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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 세바시 376회 스윙, 흔들려봐야 세상을 흔들 수 있다! | 김잔디 스윙댄서


강연 소개 : 엔지니어였던 저는 취미로 스윙댄스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프로 강사가 되니 문제가 생기더군요. 제 몸의 근육들이 아직 댄서의 그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한계를 뛰어넘지 못해 좌절할 때 선배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잔디는 앞으로 세계 대회에 나가서 꼭 챔피언이 될 거야."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부족한 저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가슴은 환해졌습니다. 

그리고 각오를 다졌습니다. "그래, 한번 해보는 거야!" 몇 년 뒤인 2006년, 저는 약 300명이 참가한 미국 아메리칸 챔피언쉽 스윙대회 Pro-Am 파트에서 우승을 했습니다.


게시일: 2014. 1. 15.




안녕하세요. 온세상을 흔들어 춤을 추게 하고 싶은 스윙댄서 김잔디입니다.

여러분 제가 스윙댄스를 추는 댄서인데요

여러분 혹시 스윙댄스 아시나요?

오~이렇게 많이 아세요?

혹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이야기 해 드릴게요.



박진영의 '스윙 베이비' 아시죠?

'스윙 스윙 스윙 마이 베이비' 하잖아요. 그 스윙이 바로 저희가 춤추는 '스윙'입니다.



저는 원래 제 1회 여성공업고등학교 졸업생입니다.

여성 공고 있다는 거 처음 들으셨죠?

저 공고나온 여자예요 !

S사 연구소에 계약직이지만 합격을 하게 되었구요.

실은 저는 남자도 아니었고 전문대를 나왔지만 인터뷰에서 좋은 점수가 있었고 커리어가 있어서 발탁이 되서 운 좋게 들어가게 됐습니다.

들어왔기 때문에 제가 또 열심히 일을 했구요

거기서 많은 상을 받게 되었는데요


그 곳에서 제가 어떤 꿈을 꾸었냐면요,

'나는 잡지에 나오는 정말 훌륭한 최초의 여성 엔지니어가 되어야겠다.' 라고 마음을 먹습니다.

무언가 찬란한 빛이 보이지 않나요?

그런데 저에게 복병이 하나 생겼습니다.

바로 '스윙 댄스'입니다.


참 아이러니 하게도 저는 그때 당시 밤 11시부터 12까지 취미로 '사이버자키'라는 것을 했는데요.

혹시 '사이버자키' 아세요?

인터넷 방송으로 음악을 틀어주고 맨트를 하고 디제이처럼 똑같이 하는 건데 아마추어들이하는 프로그램들이 있어요.

그걸 하고 있었는데 제 청취자 중에 한 분이 '잔디야! 너 재즈 좋아하니까 스윙댄스 한번 안해볼래?' 이러는거예요

(어허허허) 저는 웃어버렸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

저는요, 중학교와 고등학교 통틀어서 체력장 5급, 몸치, 박치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운동은 숨쉬기 운동, 리모콘 운동이였어요.

그런데 저한테 춤을 추라고? 말도안돼

그런데 이 친구가 덜컥 신청을 해버린거예요. 제 의사와 상관없이

그래서 '어 ! 어떻하지? ' 그러다가 제가 그때 책임감이 무지 강한 아이였거든요.

'신청을 해 줬으니 일단 가보자'라고 하고 일단 갔어요.

갔더니 남자 50명! 여자 50명! 남자 50명을 한 시간 내에 손을 다 잡으면서 춤을 추는 거예요

'오마이갓 ! 이건 내 취향이 아니야!'

그래서 그만 두려고 했지만 또 책임감 때문에

2주가 되고 3주가 되니까 어느새 ' 어! 이거 신나는데?! 어! 이거 재밌는데 ! 아! 너무좋아! 어! 멈출 수 없어 ' 이렇게 되버린거예요


그때부터 저는 심각한 고민에 빠집니다.

왜냐하면 그전까지 저는 체력장 몇급이였구요?

5급이였어요.

그러니 제가 뭘 하겠어요?

그래서 제가 친한 언니한테 의뢰를 했습니다.

"내가 춤을 잘 추고 싶고 고민이 되는데 어떻게 해야될까 언니?"

"그러면 춤의 기본인 발레를 해보는게 어때?"하면서

저를 발레 선생님한테 소개시켜주셨어요.

그런데 이 언니가, 오늘도 어딘가에 앉아계시는데 저한테 발래선생님을 소개시켜주면서 하는 말이

"선생님! 이 아이는요, 앞으로 대회도 나가고 챔피언도 될 아이예요." 라고 이야기 하는거예요.

전 전혀 그런 말을 한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어!" 라고 반응했는데 "아니예요"라는 이야기 대신에

제가 어떤생각이 들었냐면 그 말이 제 가슴속에 쑥~~들어오는거예요.

챔피언....(둥둥둥둥둥)


그 이후로 열심히 트레이닝을 하게 됐고 매일매일 연습을 하게 되었구요.

책 방을 자주 가게 되었는데 거기에 '열정과 기질'이라는 책이 있었어요.

그 책과 위인전들을 읽다보니까 저에게 환청이 들립니다.



너를 알아봐 주는 곳으로 가라

그래서 저는 결심을 합니다.


제가 3년동안 이걸 고민했거든요.

'스윙을 할까? 엔지니어링을 할까?'

하지만 그때만 해도 아무것도 없던 불모지였어요.

정말 아무도 '재즈가 머야?' '스윙이 머야?' 아무것도 몰랐거든요.

그래서 너무 고민이 됐었는데

이 3년의 고민끝에 이게 계속 맴도니까 '더이상 못참겠다' 싶어서

계약기간이 만료됐던 그 시점에 제가 다른 회사로 연계해주시겠다는 상무님 이야기를 뒤로하고

'저 미국에 좀 가야겠습니다.' 하고 보름만에 여권,비자,티켓을 만들어서

영어 한마디고 못하면서 그냥 연고지 하나도 없이 캐리어 하나 딱 싸서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참 배짱도 좋죠? 

미국에 딱 가서 또 덜컥 대회를 지르는데요

일주일 좀 넘었을까 2주 좀 안됐을 때 대회를 지르게 됩니다.

그게 바로 아까 이야기 했던 '어메리칸 챔피언쉽' 이라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흔히 생각하는 댄스대회 복장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런데 바로 저 복장이 저의 복장이예요.

청 바 지

나중에 알고봤더니

이대회는 

첫째, 청바지를 입으면 안되요.

둘째, 음악을 미리 정해야 되요.

셋째, 안무도 다 짜와요.

넷째, 연습도 다 해와요.

그런데 저는 말이 통해요? 안통해요?

그냥 갔어요. 그냥 오케이 했어요.

그 친구가 딱 하나 물어보더라구요.

슬로우, 미듐, 페스트

머냐면 음악빠르기요.

잘 모를땐 무조건 머하면 좋을까요?

중간, 미듐

오케이하고 딱 대회를 들어갔는데 쓕~ 정전이 되는거예요.

그리고 눈을 떴어요. 떴더니 제가 관중석을 향해 이렇게 걸어가고 있는거예요.

그래서 저는 '어 내가 뭐 하고 있는거지?' 생각했고 그 후 또 정전이 됐어요.

그리고 나서 눈을 떳는데 모든사람이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치는 거예요.

'너가 위너야!'

저는 그 대회에서 어떻게 됐을까요?



이렇게 우승을 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소소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저는 그때 저의 끼를 발견하기 시작했어요.

반나절 춤을 추고 세 네시간정도만 잤던거 같아요.

그런데 열흘이 가고 스무일이 가도 제 몸의 에네지는 그대로 있고 춤이 너무 미치게 좋은거예요.

그래서 저는 무슨 생각을 했냐면 '이걸로 먹고살 수 있는 일을 빨리 생각해보자'

그래서 남은 두달동안 미국에 있는 공원이란 공원을 다 다니면서 혼자 사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제가 하고 있는 모든 일들에 대한 큰 계획을 실은 그때 다 계획해서 왔어요.


야심차게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강습을 열었어요.

학생이 몇명이였을까요?

강사는 2명

학생은? 한명

저는 좀 나아질 줄 알았어요.

그런데 3년 내내 그냥 그밥이 그밥, 연봉 육백

3년을 지내는데 너무 힘들더라구요.

그런 날들이 반복이 되다가 지금처럼 추운 어느날, 야외에서 재즈패스티발을 하게 됐어요.

'잔디씨! 여기와서 춤추면 좋겠는데'

'네 사장님!' 

답을하고 그곳에 나가서 춤을 췄어요.

5시간을 춤췄어요.

집에 가서 한 2주인가 아프더라구요.


그렇게 아파서 누워있는데 재즈협회 총장장님께서 전화를 주시더라구요.

'잔디씨 ! 감동받았어. 일 좀 같이 하지.'

이후에는 아시아 투어를 하게 됐구요.


그 중에 캐나다국제대회 회장님을 만나게 돼서 제가 그쪽으로 초대를 받게 돼요.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국제대외에 초대가 돼서 심사도 하고 캐나다에서 워크샵도 하고

미국으로 넘어가 워크샵도 하고 북미투어를 쭉 하게 됐어요.

한국에서는 스윙이 미국 거잖아요. 

스윙을 한국에서 했지만

다시 캐나다, 미국에 가서 제가 가르치는 그런 영광스러운 자리가 된거죠.

이렇게 즐거운 날들이 시작이 됐구요.

이렇게 이야기가 끝나면 너무 좋겟죠?


계속 해피앤딩이였으면 좋았을텐데 저에게 큰 슬럼프가 옵니다.

바로 10년차가 된 거예요.

여러분, 이런 이야기 많이 들으시죠?

'십년이 지나면 강산이 바뀌고 십년이 지나면 뭐가 되고 십년이 지나면 돈을 벌 수 있다'

그런데 저에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예요.

저는 여전히 가난하고 여전히 힘들고

그 막막함이란....


이런생각을 햇어요. 

'아...내가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북미투어까지가 한계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마 많은 분들이 아실거예요. 

정말 아무 것도 되지 않을때 막막함을...

그래서 정말 죽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든 걸 그만 두고



그런데 그때 92세 레젼드 댄서분을 만나게 됩니다.


그 분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냐면 지금 화면으로 한번 보실게요.



정말 1940년대 한 획을 그으셨고 아직 살아계세요. 

92세입니다.


저의 스윙라이프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이분은 92세인데 94세때 머할지에 대해 생각하면서 너무 행복해 하시는 거예요.

내가 94세때 뉴욕에서 어떠한 이벤트를 햇는데 라고 말하는거예요.

제가 그 순간 아차싶더라구요.

저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생활에서 80년을 하셨는데

저는 고작 몇년을 햇어요?

십년밖에 안했잖아요.

아 내가 정말 부끄럽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러면서 저에게 하시는 말이 'I know' 라고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알아. 니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 처음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 

라고 이야기하는데 정말 그 앞에서 아이처럼 펑펑 울었어요.


한번도 내 마음을 알아주거나 아니면 내가 물어볼 사람이 없다고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거든요.

그런데 처음으로 내 앞에 멀리 걸어가신 분이 있고 내가 물어볼 수 있고

그분이 '니가 원하는 일을 니가 할 수 있어'라고 이야기 해주시는데 제가 정말 그 앞에서 울지 않을 수 가 없었어요.




여러분! 저는 아직도 돈이 없습니다. 빚만 많구요.

그리고 제가 1년에 한번씩 아까 말한 레젼드분과 같은 분들을 모시고 와서 하는 행사가 있어요.

재즈음악과 스윙댄스를 함께해서 2박3일 짜리 패스티벌도 하고 

국내에서는 최초로 90분짜리 스윙댄스로만 이루어진 쇼를 제가 만들었어요 

스윙파크라고요. 



이 것들을 하느라 저는 아직도 가난하고 돈이 없고 물질적으론 굉장히 힘듭니다. 

하지만 행복합니다. 


왜냐하면요, 저를 저보다 더 믿어주시는 분들이 있구요. 

저에게 응원을 해주시는 좋은 분들, 함께해주시는 분들이 주변에 있거든요. 

그분들 때문에 제가 그 미래를 볼 수 있고 이 길이 고되지만 너무 행복합니다. 


미국에서 처음 저에게 '챔피언'이라고 불렀을때 저는 이렇게 말했어요. 

'저 부끄러워요.'

그랬더니 제 친구가 딱 인상을 쓰면서 이러는거예요.


잔디! 

너는 원래 챔피언이였어! 

단지 너가 그 곳에 서지 않았고 

너가 인정받지 않았기 때문이야!

라고 이야기 하는거예요.


여러분! 여러분들은 챔피언입니다.

누군가의 혹은 무엇인가의 챔피언입니다.

단지 여러분들은 인정받지 않았고 그 곳에 서있지 않기 때문에 모르시는 거예요.

제가 '너를 알아봐주는 곳으로 가라!'라고 했을때 가지 않았다면

제가 챔피언인 것을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평생 모르고 살았을 거예요. 

평생.

여러분, 제가 '우리는'하면 여러분은 '챔피언'하시면서 이 강의를 마쳐볼까 합니다.

"우리는?"

(관중들)챔피언!

"우리는?"

(관중들)챔피언!

"우리는?"

(관중들)챔피언!

We are the champion !


이 글은 청각을 잃은 제 친구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전체 또는 일부가 잘못듣고 잘못 옮겨적은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해당글에 댓글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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