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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장애로부터 벗어나기 | 윤혜령 청각장애인 바리스타 | 세바시 644회


강연 소개 : 저는 청각장애인입니다. 외부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어요.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일 수 없었어요. 청각장애인이었기 때문에 중고등학교도 검정 고시로 졸업했습니다. 그게 효율적이었거든요.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제가 집중하는 건 오직 제 일과 저 자신뿐이었습니다. 그게 청각장애인에게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바리스타로서 새 삶을 만들어가면서 느꼈어요. 세상, 그리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또 다른 장애라는 것을, 어쩌면 청각장애보다도 더 가슴 아픈 일이라는 것을요. 그렇게 제가 공감장애로부터 벗어난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겠어요.


게시일: 2016. 4. 3.




안녕하세요. 윤혜령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사실 동창 친구가 없습니다 

남들은 다 입어본 교복도 그리고 야자 시간도 

해본 적도 없고요, 동창회도 해본 적이 없어요 


왜냐면 저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 검정고시로 졸업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제 또래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적었어요 

그럴 때마다 책을 틈틈이 읽었고 

책을 통해 사회를 배우고, 자서전을 통해 사람을 배웠습니다 


제가 탐정이 되고 싶으면 추리 소설을 읽었고 

제가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고 싶으면 로맨스 소설을 읽었으며 

부지런한 사람이 되고 싶으면 자기계발서를 읽고 그랬어요 


저는 스무살이 되자마자 웹디자이너라는 직업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요 

웹디자이너를 선택한 이유는 제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컴퓨터로 소통하면서 일을 하면 

사람의 입 모양을 힘들게 읽지 않아도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따뜻하지 않았던 직장생활이었습니다 

저는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잘 몰랐지만 

처음부터 잘하고 싶었기에 '일 잘하는 사람들의 지침서' 이런 거를 읽었어요 

그런데 신입이 일을 잘하면 얼마나 잘하겠어요 

그렇죠 ? 

얼굴을 마주 보고 일을 하지 않으니까 

제가 하는 대답도 참 사무적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직장 상사가 저한테 퇴근 직전에 일을 맡깁니다 

그러면 저는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가니까 내일 달라고 합니다 

사실 제 얼굴을 보면서 

"혜령씨, 정말 미안해 그런데 정말 급한 일이야 해주면 안 될까?"

라고 말했다면 퇴근 시간이 좀 늦더라도 해줄 수 있는 부분인데 

저는 안된다고 그랬어요 


왜냐면 '퇴근 시간이 넘어서 못할 일은 맡지 말라' 책에서 그랬거든요 

(ㅎㅎ)

(박수)


전 회사를 다닐 때도 월급 많이 주고, 주5일제에, 칼퇴근하는 회사만 찾아다녔어요 

그게 최고의 회사라 생각하면서 5년간 웹디자이너로 일했습니다 

사무적으로 사람들을 대하니 감정 소모도 없었고요 

그런 제가 행복했을까요 ?


전 월급을 더 많이 받는 곳으로 계속 옮기면서 다닐수록 계록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5년째 일하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사람과 부딪히면서 일을 해보고 싶다'


음식점에서 주문받는 일이라고 좋을 만큼 사람과 부딪혀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웹디지이너로서의 길을 멈추고 새로운 직업을 찾게 됩니다 

그렇게 저는 바리스타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정말 전쟁 같은 나날을 보냈습니다 

늘 손님의 주문을 알아듣기 위해서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몰라요 

게다가 몸으로 움직이는 실무적인 부분도 굉장히 약해서 실수도 참 많이 했습니다 

거기에다 센스도 없었고요 

그때 알았죠 


'내가 내 적성이 아닌 걸 선택했구나'


옆에서 저를 지켜보던 어머니가 "그만두라"고 할 정도로 제 적성과는 맞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만두고 싶지 않더라고요 


' 이 직업을 내 것으로 만들겠다'

'여기서 포기하면 나는 아무것도 못 할 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참고 견뎌냈어요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어요 

판매용 쿠키를 포장하던 중에 

제가 실수로 쿠키를 바닥에 엎어서 쿠키를 판매하지 못 하게 됐어요 

그때 같이 일하던 사람이 놀랐어요 


"이 쿠키 못 팔겠다 어떻게 하지?"


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얘기했습니다 


"내 돈주고 사면 되죠. 사장님한테 쿠키 팔았다고 하면 되잖아요"


여러분들 어떻게 생각하세요?

(ㅎㅎ)


사실 저희 가게를 찾는 수많은 손님에게 쿠키를 줄 수 없게 된 상황인데도 

저는 '돈만 채워 넣으면 돼'라는 생각만 했어요 

혹시 여기에 저처럼 문제를 이렇게 수습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 계시나요?


제 말을 듣더나 같이 일하던 사람이 놀라면서

"너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느냐?" 

고 했어요 


'내 돈 주고 내가 쿠키를 사겠다는데, 다만 먹지 못할 뿐이지...'


그렇죠?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 엄마한테 이런 얘기를 했어요 


제 말을 듣더니 엄마가 제일 먼저 보인 반응은 

한숨을 푹 쉬시는 거였어요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혜령아 그럴 때는 같이 일한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겠니 

그러 때는 네가 '어머, 정말 죄송해요 내가 좀 조심할걸 놀랐죠?'

라고 하는 게 같이 일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고 

'사장님, 죄송해요 제가 쿠키를 잘 못 엎어서 못 파는 

쿠키값을 제가 낼게요'라고 하는 게 자연스럽다"고요 


그때 알았죠


'물질적으로 상황을 수숩하는 게 아니구나' 라는 걸요 


컵이 깨졌을 때도 저는 잘 들리지 않아서 놀라지 않거든요 

그럴때마다 무표정으로 빗자루랑 쓰레받기 가져와서 쓱쓱 쓰는데 

사실 그러면 안 되잖아요

그럴게 아니라 


"어머, 죄송해요 다치지 않으셨어요?"

이렇게라도 하는게

놀란 상대방에게 대한 배려고 

또 나에게도 자연스러운 행동이거든요 


제가 혼자 웹디자인을 할 때는 몰랐는데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일을 겪다 보니 이런 부분들을 의식할 수 있게 됐어요 


저는 처음에 이렇게 생각했어요 


'아... 내가 안 들려서 사람들과 소통을 하지 못해서 이런 문제가 생겼구나'


제가 이상한 줄 알았어요 


저는 이런 얘기들을 엄마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도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그 반응이 참 놀라웠어요 

어떤 사람은 "네가 잘못했는데 너 왜 그랬니? 나라도 좀 그랬겠다"라고 했던 사람도 있던 반면에 

어떤 사람은 "그래? 난 네가 이상한지 모르겠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예민한 것 같아"

라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이건 청각장애로 인한 공감의 문제가 아니라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그런 소통에 대한 문제라고요 


그래서 저는 제가 공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런 문제들은 장애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집에서도 제가 방에 있는데 엄마가 외출했다가 들어오셨어요 


그러면 옛날의 저는 엄마 한번 보고

'아! 엄마가 왔구나'라고 생각만 하고 말았어요 


근데 요즘은 엄마가 외출했다가 들어오시면 

"어~ 엄마 왔어? 어디갔다 왔어? 

밖에 많이 춥던데 괜찮아?"라고 해요 


여기 오신 분들은 이미 다들 이렇게 살갑게 얘기하고 계신거죠?


그렇게 저는 이런 사건들을 겪어 나가면서 사람들과 공감대를 쌓아나갔어요 


바리스타로 일한 지 일 년째 접어들었을 때 

커피를 정말 체계적으로 공부를 하고 싶어서 

학원을 다니면서 강사님 말을 알아듣는 게 참 쉽지 않았어요 

다행히 속시 서비스를 지원받을 수 있어서 속기로 수업을 받는데도 

로스팅, 핸드드립 등 굉장히 어려운 커피 용어들이 많다 보니까 

속기사가 그대로 다 쳐줄 수는 없었어요 

동영상을 보려고 해도 공영방송도 아닌 개인방송이 많았기 때문에 

자막도 보기가 힘들었구요 

커피에 대한 관련 책들을 사들여가며 공부를 했는데도 


저는 참 느낀게 

'이게 들리지 않으면 정보수집이 어렵구나!

공부가 안되는구나!' 였어요 

그래서 저는 그때 

'저와 같은 바리스타가 되고 싶어하는 청각 장애인들에게 

이렇게 쉽게 커피를 배울수 있는 자료가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에 


저는 청각 장애인들이 이해하기 쉬운커피교육 자료를 직접 만들게 되었어요 

예를 들면, 우유를 덥힐 때 거품을 만들어야 하는데요 

거품이 어느 정도 생성이 되는지를 소리로 파악을 할 수 가 있어야 해요 

그리고 커피를 볶을 때도 팝콘처럼 팡팡 터지는데 

그런 소리를 듣는 것도 굉장히 중요해요 

여러분은 거품 생기는 소리, 또 커피를 볶을때 팝콘처럼 팡팡 터지는 소리 들어보셨나요?

그러면 한 번 들어보실까요?


거품생기는 소리 먼저 들어보실까요 ? 

(거품생기는소리)


네 그럼 이번에는 커피 볶는 소리 팡팡 터지는 소리 한번 들어보실까요 ?

(팡팡)


여러분 들으셨어요 ?

(네~)


근데 전 안 들려요!


이렇게 청각 장애인들은 듣지 못하니까

저는 소리로 듣지 않고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진동으로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소개했습니다 


제가 배운 노하우들을 전수해주고 싶어서 

더 열심히 공부를 하면서 밤을 새가며 자료를 만들었어요 

그렇게 해서 지금 저에게는 30명의 청각 장애인 수강생이 있습니다 

물론 일반 수강생은 더 많아요 


청각 장애인들 중 절반은 현재 바리스타로 활동 중인데요 

그 중에서 대기업의 카페에서 근무하는 분이 계셔요 

구분을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이나요 

왜냐면 굉장히 무뚝뚝한 분이셨거든요 


"안녕하세요" 하면 "네, 안녕하세요"


"날씨가 참 춥죠?" 하면 "네"


이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일상적인 대화가 없었어요 

되게 대답도 단답형이고 얼굴도 잘 웃지 않으시고 무뚝뚝하셔서 

저는 처음에 이 분이 '서비스업이 가능하실까?' 걱정이 되었어요 


그런데 이분이 수강생들과 점점 어울리면서 조금씩 웃으시는 거예요!

게다가 사람들한테 먼저 다가가려 하는 노력도 하고 계시고요 

그리고 제가 강의한 자료들을 파일로 철을 해서 수시로 보는 노력도 하시고요 

정말 그 분을 통해서 제가 옛날에 겪었던 공감문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어요 


'아! 옛날 내 모습이 그랬겠구나, 옛날의 나처럼 지금 이 분도 노력을 하고 계시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그분이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시고 취업을 하셨는데 

몇 달 후에 그분이 근무하는 매장이 전국 수 백 개의 매장 중에서 

매출 2위를 해서 보너스를 받았다는 거예요!


저는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그분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런 성과를 냈다는게 너무 기뻤어요 

왜냐면 바리스타 일은 사람과 소통하면서 함께 하는 일이거든요 

어떻게 보면 그분의 소통 능력이 성장했다는 생각에 전 너무 기뻤습니다 

바로 이런 소식들이 

제가 청각 장애인들에게 커피를 가르쳐주려고 하는 힘의 원동력인 거 같아요 


저의 이러한 활동을 보신 분들은 제가 장애를 극복했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극복이라고 생각을 안해요 


제가 좋아하는 일이었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렇게 된 것 같아요 


지금도 손님이 뒤에서 부를 때를 대비해서 

또 주문을 받는 것을 잘 알아듣기 위해서 

손님이 들어오실 때 문 딸랑거리는 종소리를 듣고, 

인사를 하기 위해서 

그런 부분들 때문에 항상 긴장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자연스럽게 제 생각과 또 제 느낌을 잘 전달 할 수 있게 

제 발음과 목소리 톤을 교정해주려는 어머니, 

그리고 저와 소통하기 위해서 수화를 직접 배워서 저와 소통하시려는 사장님 

제가 뒤를 돌아볼 때 까지 뒤에서 저를 기다려주시는 손님들 

이렇게 저에 대한 따뜻한 배려, 따뜻한 감정들이 있었습니다 


저 역시도 저 같은 청각 장애인들이 사회에 한발 디딜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맺었던 사람들과의 관계, 감정 이런 것들도 가르쳐주고 싶고요 

제가 아는 한에서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면서 살아가려고 합니다 




END


이 글은 청각을 잃은 제 친구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전체 또는 일부가 잘못 듣고 잘못 옮겨 적은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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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 여러분의 공감 클릭은 정말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