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소개 : 윈도우 비스타에서 '맑은고딕'체가 기본 서체로 사용되기 전까지 일본의 '나루체'가 오리지널 디자인인 '굴림체'가 15년 넘게 국민서체로 사용되었습니다. 일본어 사용을 강요한 일제강점시기의 문화말살정책이 떠오르는 문화주권 상실 시기였습니다. 미적인 부분과 사용성 면에서도 좋지 않았음은 물론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문자인 한글로 정체성을 확인하고 문화 주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세계 속의 한글과 한글을 사랑하는 방법을 이번 강의를 통해 알리고자 합니다.
게시일: 2013. 10. 8.
반갑습니다
산돌 커뮤니케이션 대표를 맡고있는 석금호입니다
사실 제가 지난 10년 동안 똑같은 강의를 우리 회사에서 무료로 진행하였습니다
99회를 마치고 100회를 제가 지금 이 자리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박수)
저는 지난 30년 동안 한글 서체를 개발해 왔는데요
제가 왜 이런 일에 30년을 한결같이 제 자신을 바쳤는지
제 삶을 잠깐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난 후에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경기도의 아주 작은 마을의 알려지지 않은 촌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내가 왜 살아야 하는가'가 제게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림 속 저 모습이 제 모습입니다
어머니께 매우 얻어 맞았어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한숨만 쉬고 있다고요
그러나 저는 심각했습니다 진짜 심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니까 염세주의가 오더라고요
그래서 염세주의에 깊게 빠져 학교 가서 공부잘하는 애들만 쳐다보면서
'참 한심하다 니들.
사는 이유도 모르면서 어떻게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공부만 열심히 하니.
정말 바보가 아니고서는 그런 짓 못할거다'
이렇게 빈정거리면서 저는 공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대신 저는 당시에 한국에 출판된
세계 문학 전집과 한국 문학 전집을 독파했습니다
방학만 되면, 여름방학만 되면,
수십권씩 싸들고 아침에 올라 갔다가 밤에 내려왔습니다
아주 달콤하지만 비참한 사랑의 끝과 절망적인 죽음
제가 문학전집을 통해서 배운 두 가지 입니다
그러나 제가 갈급하게 찾았던 그 모든 문학전집도
제가 왜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대답해주지 않았습니다
그게 저의 이루 말할 수 없는 비참한 심정이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고등학교는 부모님이 조카와 함께
저를 서울로 보내서 서울에서 다니게 되었습니다
유학을 온 것이죠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이가 같은 누나 아들하고 같이 시험을 봤어요
누가 합격했을까요?
맞습니다. 제가 그렇게 보이죠? 그렇죠? 떨어지는 것 처럼
제가 떨어졌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인생의 큰 실패의 아픔을 맛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할 수 없이,
남들이 맨 마지막에 간다는 공고를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공고 전기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전기과에서 하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학교 들어가서부터 전봇대 꼭대기에 올라가는 것을 했습니다
꼭대기가 되게 높은데요
꼭대기에서 떨어졌다면 여러분을 만나지 못했을 텐데
다행이도 3년동안 한번도 떨어지지 않아서
여러분을 여기서 뵙게 되었습니다
공고 다니면서 감수성 예민했던 그 시절의 저의 마음은 매우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다가 우여곡절 끝에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는데요
대학을 들어갔을 때는 저는
극도의 정신적인 고통으로 1초도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제 대학생활이 어땠는지 아세요? 아침 점심 저녁 다 술이었습니다
그 때 제 아지트가 하나 있었는데요. 그 아지트는 종로 5가에 있었어요.
종로 5가의 골목 속에 금수다방이라고 있었는데요. 옛날엔 다 다방이었죠
금수 다방의 앞에 보면 넓은 도로가 있는데,
그 도로에 술에 취해서 대 자로 완전히 뻗어 있는 친구가 가끔 있었어요
머리카락을 치우고 얼굴을 보면 그 친구가 저였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그랬겠어요. 저는 정말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저는 너무 비참해서 살아야하는 이유가 없이
하루라도 존재하고 있는 저 자신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게 너무 화가 나고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저 자신이 용서가 안 되었습니다
'어떻게 너는 멍청하게 너가 살아야 하는 이유도 모르고 지금도 살고 있느냐'
저는 그게 정말로 저를 죽이고 싶도록 미웠습니다
깊은 우울증에 빠져 살다가
도저히 이렇게는 살 수가 없어서 저는 군대에 자원을 하였습니다
군에 자원 입대를 하였습니다
군대에서 매일 밤마다 고참들에게 구타 당하고 총대 메고 박박 기면
정신적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입대를 하였습니다
여러분 어땠겠어요?
정신적인 고통 100% + 육체적인 고통 100%.
정말 견딜 수 없었어요
저는 그러다가 결국 군에서 자살을 결심하게 됩니다
많은 분들이 다 말씀 하시지만
자살을 실행하려고 하면, 주마등 같이 필름이 지나갑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어머니 얼굴이 생각이 나면서 감정이 북받쳐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어떤 따뜻한 음성이 들리더군요
'네가 힘들구나. 내가 너를 안아 줄게.'
이런 음성이 들리는데, 그 한 마디에 정말 큰 위로가 되서 눈물 콧물을 다 쏟았습니다
밤새도록 울고 그 후로도 6개월간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잘 때도 눈물이 계속 흐르고 버스 안에서도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기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가 무엇때문에 살아야하는지 몰라서 방황하다가
결국은 제대하고 복학하고 졸업해서
첫번째 직장으로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 아시는 분들은 아실텐데요
1500만부를 인쇄했던 당시 세계 최대의 잡지였습니다
저는 그 회사에 아트 디렉터로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회사에 사진식자기 기계가 있었는데 이것을 일본에서 수입을 해왔습니다.
이 기계가 없으면 당시에 책 한권도 인쇄를 못했습니다.
이 기계를 100% 일본에서 수입을 했고
이 기계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한글도
20년 동안 이 기계와 함께 일본에서 100% 수입을 해야만 우리가 책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역사적인 현실을 접했을 때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니 어떻게 일본에서 한글을 수입하지 않으면 한글을 쓸 수 없다고?
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순간적인 수치심이 들었고
부끄러운 마음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며칠동안 자지도 못하고
밥맛도 없어서 밥도 못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4일째 즈음에 미래의 딸이 저의 내면에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감춰놓은 딸 아니었냐구요?
그건 아니었구요
저는 총각이었는데 미래의 딸이 제 내면에 말을 했습니다.
"아빠, 아빠 직장 다닐 때 일본에서 한글을 수입했다며
그런데 아빠는 무엇을 했어요?
그 때 아빠는 디자이너였잖아요"
말문이 막혔습니다.
며칠을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 딸을 낳았을 때
그 딸에게 내가 할 말이 없으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 때문에 아주 잘 나가던 직장이었지만
사표를 과감히 내고 나왔습니다
막상 회사를 나왔는데 먹고 살 길이 있나요
저의 문제는 뭔가 필을 받으면 일단 저질러 놓고 본다는 거에요
나왔는데 누가 한글을 사줄 곳이 있나
제가 먹고 살 길이 막막해 진거에요
그래서 대학강의로 연명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 교통비를 주고나면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한글을 개발하겠다는 제 열정은 불탔는데
사는게 막막했어요
그래서 저는 3년동안 세끼를 라면으로 때웠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을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겠죠?
라면 세 끼를 일주일
염려하지 마세요 여러분
그 다음에 짜파게티를 한 번 먹어보세요
그러면 라면 맛 다시 돌아옵니다
확실히 다시 돌아옵니다
세계 최대, 3년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라면을 만드는 나라
우리나라 뿐입니다
대단합니다
저는 지금도 라면을 제일 좋아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때가 제 인생중에 제일 행복했습니다
왜?
내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할지
내 가슴을 벅차게 하는 한 가지 목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수)
우리나라의 얼굴에 해당하는 한글
저는 그 때 이도를 만났습니다
이도는 세종대왕의 본명입니다
이도는 스물 네살에 왕이 되었습니다
많은 일들을 잘했지만
세종은 마지막 대에 백성들의 아픔을
다른 왕과는 다르게 자신의 아픔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백성들의 실황을 보니까
백성들은 중국의 속국으로 살아가는
국가적인 정체성, 민족의 정체성은 고사하고
민족적인 자존심 하나 없이 한자를 읽지 못해서
맨날 방을 읽지 못해서
베지 말라는 나무를 베어서 곤장을 맞고
하고 싶은 일이 글을 모르니까 할 수가 없는
그런 백성들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처참한 심경을
세종은 백성들과 같이 눈물을 흘리며
돌아와서 자신이 죽을 때까지 무엇을 해야할까 생각을 합니다
세종은 그 순간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질문했습니다
내가 이 나이에 왕이 된 것이 무엇 때문이냐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이 조선에 백성들 앞에 서있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내가 여기에 서있는 이유는
이 시대에 내가 왕이 된 이유는
백성들에게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소통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문자를 만드는 것
이라고 결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글 개발에 뛰어들게 됩니다
그 때부터 하루에 세 시간 밖에 자지 않았습니다
늘 병들어 있었습니다
너무 잠을 못자서
그래서 한글을 개발할 때 즈음에는 세계적인 학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천문학, 아악, 음악, 음성학, 문자학, 과학
이런 동양학, 이런 사상 문제에 대해
최고의 학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만치 않았습니다
수많은 반대파들이 죽이려고 늘 호시탐탐 노렸습니다
암살의 위기에 끊임 없이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3년동안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한글을 우리에게 안겨 주었습니다
저는 세종에 대해, 이도의 인간 됨됨이에 대해 배우면서
저는 비로소 제가 대한민국에 태어나고
대한민국에 자란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우리에게 이렇게 위대한 자산이 있다는 것에
저는 매우 벅찼습니다
여러분, 세계에 있는 수많은 이 분야의 학자들이
한글에 대해서 극찬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시간이 없으니
한 분만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샘슨 교수님이 한 이야기 입니다
한글은 인류의 가장 위대한 지적 성취 가운데
하나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우리 같이 한 번 읽어 볼까요?
한글은 인류의 가장 위대한 지적 성취 가운데
하나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위대한 학자입니다
이 분이 논문의 결론에
인류가 만들어 놓은 수많은 위대한 지적 성취가 있지만
한글은 그 중 가장 위대한 것 중 하나라고
아예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런 것 한번 가져본 적 있습니까?
미국 시카고에 있는 한 대학은
외국 학장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한글날 축전을 보냅니다
학교 휴교 합니다
그 분이 늘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글날은 대한민국만의 축제가 될 수 없다
전 인류의 축제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서 집에서 파티를 하고 축제를 벌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한글날을 없앱니다 ---- (어떤 xxx 가 ? )
우리의 미래가 너무 깜깜합니다
만약 한글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래서 그 때부터 저는 결심했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한글이 우수한 것은 알지만
정말 한글이 얼마나 우리의 자존심의 근간,
국가적인 자존심의 근간이 되는 것인지 모르기에
이것을 알리자'
그래서 무료 강의를 10년 전 부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 100회를 맞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면에서 한글이 뛰어나냐구요?
전무후무한 엄지족을 탄생시켰습니다
초등학생이 선생님 눈동자 똑바로 보고
책상 밑에서 2~3초 사이에 수십자를 날리는 나라
한국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속도는 국력입니다
서울이라는 두 음절
똑같은 두 음절이지만
우리가 부러워하는 알파벳은 열네번이나 눌러야 합니다
한글은 여덟번이면 끝납니다
어디 이 것뿐입니까
컴퓨터 자판
위에는 한글 아래는 한자자판 입니다
여러분 밑에 있는 자판 재밌죠?
밑에 있는 것으로 공부하면 공부 잘 되시겠죠?
그럼 만약에 세종이 우리에게 한글을 남겨주지 않았다면
여러분 지금 어떠실까요?
여러분 휴대폰 무엇으로 되있을까요?
한자 얼마나 치기 어려운 지 아시죠?
발음으로 쳤다가 낱말뜨면 스크롤해서 엔터치고
사랑이 되겠죠 그렇게 되면?
속도는 국력입니다
컴퓨터 자판은 7배 이상 빠릅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한글에 대한 1000분의 1정도 입니다
하지만 시간 관계상 다 말씀드리지 못합니다
세계 휴대폰 보급률 여전히 우리나라 1위입니다
국민 수 대비 우리나라 102%가
국민 수 이상 휴대폰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IT대국이 된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한글이 없었다면 과연 가능했을 까요?
절대 불가능합니다
우리에게는 이도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제 안에도 흐르고 있습니다
이도는 세계 최고의, 한 백성 전체를 살린
결과를 만들어 낸 사람임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사실 때문에 온국민이 쓰고 있는
윈도우즈의 굴림체가 일본 디자인 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것을 한국 마이크로 소프트에 제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자신들은 돈이 없어서 하지 못하고
본사하고 이야기를 하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시애틀 본사에 직접 갔습니다
가서 3일동안 미팅을 했습니다
3일 동안 미팅을 한 결과
그들이 제 모든 말에 승복하고
그 자리에서 4억의 예산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국적의 맑은 고딕이 나와서
현재 윈도우즈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박수)
여러분, 그래서 저는 그 이후로 30년 동안 우리 직원들과 엄청 고생해서
500여종의 한글서체 종류를 개발했습니다
이 폰트는 각계각층이 다 쓰게 됩니다
이로써 우리는 더 이상 외국에서
한글서체를 수입해오지 않아도 되는
한글 독립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2011년도에는 애플이 저희에게 라이센스 해달라고 와서
전세계 모든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 제품에
우리가 만든 한글 네오 고딕체가 깔려 있습니다
저는 사진 식자기를 수입해오던 그 회사에
30년 만에 한글을 수출하게 되는 기적적인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본 전역에 한글을 수출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사진 식자기를 한국에 수출했던 그 회사에 가서
일본 매스컴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이 것이 바로 그 장면입니다
저는 이것에 성이 안 차서 한글 박물관도 설립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제가 10여년 동안 모았던
모든 한글에 대한 소중한 자료를
전시해 놓고 한글의 소중함을 알려왔습니다
그러나 경영난으로 3년만에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리고 저는 이렇게 위대한 한글을,
뛰어난 논리와 과학성을 가진 한글을
우리 엄마들이 한글 답게 가르치지 못하는,
그런 것을 가르칠 수 있는 교구 하나 없는 것을 보고
너무 충격을 받고 제 스스로 수년간 고민을 하다가
결국은 한글을 가장 쉽게 배우는
놀이처럼 하다가 불과 며칠 만에 한글을 다 배우는
'리도한글놀이' 라는 것을 제가 창안을 해서
대량생산해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몇 개 안 남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나라 자살율 1위인 거 아시죠?
하루에 43명이 죽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렇게 사진에 보시는 것처럼
장래가 촉망되는, 우리가 부러워하는 사람들
왜 죽을 까요?
우리 부모도 학교 교수님도 나라도
우리가 왜 살아야 하는지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질문하도록 누구도 말하지 않습니다
돈만 벌면 된다고 합니다
저는 강의 할 때마다 늘 이야기 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최대의 위기는
정체성의 위기다
여러분 우리의 정체성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 까요?
마지막 페이지 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시대적인 사건 속에서
그 다음에 여러분의 개인 사 속에서
3일 이상 슬픔과 감동이 지속된다면
그 때 여러분 마음에 들리는 내면의 소리를 들으십시오
그런데 '너 가서 나가 죽어라' 이런 소리는 절대 듣지마세요
그런 이야기도 많이 한다고 하더군요
여러분의 가슴을 뜨겁게 하고
긍정적으로 살만한 이유를 만들어주는
어떤 긍정적인 내면의 소리를 들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그것에 그냥 따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바로 세상을 바꾸는
그런 사람의 길로 가게 되리라
저는 확실히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 한글자막 : 이영실 (marieeeee21@gmail.com)
이 글은 청각을 잃은 제 친구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전체 또는 일부가 잘못듣고 잘못 옮겨적은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해당글에 댓글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추신 : 여러분의 '공감' 클릭은 제게 정말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YouTube > 세바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업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배울까? | 자막 세바시 321회 | 손우정 배움의공동체연구회 대표 (0) | 2018.03.22 |
---|---|
자막 세바시 316회 나는 대단한 꿈을 꾸지 않겠다 | 강백수 강백수밴드보컬, 시인 (0) | 2018.03.22 |
경청은 왜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가? | 세바시 313회 | 조우성 기업분쟁연구소 소장, 변호사 (1) | 2018.03.22 |
로봇을 발명해도 될까요? | 한재권 로보티즈 수석연구원 | 세바시 303회 (0) | 2018.03.22 |
자막 세바시 324회 당신의 가슴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습니까? | 안준희 핸드스튜디오 대표 (0) | 2018.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