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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298회 | 스스로 세운 벽을 허물다 | 이하림 바이올리니스트

 

 

강연 소개 : 우리 삶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제 경우는 음악입니다.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것도 아닙니다. 다섯 살 때부터 시작한 음악은 서른을 넘긴 지금까지 제 곁을 지켜왔습니다. 수 백 시간동안 연습하고 준비하지만 정작 무대에 서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무대의 생활은 그래서 힘들고 고됩니다. 한 때는 이마저도 사라지게 될까봐 두려웠습니다. 이십대의 젊음과 에너지가 사그러질즈음 내 음악도 사람들로부터 잊혀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두려움 때문에 괴로웠습니다. 저도 모르게 스스로의 벽을 세우고 마치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처럼 괴로워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 여러분 앞에서 그 벽을 허물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음악을 들려드리겠습니다.

 

게시일: 2013. 9. 2.

 

 

 

 

안녕하세요 전자 바이올리니스트 이하림입니다

반갑습니다

오늘 저는 특이하게 등장부터 제 직업을 한 번에 보여줄 수 있게 연주를 통해서 등장했는데요 어떠셨어요?

감사합니다

 

오늘 저는 저는 이 자리에서 

저는 어떻게 헤서 전자바이올린을 하고 있고 지금 오늘 이 순간까지 오게 됐는지 저에 스토리를 들려드릴려고 나왔어요

 

어렸을 때 다섯 살 때 피아노를 시작해서 아홉 살 때 바이올린을 같이 이렇게 공부를 해서 

어찌보면 평범하게 남들처럼 클래식 바이올린으로 음대 진학을 합니다

 

여기까지 보통 분들에게 얘기를 드리면

'아 그래 부유한 집에서 온실 속에 화초처럼 그렇게 커서 곱게 곱게 그렇게 음대 진학했구나'

이렇게 생각들을 많이 하시고 선입견들을 많이 가지세요

네 저는 사실 일반 그냥 학교 여러분들 처럼 인문계 그냥 학교를 다니면서 야간자율학습에 

연습할시간이 굉장히 부족한 그런 상황에서 음대 진학을 했고요

제가 입시 때가 고 3 수험생 갔을 때가 IMF 때 그 ... 시기였어요

사실은 저는 너무 힘들게 입시를 쳐야되서 포기를 해야 되는 저의 첫 번째 그런 순간이 오기도 했었어요

부모님께서 너무나 어려워진 가정 환경 때문에

꼭 그걸 해야겠니?

이렇게 말씀하셨던 그랬던 저에 지금까지 인생에 있어서 첫 번째 고비였던거 같아요

레슨비를 제 때 가져갈 수 없을 정도로 집이 어려웠고 

아버지 사업 부도

저희 집에 부동산들이 이제 하나씩 없어 지금 와중에서 

저의 고집으로 어째든 음대를 들어갑니다

 

그때부터 저는 이제 하루도 빠짐없이 아르바이트를 해요

차도 없었기 때문에

책가방을 매고

악기를 매고 그렇게 개인레슨이며 유치원 수업, 결혼식 반주, 

그리고 방송국에서 가수들 세션으로 그렇게 일주일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를 다닙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대학교 1학년을 보냈던 거 같아요

 

그러다가 어느날 방송국에서 세션을 하고 이렇게 여러분들이 앉아계신 그런 객석에 앉아서 무대를 보는데

제 다음으로 올라온 밴드가 있었어요

한국 사람이 아니더라고요

영국에서 온 전자현악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이 바이올린처럼 

전자 바이올린, 전자 비올라, 전자 첼로 이렇게 여성 네 명으로 구성된 영국의 BOND 이라는 그룹의 공연을 보게 되요

 

 

2001년 눈앞에서 그 공연을 보고 저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습니다

 

사실 ... 

제가 음악을 너무 좋아하고 공연을 너무 좋아하고 이게 없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어렵게 음대를 진학을 하지만

클래식 바이올린 하면서 이렇게 무대에 섰을때 그 긴장감과 

항상 시험을 보는듯한 느낌 그런 떨림

나는 왜 이걸 좋아서 했는데 이렇게 무대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

왜 이렇게 힘들지?

그런 어떤 ... 현실과 이상의 충돌 그런 것에 대해서 항상 갈증을 느꼈어요

 

그러던 차에 그 ... BOND 라는 그룹에 공연을 보는 순간 정말 

'아! 저거야' '저거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왜?

그들의 표정이 너무나 밝았고, 치아를 다 드러내면서 웃고있고

서로 연주자들끼리 아이컨텍을 하고 자기들끼리 어떤 소리를 내면서 무대에서도 연주자들끼리 소통을 하고 있고요

관객들 또한 너무나 자유로운 표정으로 그들을 보고 있었어요

누가 플레이어고 어디가 문대인지 알 수 없을만큼

내가 오랜기간 20년이 다 되는 시간동안 하고 있는데

나는 정작 그렇게 간절히 원하는 무대에서 즐기지 못하고 있었고

그들을 봤을 때 

'아! 내가 꼭 언젠가 저걸 하리라'

'내가 대학을 졸업을 하면 

내 돈을 들여서 홍대 길거리에서라도 단 한 번은 저걸 하리라'

그런 마음을 먹었었어요

 

너무나 신기하게도 제가 가진 그때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옵니다

제가 대학 졸업반 이었을때

그저 매일 아르바이트로 그렇게 살았던 제가 항상 올려놨던 사이트가 있어요. 구인 광고 사이트에

거기서 어떻게 연락을 주신 거예요

여기는 한국에서 전자현악을 BOND 처럼 그렇게 기획하고 있는 곳인데 와서 오디션을 보지 않겠냐고

 

여러분들 다 아시는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김중만 사진작가님께 제 첫 프로필 사진을 찍고요

다시는 그런 대형 음반 회사에서 음반을 냅니다

너무나 화려한 출발이었죠

그러나 1년 반만에 회사에 사정으로 해체를 해요

그리고나서 두번째 회사를 또 만나게 됩니다 

모든 제 주위에 친한 친구들이 다 뜯어 말렸어요

 

'너 언제 철들래'

'언제까지 그렇게 살꺼야?'

'정신 안 차리고 뭐 하니'

'차라리 정말 박봉이라도 안정된 수입을 줄 수 있는 그런 회사에 들어가서 경리직이라도 해'

 

가장 친한 친구들이 다 말렸어요

자존심도 무척 상했고

그렇지만 포기할 수가 없더라고요

포기는 안 되더라고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합니다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아주 직접적인 질문을 해요 제가

너 100억을 주면 이 일하지 않고 편하게 살래 ?

아니요 저는 그냥 이 일할래요

그렇게 또 두번째 회사에 

회사에 철딱서니 없는 그런 친구로 또 회사에 들어갑니다

 

이번에는 제가 아침에 리더로 그리고 퍼스트 바이올린으로 팀을 이끄는

그런 역할로 들어가서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요

새벽 3시, 4시까지 항상 고민을 하고 잠을 못 자면서 생각을 했어요

어떻게 하면 우리 팀원을 잘 끌고 갈 수 있을까

그렇지만 나라의 여러 가지 비보나 경제적인 경기 어려움 이런 것들을 인해서 공연을 하면서

공연 자체가 캔슬 되거나 여러가지 상황은 점점 안 좋아졌어요

2009년 10년 이때였고요

 

그리고 저는 그렇게 노력을 하는 거에 비해서 항상 갈증을 느끼면서 서른 이라는 나이를 맞이해요

여자에게 있어서 서른 이라는 나이는 굉장히 두렵고 

스무살때 나는 

'서른에 나는 분명히 뭔가 어딘가에서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나는 분명히 어느정도 성취해 있을 거야

나는 서른에 분명히 정도 돼 있을 거야'

라고 호언장담했던 제가

제 기대치에 전혀 미치지 못한 상태로 서른을 맞이해요

그리고 그때부터 매일 밤을 울면서 잠이 들었어요

내가 무대에 설 수 있는 날이 하루가 더 줄었구나

그렇게 간절함으로 매일 매일을 보내면서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공연을 더 많은 공연을 할 수 있을까

저에게는 그 시간들을 매 순간 오늘이 마지막 공연 이란 생각으로 무대에 올라왔던 거 같아요

 

이때 또 다른 저에게 기회가 또 찾아듭니다

대표님께서 어느날 말씀하세요

'공연 섭외가 하나 들어왔는데 

좀 작은 무대야 강연이랑 같이 한다고 하니까 조용한 걸로 준비해서

그냥 한번 해 볼래?'

저는 본능적으로 기회다 생각이 들어서

왜냐면 항상 네 명이서 움직였던 제가 그 무대는 저 혼자서 가게 된 자리 였거든요

그래서 저는 일주일 동안 해가 뜨는 걸 보면서 연습실에서 밤을 세워 연습을 해요

그리고 무대에 올라요

 

대표님이 약한 걸로 부드러운 걸로 하라고 하셨는데

저는 가장 센 곡으로 준비를 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로

가장 저에게 맞는 곡으로

그리고 대표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헤어스타일이 있었어요

그 헤어스타일을 해요

대표님이 한 번도 보지도 못 하신 제 의상을 입어요

그리고 대표님께 말씀드렸어요

대표님 저의 첫 솔로 무대니까 제 마음대로 하겠습니다

결과가 어땠을까요?

피드백이 왔어요

여태까지 네가 6년~5년? 5년 정도 너의 무대를 봤을때 항상 팀 안에서 뭔가 튀어 보이고

혹은 너 안에 뭔가가 있는데 그게 항상 억눌려 보이고

저 친구가 뭐가 더 있을 텐데

그런 얘기를 했던 사람들한테서 피드백이 옵니다

'너는 이 거야'

'너는 솔로가 맞아'

'이제 알겠어'

'훨씬 정말 보기 좋구나'

너무너무 기뻐 깼죠

너무 기뻤고

그날 저 또한 누구를 챙겨야 하지도 않았고

누구를 제가 누구 때문에 눈치를 보지 않았고

제가 하고 싶은 모든 걸 셋팅한 후에 했던 공연이였기 때문에 저 또한 너무 너무 잊을 수 없는 자리였어요

 

그게 저의 첫 솔리스트로서의 시작입니다 

그 공연이 바로 오종철씨 가 진행하는 드림스테이지 라는 공연이 였고요

 

 

 

 

2011년 9월 아직 2년이 안 됐죠 

저 한테는 아마 평생 잊지 못할 자리가 될 거 같아요

 

그 후로 저는 매니저나 회사 어떤 걸 도와 주시는 분들 없이 

혼자서 홍보, 마케팅 뭐 ... 정말 여러 가지 일을 다 혼자서 하고 있는 

어떻게 보면 1인 기업으로 지금까지 오고 있는데요

 

아직은 제가 스스로한테 '아 ~ 절 보세요' 라고 크게 

제 자신이 만족할만한 그런 결과물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크게 PR은 하고 있지 않지만

항상 제 무대가 저는 가장 좋은 PR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너무 감사하게도 저의 공연을 보시고 한결같이 말씀을 해주세요

니가 얼마나 간절한지 니가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지 그게 느껴진다고

 

굉장히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어요

가장 친한 사람들로부터 한심하다는 소리를 듣고

20대 후반에 친구들이 몇 천만원씩 돈을 모았을때

한 달에 50만원 밖에 안되는 돈을 받으면서 연습을 나갔었구요

오히려 스무살 스물한 살 때보다 더 훨씬 말도 안되는 돈으로

그렇게 생활을 유지하면서 지금까지 왔어요

 

이제는 그런 고비를 넘고 나니까

서른이라는 나이 또 앞으로는 마흔이란 나이가 또 언젠가 오겠죠

그런 나이가 두렵지 않고요

 

내가 스스로에게 항상 묻는 질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제가 오늘도 이 길을 묵묵히 갑니다

 

사람들이 누구나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자신만의 꽃이 피는 계절이 있다고 해요

제가 굉장히 힘들 때 얘기를 듣고 힘이 났었는데요

 

누구나가 다 봄에 꽃을 피우고 싶어 한다고 합니다

여름도 있고 가을 겨울 있는데 

그 봄에 내가 꽃이 피지 않았다고해서

나는 실패한 인생이고 나는 좌절하고 포기하고 

그러는 분들이 많다고 하는데 저 또한 그럴 뻔 했었고요

근데 저는 지금 생각이 바뀌었어요

 

내가 이렇게 지금까지 왔듯이 묵묵히 

매 순간 간절하게 내 소망을 담아서 하고 있다면

내가 나의 꽃이 여름이 던 가을이 던 아니면 제일 늦은 겨울이 던

저는 그날을 기다리면서 그때 더 아름답고 향기롭게 그렇게 피어날 수 있도록

제 길을 열심히 가려고 합니다

 

제가 아까 등장하면서 짧게 공연 보여드려서 아쉬웠죠

아 쉬우셨나요

그래서 제가 한 것 준비했어요

제가 가장 행복할 때 가장 슬플 때 가장 힘들 때 언제나 왜 이렇게 울컥하죠?

(박수)

 

제게 힘이 되주는 공연 보여 주겠습니다

 

Summer Storm

연주 이하림

 

 

 


 

END

 

이 글은 청각을 잃은 제 친구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전체 또는 일부가 잘못 듣고 잘못 옮겨 적은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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