교육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2년을 돌아온 셈이지만, 그 시간 덕분에 초등교사가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제 삶의 분명한 방향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 7천만 원, 도움의 손길이 지켜준 다짐

 

교대에 입학하며 다짐을 하나 했습니다.

교대에 다니는 동안은 교육을 절대 돈벌이 수단으로 삼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데도 과외 대신 교육 봉사와 멘토링을 이어갔고, 제가 자란 보육원 동생들을 위한 후원도 시작했습니다.

 

그루터기 학습멘토링 수료증과 대구광역시 꿈나눔 멘토링 활동인증서 두 장
그루터기 학습멘토링 수료증과 대구광역시 꿈나눔 멘토링 활동인증서 두 장

 

국가장학금은 한 사람당 여덟 번만 받을 수 있는데, 저는 2년을 다른 학교에 다닌 탓에 교대 3·4학년 학비를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그럼에도 다짐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여러 곳에서 내밀어 준 장학금과 후원이라는 도움의 손길 덕분이었습니다.

학비를 뺀 생활비와 장학금, 후원금만 정리해 보니 그 금액이 무려 7천만 원이 넘었습니다.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으니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나를 믿고 도와주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돈을 단순한 지원금이 아니라, 나중에 꼭 누군가의 힘이 되어 달라는 믿음과 응원으로 여겼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 가지를 배웠습니다.

어릴 때 세상은 저를 차갑게 여겼지만, 내가 나를 놓지 않는 순간 세상은 생각보다 따뜻하다는 것을요.

 

👨‍🏫 상처를 발판 삼아 교단에 서다

 

 

2025 에몬스 장학생 장학금 수여식 단체 기념사진, 자막 '막막한 순간에도 내 다짐을 지켜준 도움의 손길'
2025 에몬스 장학생 장학금 수여식 단체 기념사진, 자막 '막막한 순간에도 내 다짐을 지켜준 도움의 손길'

 

저는 지금 한 초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첫 임용 시험에서 1.8점 차이로 떨어져, 교대 면접 탈락에 이어 두 번째로 인생이 쓰다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다시 도전하려 합니다.

초등교사라는 직업이 어딘가에 있을 저와 같은 아이에게 손 내밀 수 있는 방법임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쟤는 왜 저럴까, 왜 준비물 하나를 못 챙겨 올까 하는 의문을 만날 때, 저는 조금 다르게 바라봅니다.

저는 준비물을 챙기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 챙긴 적이 있고, 관심받고 싶어 더 거칠게 행동한 적도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왜 저럴까가 아니라 아직 배우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고 아이들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숨기고 싶었던 과거가 지금은 아이들을 가장 잘 이해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상처는 없던 일이 되지 않지만, 그 상처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이유는 된다고 믿습니다.

저는 평생 평범함을 바라왔습니다.

빨래를 널고 소파에 앉아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는, 누군가에겐 너무 당연한 그 일들이 제겐 가장 갖고 싶은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 평범함을 향해 달려온 모든 날이 사실은 아주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제가 만날 아이들의 삶에 작은 버팀목이 되어 주고 싶습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고, 그 공간에서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삶은 선택할 수 없을 때가 많지만 태도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태도를 결정하는 핵심은 결국 내 마음을 읽는 감각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가 교단에 선 이유 | 세바시 2112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