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막 세바시 605회 나만의 문화를 만들다 | 이소은 Deputy Director, ICC International Court of Arbitration, SICANA


강연 소개 : 중학교 때 저는 가수의 꿈을 이루고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많은 것을 이뤘고 얻었지만 진정한 나의 길에 대한 고민과 나의 열망을 가지게 됐습니다. 제가 이뤄놓은 기반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하고 새로운 땅을 밟는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제게 새로운 길에 대한 열망이 컸습니다. 그렇게 저는 11년의 연예계 생활을 접고 미국 로스쿨에 입학했습니다. 미지의 미국 사회에서 로스쿨 생활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험난하고 어려운 과정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나만의 문화를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이러한 저의 노력과 인내가 현재 로펌에서 일하며 나만의 문화를 만든다는 것은 도전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도전은 분명 어려움이 따르지만 동시에 기회도 찾아올 것입니다.

✻ 이 강연은 외교부 공공외교 프로젝트와 함께합니다.


게시일: 2015. 10. 11.




나만의 문화를 만들다 이소은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소은입니다

(박수)




제가 최근에 회사를 옮겼습니다

굉장히 따끈따끈한 이직인데요

그 전 사무실 정리를 하면서

제가 벽에 붙여놨던 포스트잇 메모지 이런 것들을 하나씩 떼는 작업을 하잖아요

그 작업을 하면서

제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붙여놨던 문구 두 장의 메모가 새삼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구절 중에서 이 부분을 붙여놨더라고요


'문제 그 자체를 사랑하라'

'지금 당장 해답을 얻으려 하지 마라'

'지금 그 문제들과 함께 살아라'

'그러면 언젠가 먼 미래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거니까'


두 번째 제가 붙여놨던 문구는

여러분이 많이 아시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 라는 곡 가사를

제가 직접 제가 일하던 로펌에서 타자를 쳐서 프린트해서 붙여놨더라고요



'충만한 인생을 살았죠'

'모든 길을 다 가봤고'

'그리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방식대로 내 길을 갔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두 문구를 매일 보이는 사무실 바로 옆에 붙여놨던 이유는

생각을 해보니까

제가 이 말에서 힘을 되게 많이 얻었던 것 같아요

늘 되새기고 이 말을 실천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세바시 강연 섭외를 받았을 때 고민을 굉장히 사실 많이 했어요

다른 분들처럼 제가 그렇게 긴 인생을 살아온 것 같지도 않고

아직도 많은 고민 속에 그리고 늘 의문을 제 스스로한테 던지면서

'이 길이 과연 맞는 길인가?' '내가 지금 잘하고 있나?'

이런 생각들을 굉장히 많이 스스로 하는데

이런 제가 여러분들과 어떤 이야기를 정말 진솔하고 편안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하다가

제가 굉장히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한 가지 꼭 지키려 했던 점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오늘 그 이야기를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그 이야기는 바로

'자신만의 문화를 만들자' 입니다

'자신만의 문화를 만들자'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을 해보면서

제가 지금까지 걸어온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최근에 가졌습니다

저 아시는 분? (웃음)

계시죠? 네! (웃음)

제가 데뷔한 지 꽤 오래돼서

어린 친구들은 저를 잘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저 사람 누구지?' 이럴까 봐 한 번 해봤어요 저도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어떤 방송국 창작가요제에 제 자작곡으로 참여를 하게 되면서

연예계라는 특수한 사회에 입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참 어렸었는데

교문 앞에 기다리던 저의 매니저분 차를 타고 방송국과 공연장을 왔다갔다 하는

그런 굉장히 독특한 학창시절을 그때 시작을 하게 되는데요

제가 그런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로스쿨을 왜 가기로 생각을 했을까요?


처음에 이 이야기를 제 지인들한테 얘기했을 때

"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

제가 너무나 살아왔던 방향이랑 너무 판이하게 달라서

"얘가 과연 지금 정신이 조금 나갔나? 되게 힘들었나?"

이런 얘기를 저는 많이 들었어요


제가 정말 느닷없이 왜 법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까요?

여러분들 중학교 때 생각나십니까?

저는 중학교 때 정말 제일 컸던 고민이

'떡볶이 먹을까? 순대 먹을까?' 이런 종류의 고민이었던 것 같아요

굉장히 단순하고

그리고 또 그때는 이성에 눈을 뜨는 시기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들에 대한 고민을 하는 시기이면서도

스스로 굉장히 어른스럽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어른스러워도

자신이 정말 삶에서 어떤 방향으로 가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뭘 이루고 싶은지에 대한

정말 많은 고민 끝에 결정할 수 있는 그런 나이는 적어도 저는 아니었어요

그런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너무나 큰 선물을 저는 받게 된 셈이죠


저는 너무나 운 좋게

제가 정말 사랑하는 음악과 노래를 할 수 있는 큰 기회를 얻었고

그 기회를 제 것으로 만드는 행운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나이가 좀 더 들어가면서, 철이 좀 더 들면서

그리고 대학교에 가서 다른 종류의 학문을 접하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야기를 나눠보면서

그리고 또 세상이 돌아가는 방법에 대해서 좀 많이 알게 되면서

내가 정말 이 삶에서 무얼 원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너무나 많이 되더라고요

그때 저는 느꼈던 게 

'정말 큰 선물처럼 다가온 큰 행운도'

'제대로 주체적인 성찰이 없이는 굉장한 독이 될 수 있겠구나'

'나의 한계를 지어 놓는 그런 것이 될 수 있겠구나'

라는 것을 몇 년을 통해서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지식과 관심과 능력

이 세 가지는 굉장히 다른 것이죠

저는 관심에 관해서는 정말

어느 누구보다도 제일 열정적이라고 생각해요

너무나 많은 것에 관심이 있어요

호기심이 좀 많다고 생각을 해야 될 것 같은데

사회적인 문제, 사회현상, 요즘 일어나는 여러 신문에 나오는 모든 면의 기사에 대해서

마치 제 일인 양 굉장히 관심이 많았어요

하지만 그 관심을 뒷받침할만한 지식이 부족했다고 느꼈고

제가 보는 문제들에 대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은 저한테 있지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빈틈이 점점 나이를 들어가면서 너무 크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물론 너무 행복한 음악 생활을 하기도 했었고

진짜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는 소중한 경험이었지만

저는 굉장히 공허함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은 우리 인간사회에 가장 기본이 되는

법 공부를 하고 싶은 열망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미국에 오기로 결정을 한 이유는

좀 익명의 곳에서, 저를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좀 자유롭게 진짜 한번 저를 끝까지 한번 밀어보고 싶었어요

내가 어느 정도까지 한 분야에 완전 미지의 세계였지만 할 수 있나 하는

그런 도전을 저에게 주고 싶었던 마음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여러가지 제약이 좀 있었으니까요 저한테는

그래서 저는 2009년에 제 연예계 생활 11년을 뒤로하고

미국 로스쿨에 입학해서

미지의 미국사회 그리고 법의 세계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 와서

매일매일 너무나 힘든 학업의 압박을 하루하루 견디다 보니

어떡하다가 졸업을 하게 됐어요


그 로스쿨 시절 이야기는

지금 이 15분 가지고 안되고 한 15시간이 필요한 것 같은데

저는 시험에서 완전 꼴찌도 해봤고

너무나 많은 망신을 당해서

'다시 그 수업에 못 가겠다' '수업을 DROP(포기)할까?'

생각도 한 적도 있었고

굉장히 우여곡절이 많은 로스쿨 생활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하루하루 견디다 보니까

'하루하루 내가 맡은 일만 하자' 이런 마음으로 견디다 보니까

졸업을 하게 됐고

어느새 제가 법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어느 정도 생긴 사람이 돼 있더라고요


그래서 졸업 후에 이 곳 뉴욕으로 와서

송무 변호사, 국제중재전문 변호사로 로펌에서 일을 하다가

아주 최근에 제가 굉장히 관심많은 분야, 국제 중재 분야에 있는

국제기관으로 일터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사실 열망이 있어도 이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거는 쉽지가 않은 거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쉽게 결정한 그런 일이 아니었습니다

굉장히 어렸을 때부터 시작해온 일이었고

제가 너무나 사랑하는 일이었고, 지금도 사랑하고

그리고 커리어의 기반이 있는 상태에서 그걸 내려놓고

다른 일을 새롭게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거는 리스크가 꽤 많이 따르잖아요

그리고 또 제가 이뤄놓은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것들도 내려놔야 했던 거는 당연했고요

또 제가 로스쿨 갔을 때 나이가 20대 중.후반 그 사이였는데

이렇게 나이가 밝혀지나요? 그 중간이었는데

그때는 제가 가수활동을 굉장히 왕성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시기이기도 해서

그런 유혹들도 되게 많았어요

그래서 저는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잖아요

저는 정말 너무 몰랐던 거 같아요 그냥 열망이 너무 앞서서

'그래, 난 이거 한번 해보자' 하는 그 마음으로

지금 이렇게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제 도전을 감행을 했고

지금 이 길을 가고 있습니다




자신만의 문화를 만들어간다는 것은 그냥 일상적인 일뿐만 아니라

제가 속한 직업군 이런 환경에서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어떤 방식에

나다움을 첨가하는 일도 해당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가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도

나다움, 내 스타일, 그리고 내 문화가 제 일처리 과정에 있어서 늘 혼재돼있다고 느낍니다


잠시 일화를 말씀드릴께요

제가 1년 차였을 때

제가 지금 하는 분야가 국제중재인데 국제중재재판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어요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업 클라이언트와 굉장히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됐습니다

증언준비를 할 때는 이렇게 시간을 많이 보내야 돼요

그런 와중에 워낙 재판하는 과정이 중요하고 그 업무에 중압감이 있다 보니

굉장히 피곤에 절어 있을 수도 있고 좀 심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그게 오히려 저의 일의 효율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제가 기업 임원분들하고 사적인 대화를 나누려고도 되게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분들은 브라질 기업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브라질 커피가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커피 이야기를 막 했더니 굉장히 좋아하시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나중에 제가 동료들한테 들은 얘기인데 이런 경우는 정말 드물다고 해요

워낙 중압감이 있고 일을 잘 해야 된다는 책임감 때문에

정신이 없는 게 일반화되어 있는데


그리고 특히나 제가 1년 차 변호사였잖아요

하지만 저는 오히려 제가 더 좋은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소통의 장을 마련해야 된다는 생각을 해서

저만의 문화로 저만의 방식으로 이끌어가려고 했던 노력이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나만의 문화를 만들어간다는 것은 크고 작은 도전이 있는 거 같아요

여기서 제가 말하는 '도전'이라는 것은

어떤 거창한 변화, 어떤 거창한 결심 이런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내가 '불편하다' '뻘쭘하다' 이렇게 느끼는 상황에서

의식적으로 '내가 여기서 뭔가를 배울 수 있을까?' 하는 그런 노력

그리고 '나만의 방식을 여기에서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고 행동하는 그런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도전에는 분명히 어려움이 있어요

하지만 그 속에 기회가 또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말은 이렇게

'나는 내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어' '잘할 수 있어' 라는 식으로 말을 하지만

저 사실 알고 보면 굉장히 고민이 많은 스타일이에요

큰 컨퍼런스, 큰 미팅에 들어가야 되기 전에 문을 다 닫고

'아, 난 할 수 있어' 하는 2분의 시간을 늘 가져야만 하는 마음의 소유잔데요

제가 일 처리 하는데 있어서 굉장히 힘들어하고 있을 때

저는 주로 부모님이랑 많이 대화를 하면서 풀거든요

제가 한번 어떤 케이스 어떤 대인관계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고 있었을 때

저의 엄마한테 좀 신세 한탄을 했어요

그랬더니 엄마가 갑자기

"소은아, 다이아몬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아?" 이러시는 거에요

'또 무슨 소린가? 내가 다이아몬드라는 건가?'

'이쪽의 결론이 그렇게 날 것인가?' 그렇게 생각을 하다가

"어 그래 엄마 무슨 소리야?" 그렇게 얘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엄마가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이아몬드는 고도의 열과 너무나 큰 압력에 의해서 생성이 되고

그 압력과 열 때문에 단단하고 결정체를 많이 만들어서

그 빛을 반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서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아름답다는 거에요

그러면서 엄마가 또 덧붙이신 말씀은

"다이아몬드가 아무리 그렇게 아름다워도

사람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면서 "네가 지금 로펌에서 일을 하면서 겪는 모든 것들은

다이아몬드의 그 과정을 배우는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해라"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굉장히 많이 좌절도 하고 고민도 하고

어떤 선택에 있어서 망설이기도 하고 그런 걸 반복할 거 같아요

여러분들도 그러실 거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이제 다이아몬드가 되는 그런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자신만의 문화로 주체적으로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처음 강연 시작했을 때 제 사무실에 붙여놨던 문구 기억하시죠?

그 두 문구를 이제 이렇게 융합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나만의 문화에 따라서 내 길을 충실히 가다 보면'

'삶이 나에게 답을 가져다 줄 것이다' 라고 저는 믿고 살고 싶습니다

제가 이 강연을 준비할 때

세바시 제작진이 "오랜만에 노래를 들을 수 없나" 라고

(박수와 환호)

그렇게 물어오셨어요


저 노래 안 한 지 굉장히 오래됐거든요

그래서 강연 주제랑 안 어울리면 어떡하나, 안 어울리면

갑자기 다이아몬드 얘기하다가 노래하면

너무 웃기고 어색하고 그러면 어떡하나 고민을 하다가

제가 굉장히 어렸을 때 1집에 들어있는 곡인데요

그 곡에 가사의 후렴구가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그 후렴구는 이렇게 됩니다


'네 안에서 널 무겁게 하는 건 거기 둬, 거추장스럽지 않도록'

'겁내지 마, 용기와 평화를 가지게 될 거야'

'뛰는 거야, 세상은 널 꼭 놓치지 않아'


용기를 갖고 겁내지 않고 자신만의 문화를 만들어갈

여러분과 저를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서

이 노래를 부르면서 강연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글자막 : 조주영 (hahaseven@naver.com) 

한글검수 : 최두옥 (dooook@gmail.com)




저에게 공공외교란 [일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모두가 일상생활 안에서 충분히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는 외교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이 글은 청각을 잃은 제 친구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전체 또는 일부가 잘못듣고 잘못 옮겨적은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해당글에 댓글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추신 : 여러분의 '공감' 클릭은 제게 정말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