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7. 15. | 세바시 2115회 | 김경일 (인지심리학자,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누구나 고치고 싶은 나쁜 습관 하나쯤은 가지고 있습니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나쁜 습관이 튀어나오는 진짜 방아쇠가 바로 스트레스라고 말합니다. 의지력으로 습관과 싸우기보다 상황의 힘을 이용하라는 것이 그의 결론입니다. 스트레스에 무너지지 않고 좋은 습관을 장착하는 인지심리학의 공식을 만나봅니다.
📖 이 강연의 순서
1. 스트레스가 나쁜 습관의 문을 연다
2. 웬디 우드 교수의 습관 실험
3. 성격보다 상황, 상황의 힘을 써라
4. 습관을 만드는 육하원칙, if-then-when
5. 조정래 작가와 하루 세 매의 힘
6. 지혜롭게 자책하고 상황을 기록하라

🧠 스트레스가 나쁜 습관의 문을 연다
한국은 흔히 고각성 스트레스 사회라고 표현됩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만큼, 그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평소 감춰두었던 나쁜 습관이 그 즉시 문을 열고 나오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나쁜 습관을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순간 습관은 통제를 벗어납니다.
요즘 스트레스가 과하다고 느껴지는 날에는, 습관과 싸우려 하지 마십시오.
저는 대기업 면접에 참여하며 십 년 넘게 이 현상을 관찰해 왔습니다.
열 명 중 세 명은 들어오자마자 다리를 꼬고, 두 명은 턱을 괸 채 면접을 진행하며, 한 명은 나가면서 불을 끄고 나갑니다.
정작 본인은 자신이 그런 행동을 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합니다.
스트레스 상황이 그 사람의 나쁜 습관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입니다.
한일 비교문화 심리학에서는 일본을 외로운 사회, 한국을 괴로운 사회라고 표현합니다.
외로움이 만나고 싶은 사람을 못 만나는 고통이라면, 괴로움은 만나기 싫은 사람을 계속 만나야 하는 고통입니다.
한국에서 사는 한 스트레스를 완전히 피할 방법은 없고, 그래서 나쁜 습관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이 유독 많은 것입니다.
📊 웬디 우드 교수의 습관 실험
인간의 심리와 습관의 관련성을 연구하는 세계적 전문가로 미국 남가주대학(USC)의 웬디 우드 교수가 있습니다.
그는 대학생 참가자들에게 자신의 좋은 습관과 나쁜 습관, 그리고 그 습관의 강도를 열거하게 한 뒤 4주 동안 행동을 기록했습니다.


첫 2주는 중간고사 기간으로 스트레스가 높은 시기였고, 성적이 8주 뒤에 나오는 후반 2주는 상대적으로 스트레스가 낮은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시험 기간에는 다리를 꼬거나 말을 끊고 경청하지 않는 나쁜 습관은 물론, 긍정적인 습관까지 모두 함께 튀어나왔습니다.
스트레스는 습관을 발현시키는 순간입니다.
좋은 습관도, 나쁜 습관도 그때 한꺼번에 쏟아집니다.

연구자들은 한발 더 나아가 인위적으로 스트레스를 유발했습니다.
오른손잡이 참가자의 오른손을 4주간 묶어 왼손만 쓰게 한 것입니다.
글씨도, 컴퓨터도, 스마트폰도 모두 왼손으로만 써야 하는 상황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관찰되었습니다.
🌱 성격보다 상황, 상황의 힘을 써라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새로운 좋은 습관을 만들어 상황을 바꿔보자는 생각은 좋은 전략이 아닙니다.
차라리 내 습관 중에 좋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려 그것을 강화하고, 그것을 할 수 있는 상황 속으로 나를 밀어 넣는 편이 낫습니다.
성격보다 상황이고, 기질보다 상황입니다.
타고난 기질은 바꾸기 어렵고 능력도 순간적으로 끌어올리기 어렵지만, 상황의 힘은 놀랍도록 위대합니다.
1990년대의 한 실험에서는 수학은 남학생이 잘한다거나, 수학은 아시아계가 잘한다는 당시의 고정관념을 상황적으로 자극하는 것만으로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의 점수가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인지심리학자들은 창의적 인재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습니다.
대신 자기를 창의적으로 만드는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 상황을 잘 아는 사람이 결과적으로 창의적인 일을 많이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 습관을 만드는 육하원칙, if-then-when
저 역시 얼마 전부터 새로운 습관 하나를 실천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바로 탈모약을 바르고 영양제를 먹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사소한 습관 하나 만드는 일이 정말 어려웠고, 제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이 이렇게 엉망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
이때 의지력으로 습관을 만들려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의지력이 필요 없을 만큼 저절로 되는 순간을 찾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인지심리학자들이 오랫동안 검증해 온 방법이 바로 if-then-when 규칙입니다.
육하원칙이 들어가지 않는 계획으로는 습관을 만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정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오고 8시 알람이 울리면, 그때 영양제를 먹고 탈모제를 바른다.
언제, 무엇을 하고 나서, 그것을 한다는 조건이 모두 들어가면 우리 뇌는 그것을 중요한 정보로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한 가지 비결이 더 있습니다.
아주 기분 좋은 날이 아니라, 살짝 기분이 가라앉은 날에 새 습관을 시작하면 성공적으로 장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분이 좋은 날은 뇌가 변화를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 조정래 작가와 하루 세 매의 힘
실제로 저는 딸이 원하던 대학에 합격해 집안 잔치를 벌인 뒤, 식탁에 올려둔 영양제를 2주 동안 한 번도 먹지 않았습니다.
기쁜 날에는 새로운 변화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첫째 딸이 아르바이트 중 속상한 일을 겪었다는 카톡을 보내온, 살짝 마음이 가라앉은 날에야 비로소 영양제를 다시 먹기 시작했습니다.
인지심리학자 아트 마크먼 교수는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도 쓸모가 있다고 말합니다.
아주 지친 날은 예전의 좋은 습관을 다시 꺼내 실행하는 날, 아주 비극적인 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지만, 약간 안 좋은 날이야말로 새로운 시도를 시작하기에 의외로 대단히 중요한 날이라는 것입니다.
조정래 작가는 오랫동안 무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분이 그리 좋지 않던 아침에 문득 원고지 30매를 써보자고 마음먹었더니, 신기하게도 그것이 꾸역꾸역 계속 써지더랍니다.
그렇게 매일 30매를 쌓아 태백산맥과 한강 같은 대작을 써낼 필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원고지 세 매를 쓸 수 있는 그릇이지만, 그 세 매를 매일 쌓아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조정래 작가를 따라 30매를 써보려다 도저히 못 하겠더군요.
대신 저는 기분이 좋지 않던 어느 날, 저녁을 먹고 아내와 수다를 떤 뒤 원고지 세 매를 쓰기 시작해 2013년부터 13년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조정래 작가의 10분의 1인 세 매지만, 그것을 꾸준히 쌓아 웬만한 글을 쓰는 반열에 오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지혜롭게 자책하고 상황을 기록하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힘든 날에는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내가 가진 좋은 습관이 무엇이었는지 꺼내보는 날로 삼으면 됩니다.
우리는 타고난 기질과 갈고닦은 기량 못지않게, 의외로 상황의 힘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if-then-when 규칙에 따라 기분이 그리 좋지 않은 날 조금씩 시작해 보십시오.
남보다 분량을 줄여서 하는 편이 낫다면, 기꺼이 그렇게 출발하는 것이 훨씬 좋은 결과를 만듭니다.
그렇게 해도 결과가 좋지 않을 때는 너무 자책하지 말되, 지혜롭게 자책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자책이란 나는 왜 이런 것도 못할까 하고 자신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자기 이름을 부르며 관찰자의 시선으로 묻는 것입니다.
경일아, 너는 왜 좋은 습관을 만들 수 있는 시점과 상황을 아직 못 찾고 있니, 하고 말입니다.
저는 집에서는 논문을 못 쓰고 오후 2시가 넘으면 바보가 되지만, 연구실 오전에는 논문이 잘 써지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칼럼은 연구실에서 죽어도 못 쓰지만, 일요일 저녁 아내와 밥을 먹고 한 주 동안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나눈 뒤에는 잘 써집니다.
이렇게 나를 움직이는 상황적 단서를 기록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하면 실패조차 자책의 대상이 아니라, 나를 위한 좋은 기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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