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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 세바시 587회 우리가 행복해야 모두가 행복하다 | 박마루 현 서울시의원, 지체장애인


강연 소개 : 


제 유년 시절은 가난한 기억들뿐입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도 제가 18살 되던 해에 뇌출혈로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의 사망, 저의 장애, 가난.. 저는 저를 둘러싼 환경들을 부정하고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아무 소용없었습니다. 현실은 똑같았습니다. 결국 저는 그저 더 불행하다는 생각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저는 제 존재 자체를 인정하게 되는 아주 소중한 계기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는 나와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제 삶이 바뀌게 된 4가지 키워드를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I Love myself, I am smile,  I am beautiful, I am volunteer


게시일: 2015. 8. 4.




(박수와 환호)

오늘 많이들 오셨네요

제가 나오니까요 무대가 반짝반짝 환해지는 것 같지 않아요?

(웃음)




먼저 제가 이야기를 좀 시작하겠습니다

제 이야기는요 결혼 이야기부터 시작을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보다시피 저는 이렇게 목발을 짚은 장애인입니다

그리고요 머리는요 빡빡 대머리고요

오해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일부러 밀었냐고

정말 대머리 때문에 밀었습니다


그리고 장애를 갖고 있고요

그리고 제 아내하고 사진을 이렇게 보시면 12살 차이가 납니다

'와!' 예요?

그래서요 정말 제가 아내하고 결혼할 때는요 무엇 하나 내세울 게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가족들에게 정말 축복을 받으면서 결혼한다는 건

저에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지인들에게요 제가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 조언대로 부모님을 먼저 만나는 게 아니고요

먼저 전화를 좀 드리면서 친교를 갖게 됐습니다

그리고 노력을 했습니다 때에 따라서 선물도 좀 드리고요

사실 처음부터 제가 장애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부모님은 정말 속상하고 마음이 아플 겁니다

제가 부모 입장이 되어도 똑같다고 생각이 듭니다

드디어 제가 아내의 부모님을 만나는 시간에 도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 가지를 준비했습니다

첫 번째는요, 제가 살아온 이야기들을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저의 삶의 계획서를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요, 큰 돈은 아니지만 제가 저금한 통장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아내의 부모님을 뵈었습니다

어땠을까요?

어머님 같은 경우는 전화를 통해서 친근감을 가졌던 사윗감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정말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아버님도 아무 말씀 없으셨고요

그래도 저는 긴장을 했지만

제가 가져갔던 서류를 하나하나씩 꺼내면서 설명을 드렸습니다

저희 아버님이 이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굶지는 않겠네"

그 이상의 대화는 이어지지 못했어요

어머님은 "절대로 결혼은 안된다" 하시면서 시골로 내려가셨습니다


그런데요 저에게 정말 좋은 일이 생겼습니다

그때 제가 '장애 극복 대통령상'을 받게 됐습니다

그 시상이요 KBS를 통해서 전국에 방송되는 시상식이었는데

마침 저희 장모님, 어머님께서 그 시상식을 보게 된 겁니다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께서 저에게 상을 주는 모습을 보시고

그때부터 저희 장모님, 어머님은요 서서히 마음이 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준 아내, 그리고 고집이 센 아내 덕분에요

저는 12살 차이를 극복하고 이 빡빡머리도 극복하고요

장애도 극복하고요 결혼에 성공했습니다

이럴 때는 좀 박수를 해주셔야

(박수와 환호)




그리고 제가 나중에 들었지만요

어머님은 제가 화면에 나오는 모습을 보고요

코도 크고 잘 생겼다 그래요 여러분 동의하세요? (네)

아이고, 감사합니다 (웃음)

그런데 어머님이 결혼 승낙을 해주면서 저한테 조건이 있었어요

어떤 조건이냐면

"결혼식장에서는 제발 가발을 써라"

그래서 저는요 가발을 바로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결혼식 당일날 제가 메이크업을 하면서 가발을 썼는데요

이게 내 것이 아니니까요 가렵기도 하고요

혹시 저랑 같은 감정을 갖고 여기 계신 분들 없죠?

머리에 뭔가 올라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과감하게 그냥 빡빡 머리로 식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생각하면 정말 어머님한테 죄송스럽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어머님에게 사과드릴 일이 있는데요

제가 부모님을 만나고 나서요 사실 결혼 때문에 고민을 좀 많이 했습니다

그럴 때 저의 아내가 저에게 혼인신고를 먼저 하자 그랬어요

그래서 사실 결혼 승낙 받기 전에 저희는 혼인신고를 했습니다

근데 정말 저는 그런 생각했습니다

혼인신고를 하고 나오는데요 마음이 답답하고 무거웠습니다

저 때문에 또 한 사람의 인생이 힘들어하진 않을까, 고생하진 않을까

그리고 정말 아내에게 미안했습니다

정말 정말 많이 부족한 저를 사랑해주고 결혼해 준 우리 '오문희' 여사

그리고 태일이, 사로 엄마 고맙고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박수와 환호)




이제 제가요

여러분 웃지 마세요 이제 이야기는요

'똥' 이야기입니다

왜 똥이냐고요?

제가 결혼 후, 여름 휴가를 아내의 고향이 바닷가거든요

바닷가로 휴가를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왜냐하면요

아내의 고향은 재래식 화장실인데 앞마당에 있었습니다

여러분 보다시피 제가 이 목발을 짚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게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자랐던 고향에서는요

몇몇 가구가 공동으로 쓰는 재래식 화장실이었습니다

푸세식 화장실이었어요

화장실 문을 열면요, 널판지 두 개가 있는 그런 화장실이었습니다

그런 화장실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어떤 사고인지 상상이 가시죠?

제가 미끄러지면서요

빠졌습니다

그래서 제 다리가 똥에 빠지게 된 거죠

동네 아이들은 냄새난다고 저를 놀리고요

저희 어머님은 저를 목욕 시켜주며 엄청 많이 우셨어요


그 후로는요 저는 이런 생각 했습니다

'밥을 먹지 않으면 똥을 싸지 않겠지'

오죽하면 제가 이런 생각 하겠습니까

제가 드디어 걱정을 갖고 처갓집에 도착했습니다

근데 아버님께서 이런 얘기 하시더라고요

우리 박서방, 앞에 있는 화장실 이용할 때

거기 이용하지 말고 세면장을 이용을 하래요

저는 순간 당황했어요

"아니, 세면장에서 볼일 보라고요?"

그러자 아버님이 이어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세면장에 좌변기 화장실을 만들었다는 거예요

저는 사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정말 고마웠고 미안했습니다


저는 좌변기 화장실만 보면요 저희 장인어른, 아버지만 생각나요

지금은 이 세상에 안 계시지만

그래서 제가 아버님하고 약속한 게 있습니다

아내에게 잘하고요

그리고 어머님에게, 장모님은 살아 계시니까 장모님에게 효도하겠다고요


근데 우리가요, 사실 요즘 안전, 안전 하면서 많은 방법이 나왔지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안전은요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거라고 저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 장인 어른께서 장애인인 저에게 안전하게 화장실을 이용하도록 배려해주신 것처럼요

여러분, 우리 사회에서요 안전에 덜 노출되고 위험에 더 노출된 사람이 누굴까요?

바로 약자들입니다

이 약자들은요 장애인이 될 수도 있고요

어르신도 될 수 있고요, 어린이도 될 수 있고요, 그렇습니다




제가 1982년부터 서울 생활을 시작을 했는데요

사실 저는 서울이 전쟁터였어요

그때 당시만 해도 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요 정말 힘들었습니다

특히 아침에요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그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건요

정말 제가 과하게 표현하는 것 같지만

저는 목숨을 내걸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편의시설도 없었고요 저상버스도 없었습니다

또 그때 당시 지하철은요 엘리베이터도 거의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지금은요 정말 좋아졌어요

하지만 아직도요 우리 사회적 약자들은요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 사회적 약자들이요 안전하면요 우리 모두가 안전하다고 저는 주장합니다

여기서도 이렇게 박수가 좀 나와야 되는 분위기인데...

(박수와 환호)




이제부터는요 제 자랑을 조금 하겠습니다

여러분, 장애인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장애인이면 도움을 청하는 존재인가요?

장애는요 분명 불편하지만, 단점이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장애는 또 다른 능력을 갖고 있다고요

시각 장애인들 같은 경우는요 청음이 발달돼 있어 가지고요

여기 계신 분보다도

제가 이렇게 표현하면 너무 주관적일 수는 있는데

청음이 발달돼서요 정말 집중력도 뛰어납니다

그래서 애널리스트에 활동하는 우리 시각 장애인분들도 많고요

지금 판사도 있잖아요

그분이 보지 않으니까요 더 정확히 재판을 한다고 얘기하더라고요

농아인 같은 경우도 보세요

농아인 분들은요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아무리 시끄러운 소리에서도요

절대 일을 포기하거나 그걸 견디는 것에 있어서도 누구보다 잘 견딥니다

이것은 역발상처럼 장애는 또 다른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저는 지체 장애인인데요 아마도 제가 세계 최초로

목발을 짚고 공중파에서 리포터로 활동한 방송인 중에 최초일 겁니다

한번 검색해 보세요

근데 제가 KBS '사랑의 가족' TV에서 7년 간 리포터로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방송을 하면서 거의 펑크도 안 냈습니다

그리고 제가 직접 코디, 메이크업도 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지금 제가 입은 옷 어떻습니까? (좋아요)

좋죠? 제가 메이크업 하면서 코디했어요

그만큼 그런 결과를 통해가지고요

제가 KBS '사랑의 가족' 메인 MC가 됐습니다

(박수)

메인 MC가 돼가지고요

제가 서울시 의원이 되기 전까지 3년 동안 메인 MC로 방송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현재는 나사렛 대학교 협동교수로 있습니다

그리고 복지 TV의 부사장으로 있으면서

당당하게 제 이름을 걸고

'마루의 행복한 휴먼플러스' 라는 토크 프로그램 진행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요 제가 능력이 뛰어나서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저에게 기회를 주신 분들이 있습니다

장애는 또 다른 능력을 갖고 있다고요

인정해 주시고 기회를 준 분들이 있기 때문에 제가 역할을 했던 겁니다


여러분 혹시 복지TV 아세요?

복지TV가요 처음에 시작할 때 5명의 직원으로 시작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요

근데 지금은 50명이 넘는 직원입니다

아무리 잘 만든 콘텐츠라도요 우리가 볼 수 없으면 의미가 없죠

케이블에 복지TV는 제한적으로 나가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31명의 국회의원들을 직접 만났습니다

그리고 장애인 방송권에 대해서 설명을 드렸어요

그리고 방송법이 일부 개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요

복지TV는 모든 케이블, IPTV, 그리고 위성방송에 의무적으로 송출이 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장애인들의 문화 향유를 조사해 보면요

TV 시청이 90%가 넘습니다

저는 제가 복지TV에서 한 일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 제가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누굴까요?

제가 주관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그 누군가를 위해서 단 한 번도 울어보지 못한 사람이라고 저는 주장하고 싶습니다


그래서요 저도 마찬가지지만 누구든 '리콜'과 '리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리콜'과 '리필'이 뭘까요?

저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우리 가슴에요 하트를 많이 많이 만들고요

사랑의 무한 리필을 전달하는 겁니다

그리고 여기 보시면 나오겠지만 하트, 하트가 나오는데요

이 하트 속에요 사람 인(人) 자가 들어가 있습니다

사람 인(人)자처럼요 저는 그런 생각 합니다

우리 모두가요 더욱 더 상대방을 배려하고요

그리고 사랑의 무한 리필을 어려운 분들에게 전달해 주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저의 강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글자막 : 박진희 (jinee10.park@gmail.com) 

한글검수 : 최두옥 (dooook@gmail.com)


이 글은 청각을 잃은 제 친구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전체 또는 일부가 잘못듣고 잘못 옮겨적은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해당글에 댓글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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