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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 세바시 378회 도전하는 열정에 장애는 없다 | 노선영 작가


강연 소개 :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각장애인을 떠올리며 귀가 들리지 않으니까 일상이 매우 불편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스스로에게 던진 최초의 질문이 '나는 왜 귀가 안 들릴까?' 였습니다. 여러 번 자문해도 결국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 답을 찾기 위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용감한 여인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들리지 않는 고통을 다른 에너지에 쏟아내 내 삶의 다른 해방구를 찾기로 한 것입니다. 그렇게 만나게 된 것이 세상의 아름다운 소리를 글에 담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많은 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가슴 속에 뜨거운 열정의 메시지가 있었기에 저는 그것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기적이란 먼 곳에서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 있던 것들을 마음의 귀로 듣게 되는 바로 그 순간이 기적입니다. 제가 만난 기적의 순간들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게시일: 2014. 1. 19.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노선영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소리 없는 세상을 살아왔습니다


불이 꺼진 방 안에 혼자 자고 있었는데

눈을 뜨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완전한 어둠 속에 있으면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엄마가 저의 손을 잡고 화장실에 갔습니다

물을 마시고 '가글가글 한 번 해보렴' 하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가글가글'을 못하고 물을 삼켰습니다

엄마는 저를 보고 울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저를 포기하지 않고

말을 가르쳐서 제가 5살이 되었을 때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청각장애학교인 애화학교를 다녔을 때 수녀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들리지 않아도 글을 잘 쓰면 너의 모든 마음을 잘 전할 수 있어"

저는 수녀님의 말씀에 감동을 받고 그 후로 작가가 꿈이 되었습니다

애화학교를 다녔을 때 저는 수화로 소통하면서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10살이 되던 해에 엄마는 제가 일반 학교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 후로 일반학교로 옮기고 

선생님의 입모양을 봐도 무슨 말인지 몰랐고 

친구들과 소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일반학교로 옮기고 나서 첫 생일이 다가왔습니다 

저는 친구들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편지를 40장 정도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드디어 저의 생일 날 가장 예쁜 옷을 입고 학교에 갔습니다


저는 친구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오늘 내 생일이야" 

(친구들) "그런데?" 

저는 울면서 집에 갔습니다 

엄마가 요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엄마" 

"이리와, 친구는 데리고 왔니?" 

"아니 한명도 못 데리고 왔어" 

엄마와 저는 함께 울었습니다 



(위로의 박수)



어느 날 하늘을 보고 '사는 게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뛰어내리려고 하는데

부모님 얼굴이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죽을 각오로 더 열심히 살아서 친구들에게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겠어 


그 후로 저는 세상을 향해 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스무 살이 되었고 대학교 1학년 때 국토 대장정에 도전했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엄마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에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포기란다 

한번 포기하면 다음에 또 포기하기 쉬워진단다 

대장정은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지만 

더 힘들었던 것은 

친구들이 공중전화박스를 보면 달려가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 걱정하지 마 난 잘 지내 여기는 광주야"

저는 친구를 보고 엄마가 보고 싶었습니다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습니다 

너무나 절박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친구들이 대장정을 포기하고 집에 갔지만 

저는 엄마가 해준 말을 기억하고 걸어가서 완주했습니다

집으로 가는 날 딩동딩동, "엄마 나야"

문을 열었는데

엄마가 하는 말이 뭐냐면 

뭘까요? 

문을 열었는데,

(제 모습이 너무 더러워서) "누구세요?"




저는 앙드레 김 패션쇼에서 김태희를 만났습니다

편지를 써서 전달하면서 김태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만약에 제가 편지를 쓰지 않았다면 김태희를 만날 수 없었을 겁니다



저는 세계지식포럼에 참가했습니다

(제가) 포럼에 참가하기 전에 13년 동안 교수님, 공무원만 30% 할인이 되었고 장애인은 할인이 없었습니다

저는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지식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합니다'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 후로 장애인 할인 50% 법이 만들어졌고 

나머지는 회사에서 지원받아서 세계지식포럼에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박수)


현재 북포럼은 작가와 소통하는 곳입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저는 강연에 도전했습니다


그 내용이 뭐냐면 '책은 누군가에게 읽히는 대상일 수도 있지만 제겐 혼과 같습니다'

그것은 평범한 혼이 아니라 

장애에서 오는 부재를 채우기 위한

절박함이 담겨 있는 혼과 같습니다

그 후로 타이핑, 수화, 통역 지원을 받아서 

장애와 상관없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곳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에서 삼중고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여자, 장애인,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저는 그것을 깨트리기 위해 세상을 향해 도전해야 했습니다

저는 내면의 목소리를 책에 담을 수 있습니다

만약 내면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채 살아간다면 무미건조한 영혼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내년에 저의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박수)


도전하는 열정에 장애는 없다


저는 오늘 강연자로 여러분 앞에 서 있습니다

앞으로 저는 들리지 않는 결핍을 에너지로 바꿔서 세상을 바꾸는 일에 도전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자막은 세바시 팀에서 썼지만 화면자막은 제가 직접 타이핑 했습니다 ... ---






이 글은 청각을 잃은 제 친구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전체 또는 일부가 잘못듣고 잘못 옮겨적은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해당글에 댓글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추신 : 여러분의 '공감' 클릭은 제게 정말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