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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 세바시 610회 상실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법 | 전종목 폴앤마크 강사


강연 소개 : 어릴 적 아끼던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의 속상함, 기억 나시나요? 저는 유치원에서 뭔가를 잃어버리고는 집에 돌아오는 내내 엉엉 울어서 눈물콧물 범벅이 되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웃긴건 그 날 잃어버린게 뭐였는지는 완전히 까먹었는데, 그 때의 속상했던 그 심정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더라구요. 살면서 누구나 마주하게 되는 '상실'의 순간, 우리는 그 '상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속상함에 대처해야 할까요?


게시일: 2015. 10. 26.




(박수와 환호)

제가 시작 전에 한 가지만 부탁을 좀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아까 리허설 하다가 결혼 반지를 잃어 버렸거든요

그런데 아마 좌석 중에, 아 죄송해요

지금 좌석 중에 한번 찾아봐 주시겠어요? 바닥 쪽에

정말 꼭 찾아야 되거든요

찾아주신 분께 제가 꼭 사례하겠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뭔가를 잃어버렸을 때

뻥이에요, 뻥이었어요

정말 제가 세바시 올라와서 뻥을 칠 줄은 몰랐는데

세상을 바꾸기 위한 뻥이라고 생각해 주시고

'세바뻥' 이라고 생각해 주시고

저는 잃어버린 거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 한 가지는요

제가 올라오기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목소리가 잘 나왔거든요

목소리를 잃어 버렸어요

오늘 여러분이 듣기 좀 힘드시더라도 잘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박수와 환호)




그런데요 제가 살다보니까 목소리처럼 소중한 것들

특히나 제가 아까 말씀드렸던 결혼 반지나

소중한 것들일수록, 가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리고 대체할 수가 없을수록

속상하고 안절부절하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은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가장 가치가 있었던

그리고 대체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잃어 버렸던 얘기를 여러분과 함께 해 보려고 합니다




저는 굉장히 화목한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저희 어머니께서는 특히나 굉장히 건강한 분이셨습니다

심지어 아마추어 수영대회, 테니스 대회에 나가서 입상하실 정도로 정말 건강하셨는데

그 분이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위암 말기로 돌아가실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러면서 제 인생도 그 때부터 변하기 시작했죠

남들보다 조금 더 사춘기가 아프게 조금 더 일찍 찾아온 것 같았습니다

그때 이러다 보니까

친구들이 나쁜 짓도 하자 그러고 나쁜 유혹도 하기도 했었어요

그 때 아마 이 사람이 저를 붙잡아 주지 않았으면

그 유혹에 말려들어 갔을지도 모릅니다


바로 제 둘째 누나였는데요

둘째 누나와 저는 사실 약간 앙숙과도 같은 사이였어요

제가 엄청 맞았거든요

저희 누나가요 어머니를 많이 닮아가지고

어머니는 이렇게 테니스를 하셨는데

누나는 저를 막 이렇게 때렸어요

머리를 빡빡! 때리다 보니까 제가 맞으면서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는데

아무튼 간에 제게 그런 누나였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저를 많이 챙겨주고 저를 지지해 줬어요

근데 특별하게 훈계를 해 주거나 좋은 말 해준 게 아니고요

그냥 저와 함께 있어 줬습니다

제가 오락실이나 만화방, 게임방을 갈 때

같이 가서 게임을 해 주고요 게임방비 계산도 해 주고

그리고 배고프다고 떼쓰면 떡볶이나 닭꼬치 같은 거 사주기도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친구들이 저보고 가출하자고 할 때 저는

"누나랑 떡볶이 먹으러 가야 돼" 이런 식으로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누나가 점점 특별해지더라고요


사실 누나는 제가 군대에서 훈련 받을 때

다른 친구들은 여자친구나 어머니한테 편지랑 간식이랑 이런 걸 선물받는데

저는 누나가 보내줬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제 안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새어머니도 계시고 아버지도 계시지만 누나한테 잘 해야겠다'

'누나를 위해서 누나가 좋아할 만한 일을 하고'

'누나가 좋아할 만한 직업을 갖고'

'누나랑 잘 어울릴 수 있는 여자친구를 만들어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미래가 됐습니다


그런 누나가 결혼하는 날이 왔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얼마나 책임감을 느껴요

'그래 내가 뭔가 특별한 걸 해줘야겠다'

'그래! 내가 누나를 위해서 멋있게 입고 축가를 불러 줘야지'

근데 그 당시에 저는 군인이었습니다

군인 생각에서 멋있는 것은 일단 두 줄 잡고

군복을 쫙 다려 입으면 멋있을 줄 알았나봐요

근데 남들이 볼 땐 다 군바리죠 (웃음)

딱 누나 앞에서 이제 제가 멋있게 나름대로 축가를 딱 불렀습니다

근데 이상하게 아버지 표정이 너무 어두우신 거예요

그래서 전 그렇게 생각했죠

'아, 역시나 그냥 민간 복장 입었어야 되나'

근데 그게 아니였던 것 같아요

계속 결혼식이 진행되고 진행될수록 표정이 더 어두워지시는 거예요

그리고 저는 그 다음 날이 되서야 아버지 표정의 의미를 알 수 있었죠

저희 둘째 누나도 위암 말기였던 거예요


사실 위벽 바깥으로 자라나다 보니까

결혼식을 앞두고 했던 검사에서는 잘 나오지 않았고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학 병원에 의뢰를 했는데

그 결과가 결혼식 아침에 아버지한테만 들어간 거예요

그래서 이제 그 때부터 난리가 났죠

아버지께서는 이번엔 꼭 살리고 싶다고


"신혼 여행도 가지 말아라"

"신혼 여행도 가지 말고 바로 항암 치료하자! 나을 수 있다"


그래서 아버지는 누나를 실어다주고

주치의처럼 간섭하고 나으라고 운동도 시키고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친했던 저는요 가장 많이 받았던 저는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나까지 누나한테 환자 취급하면 얼마나 숨 막히겠어'

'나라도 재미있게 평소처럼 지내야지'


그런데 그 마음 한 편에는 누나의 병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요

너무 무서웠거든요

그렇게 1년 정도를 누나를 피해 다니듯이 지내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저를 부르시더라고요


"종목아"

"예, 아버지"

"너 누나랑 얘기 좀 해봤니?"

"아니요, 뭐 딱히.. 왜 그러세요?"

"얘기를 좀 하는 게 좋겠다

시간이 얼마 없는 거 같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요

사실 제 안에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누나는 어머니보다 훨씬 젊으니까'

'그리고 아버지랑 큰 누나도 열심히 누나를 치료하고 있으니까 꼭 나을거야'


그런 안일한 기대가, 막연한 기대가 한 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죠

저는 미친듯이 누나가 입원해 있는 중환자실로 달려 갔습니다

그제서야 문을 열고 누나를 봤더니

제가 피해왔던, 거부했던 누나의 모습들이 제 눈에 새겨지기 시작하더라고요

누나의 피부는 수분이라고는 하나도 없었고요

항암치료로 검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이렇게 호쾌하게 후려치던 손목은 제 손가락 두 마디보다 더 얇아져 있었고요

정말 앙상한 얼굴로 눈만 그렁그렁하니 저를 쳐다보면서 입을 여는데

가장 속상했던 건

언어 능력을 상실했다는 겁니다

뭔가를 얘기하고 싶어서 저를 보면서 입을 벌려서 얘기를 하는데

얘기 옹알이 같은 소리를 내더라고요, 알아 들을 수 없는


그제서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지금껏 당연하게 생각했던 누나와의 대화, 누나와의 시간들이

당연한 게 아니었다는 걸요

정말 하고 싶은 얘기도 많았고 듣고 싶은 얘기도 정말 많았는데

이제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이 드니까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울지 않았던 제가

화장실로 도망치듯 가서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꺽꺽 대면서 울었던 거 같아요

그렇게 얼마 후에 누나를 떠나 보내고

뭐 괜찮더라고요 생각보다

장례를 제가 상주가 되서 치렀습니다

남은 가족들과 매형을 챙기면서 정말 의연하게

뭐 괜찮더라고요


정말 큰 고통이 그 뒤에 찾아 올 줄은 몰랐던거죠

살다가 뭔가를 잃어버리게 되면

자연스럽게 세상 탓을 하거나 운명 탓을 하거나

남 탓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올라오기 전에도 '왜 하필 내가 목이 이렇게 안 좋지!' 그렇게 했고요

그 당시에도 '아, 왜 나한텐 어머니도 떠나고 누나도 떠나!' 이렇게 원망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점점 더 그 화살이 저를 향하게 되더라고요


'진작에 내가 좀 잘할 걸' 

'진작에 나도 좀 치유할 수 있도록 노력할 걸'

'내가 진작에 누나를 좀 찾아가서 손도 붙잡고 사랑한다고 얘기할 걸'

'왜 난 그러지 못했을까'


이런 생각들이 불과 며칠 뒤에

큰 파도가 오는 것처럼, 마치 해일이 오는 것처럼 저를 덮쳤어요

그리고 저를 갈기갈기 찢어 놨습니다

더 무서웠던 건 파도가 썰물처럼 쫙 빠져나간 뒤였어요

아무런 느낌도 없고 감정도 느껴지지 않고요

남는 건 쓸쓸함과 고독감 허무함뿐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내가 생각하는 미래는 이제 없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나를 다 떠나네'

'그럼 나도 있을 필요가 있나?'

'죽어야겠다'


그렇게 암시처럼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온 머릿속을 다 휘감았고요

죽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한 달 동안 계속 멍하니 살았습니다

그러고 제가 결정했던 건

제주도로 가는 편도 비행기를 예매를 했어요

죽으려고 갔던거죠 유서를 쓰면서 걸어 갔습니다

유서에는 온통 누나와 엄마에 대한 그리움, 얘기 그런 것들 밖에 없었어요


'아, 누나 보고 싶다 나는 왜 이렇게 살까?'


그러면서 '우도'라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는 바위에 앉아서 유서를 마무리짓기 시작했죠


'아, 이제 나도 엄마, 누나 곁으로 가야겠다. 곧 떠난다'


이런 엄청난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막 시끌벅적 한 거예요 그래서 '뭐야!' 하고 봤는데

한 6살 쯤 됐을까요? 한 꼬마 아이가

자기 몸의 절반만 한 과자 봉지를 안고 막 뛰어다니고 있는 겁니다

막 '꺅~!' 소리 지르면서

그리고는 그 아이의 누나 정도로 되는 거 같아요

초등학생 정도 돼 보이는 여자 아이가

'거기서!' 라고 소리 지르면서 같이 뛰어 놀고 있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제가 이런 생각이 들었죠


'아니, 내 삶을 정리하는 거룩한 순간에 지금 뭐 하는 거야?'


그러다가 거짓말처럼 감정이입이 되더라고요


'캬- 나랑 누나같네 인마, 누나 있을 때 잘 해'


근데 그 애가 막 뛰어다니다가 확 넘어진 거예요

애들 넘이지면 아시죠? 손발 다 까지고 옷 더러워지고

가지고 있던 과자는 다 흘렸는데 그거 먹겠다고 달려들고

그 누나는 그거 말리겠다고 싸우고 혼내고 난리가 난 겁니다

그러니까 제가 '아, 이거 진짜 분위기를 모르고!' 이러고 있는데

그 여자애가 이 애를 혼내는 말이 갑자기 너무 잘 들리더라고요


"야! 너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건데! 너 때문에 집에도 못 가고"

"집에 가면 엄마가 맛있는 거 해줄텐데 그것도 지금 못 먹고 있잖아"

"언제까지 못 먹게 된 과자만 먹겠다고 이러고 있을 건데!"


라고 혼을 내는데 저를 혼내는 것 같았습니다


그 6살 짜리 애는요

풀이 죽어가지고 훌쩍 거리면서 누나 손을 이렇게 잡고 가더라고요

제가 이제 그 뒷 모습을 멍하니 이렇게 10분 정도 바라봤다가

갑자기 눈물이 툭 하고 떨어지더라고요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더라고요

새어머니도, 큰 누나도, 할머니도, 친구나 친척들도

그리고 갑자기 배가 고파졌죠

그래서 저도 그 아이처럼 훌쩍거리면서 돌아갔던 것 같아요


살면서 상실의 순간은 피할래야 피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제 목소리처럼

그리고 아무리 내가 열심히 간절히 일자리를 원한다고 해도

일자리는 주어지지 않고

그것 때문에 자신감과 자존감은 완전히 바닥이 되고요

또는 내가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식는 것을 막을 수가 없는 경우도 있죠

시간이 흘러가는데 젊음을 어떻게 잡겠습니까?

빠지는 머리카락도 잡을 수가 없겠지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도 지킬 수 없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고통과 상실을 

'축복이다, 감사해라, 선물이다'

저는 그렇게는 말을 못할 것 같아요

너무 아프고 너무 속상하거든요 정말 죽을만큼


근데 제가 배운 것 딱 한 가지는요

상실의 그 아픔 그 순간에서 거기에만 집중하지 말고

내가 아직 잃어버리지 않은 것, 내가 아직 가지고 있는 것,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에 시선을 돌려서

거기에 조금만 더 집중하려고 노력한다면

그 때 비로소 내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더 감사하고 고맙게

더 빛나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을 그거 하나를 배웠습니다



그 뒤로 저한테는 정말 기적같은 좋은 인연들이 많이 생겼어요

저를 정말 누구보다 사랑해주고 아껴주고 너무 아름답고 따뜻한 여인을 만나서

2년 전에 결혼을 했습니다 한 여자를 만나서

(박수와 환호)


그리고 그녀 뱃 속에 아주 귀한 손님이 찾아와 줬는데요

바로 '달콤'이라는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참고로 키우던 새가 '새콤'이에요 그래서 '새콤달콤'인데

달콤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저랑 비슷하다고 찍었는데 닮았나 모르겠어요


근데 친구가 열심히 자라서 작년 11월에 무사히 태어났습니다

이게 처음 의자에 앉으셨을 때

처음에 의자에 앉으셨을 때 흡족하신 표정이에요


저희 집 대장님이라서 제가 극존칭을 쓰고 있는데

이게 흡족하신 표정이시고요


이렇게 너무 예쁘게 잘 자라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냥 강연이 마무리되고 제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라고 마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근데 그건 동화나 영화에서나 있는 일인 것 같고요

삶이라는 게 그렇게 녹록치 않죠

이 아이도, 효준이도

제가 아무래도 심지어 강연날 목소리를 잃어 버리는데, 잃어버리는 것에 전문가다보니까

이 아이도 저를 닮았나봐요


잃어버리고 태어난 게 한 가지 있더라고요

우리 몸에서 피가 나면 피를 멎게 해주는 인자가 10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한 가지를 잃어버리고 태어났습니다

'혈우병'이라는 희귀난치성 질병인데요

그걸 알게 되서 처음에 저는 원망도 많이 했어요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 나를 같이 지내게 해주고 위로가 됐던 누나

심지어 내가 낳은 애까지...

근데 제가 배운 것 한 가지가

이 아이 효준이에게도 정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친구도 이 혈우병이라는 고통과 슬픔에만 매달리지 않고

가지고 있는 것들, 그리고 가질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한다면

상실의 슬픔으로부터 더욱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걸 도와줄 수 있는 정말 친구같은 아빠가 되는 게

제 지금의 최고의 목표입니다

(박수)


제가 이 죽음의 문턱에서 알게 되었던 이 교훈을요

수십 년 전부터 온 세상에 알리고 계신 분이 계시더라고요

저도 이 분을 직접 뵌 적은 없는데 굉장히 유명하신 분이라

아마 여기 계신 분들도 다 한 번씩은 뵈신 적이 있을 거예요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너무 훌륭하셔서 제가 멘토로 모시고 계신 분입니다

그분을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까 하는데요


위너 더 푸우(Winnie-the-Pooh)의 '티거(Tigger)' 선생님이세요

이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더라고요


매일매일 좋을 순 없어 

그런데 잘 찾아보면 매일매일 좋은 일은 있다고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가 상실의 순간에 나에게 남아있는 좋은 것들에 감사하면서

그것에 좀 더 집중하려고 노력하고 내가 더 뭘 할 수 있는지 생각한다면

매일매일 좋은 하루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한글 자막 : 박진희 (jinee10.park@gmail.com) 

한글 검수 : 최두옥 (dooook@gmail.com)




이 글은 청각을 잃은 제 친구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전체 또는 일부가 잘못듣고 잘못 옮겨적은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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