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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앞에 선다는 것 | 최태성 역사강사 | 세바시 801회


강연 소개 : 우리는 살아가면서 역사 앞에 서 본 적이 있을까요? 역사 앞에 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역사 속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역사 앞에 선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고 오늘을 사는 지혜와 연료로 삼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역사 앞에 서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그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게시일: 2017. 8. 14.




(박수와 환호)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렇게 세바시에서 불러주셔서 영광이고요

언제 불러주나 했어요 이제 나왔네요

제가 오늘 사실은 여러분한테

저 사실 언론이나 방송을 통해서 한 번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오늘 이 자리에서 처음 고백하려고 합니다

제 고백 들어주실 거죠? (네)

(박수)

자랑스러운 고백은 아니기 때문에

너그러이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1990년도에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때는요

아직도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의 여진이 남아있었어요

여전히 시위가 지속되었었고 시위도 과격했고 그런 모습이었죠

제가요 고등학교 때 어떤 생활을 했냐면

제가 고등학교 때 완전 범생이었어요 완전 범생이

범생이도 어떤 범생이었냐면 아무 색깔 없는 범생이 있잖아요

그냥 그림자 학생

게다가 저는 철저한 반공 교육을 받고 자란 그런 학생이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을 거예요

바로 이 6월 민주화 운동을 보면서요

TV와 뉴스를 딱 보는데,

세상에나! 저는 정말 깜짝 놀랐어요

막 전경들이요 막 최루탄 맞고

화염병 맞고, 돌 맞고 경찰차 불타고

저는 그 시위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나쁜 사람들이라고 저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 나쁜 사람들이 왜 저렇게 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거야!"

고등학교 1학년 반공 소년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반공 소년이, 그 범생이 학생이,

드디어 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대학은 전국에서도 시위 잘하기로 싸움 잘하기로 유명한 학교였습니다

게다가 그 싸움 잘하는 학교의 핵심! 사학과

제가 과방에 내려갔어요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사람들이 꽉 차 있습니다

깜짝 놀랐어요 투쟁! 투쟁!

저를 보더니 "너 일로와 노래 한 번 부르자"

"동지는 간데없고.."

저는 너무 무서웠어요

제가 TV에 봤던 그 나쁜 사람들이 꽉 차 있는 거예요

이거 어떻게 하지?

너무 무서워서 저는 정말 학교 가기 싫었어요

Freshman! 

대학교 1학년 생활은 저에게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합니까? 학교를 그만둘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그들하고 그 나쁜 사람들하고 같이 수업도 듣고

어쩔 수 없이 밥도 같이 먹어야 되고

어쩔 수 없이 차도 한잔 마시게 되고

어쩔 수 없이 술도 한잔하게 되고

그러다가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포섭된거죠

(웃음)


그 나쁜 사람들을 통해서

저는 6월 민주화 운동의 또 다른 모습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나쁜 사람들을 통해서

5.18 그 광주의 아픔을 저는 비디오로 처음 봤습니다


너무 아파서 막 울고 싶은데도

울음이 안 나오더라고요 너무 아파서

그런데도 

그런데도 저는 그들과 함께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을 이해했음에도 그들과 함께할 수 없었습니다


제 친구들이 거리에 나가서 시위하다가

결국 경찰에 끌려가서 감옥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저는 중앙 도서관에 앉아서 

사학과 학생이 영어책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 불편하더군요 


그때 제가 처음으로 역사 앞에 서보게 되는 겁니다

저의 첫 경험이었습니다

첫 경험은 정말 아프더군요

제 친구들이 이렇게 지금 끌려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되지?"

"나 어떻게 살아야 되지?"

라는 그런 고민을 처음 해보게 된 그 순간이 바로 그때였습니다.

역사 앞에 선다는 것

그래도 그들과 함께 할 수 없었어요

저는요 저희집 엄청 가난했거든요

저희 아버지 양복점 하다 다 말아먹었고요

그래서 복덕방에 책상 하나 갖다 놓고 

겨우겨우 생계를 연명하는 그런 집안의 자식이었습니다 

저 살아야 됩니다 저 생존해야됩니다 

저는 그들과 함께 있다가 

저 그러다 감옥 가면 어떻게 해요 

감옥 데려가지도 않겠지만 



그래서 그때, 역사 앞에서 제 나름대로 약속을 했어요 

어찌 보면 도피처고 어찌 보면 자기 합리화죠 

저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태성아!, 일단 지금은 공부하자 

공부하고, 나중에 너가 안정적 직종을 얻은 다음에 

그때 가서 너가 지금 하지 못 하고 있는 

우리에 대한 고민을 그때 하자, 태성아 

너는 여기 앉아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제 대학 생활이 흘러갔습니다 

창피하죠? 



그렇게 해서 제가 교사가 되었고요

그리고 분필을 잡고 한국사를 알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계속 교사생활을 하면서도 너무너무 매일이 불편한 거예요

"내가 대학교 때, 역사라는 그 거울 앞에서

내가 나 스스로에게 약속했던 것을 나는 하고 있는 걸까?"

라는 그 생각이 끊임없이 저를 짓누르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저는 제 스스로에게 약속했던 것 같아요

"그래, 누구랑 비교해서 내가 잘 하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 중에서 제일 잘하는 것

그게 뭐냐면, 역사를 잘 만들어서 사람들한테 알려주는 것

그렇게 해서 나도 한번 우리를 위해서 무언가를 한번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그 다짐을 그때서 하게 되었습니다


2001년도에 EBS에서 무료강의를 시작했고요

그리고 저 사실 1월에 학교를 그만 두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저는 무료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제 누적 수강생이 500만 명이 넘습니다

(박수)


저는 그 숫자에 연연하는 게 아닙니다

제 나름대로 다짐은 뭐냐면

양질의 강의, 양질의 한국사 무료 강의를 통해서

나 역시 우리 사회의 건강한 시민들을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 나가는데

조금이라도 정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내가 대학교 때

그 역사 앞에 섰을 때의 그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그 다짐, 그 다짐으로 저는요

지금도 무료강의를 하고 있고요

앞으로도 무료강의를 계속할 거라고 저는 여러분들에게 약속드립니다

(박수)


역사를 이렇게 만나다 보니까

정말 대단한 분들은 늘 역사 앞에 서봤더라고요

대표적인 인물을 제가 알려드릴까요?

여러분들 이 인물 혹시 아시나요?

누구신지 아세요? 혹시?

네, 다 아세요 바로 다산 정약용 선생이십니다

다산 정약용의 멘토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정조입니다 정조

네, 정조대왕

정조대왕이 이 정약용을 가르쳤던 인물이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이 정약용의 운명은 바로 그 정조와 함께 끝나게 되죠


정조가 1800년에 갑자기 승하하십니다

정약용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결국 그는 죄인이 되어서 유배 생활을 떠나게 되죠

유배 생활을 얼마 정도 하신 지 아세요?

무려 18년 동안 합니다

엄청 긴 시간이죠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그 18년 동안 이 정약용이요

책을 무려 500여 권 이상을 씁니다.


저도 책 써봐서 압니다

1년에 책 한 권 써가는 거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는 18년 동안

18권도 아닌 무려 500여 권의 책을 써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할 일이 없어서? 시간이 많으니까?

그 이유를 그가 그 아들에게 편지를 통해서 밝힙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알면요 정말 소름 돋습니다

그는 그 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폐족이다"

자신 스스로 '나는 폐족이다'

망한 가문이라는 얘기예요 우리 집안 끝났다는 이야기예요

나는 폐족이다

그러면서 아들한테 이야기해요

"아들아, 우리 집안 폐족이야 우리 집안 폐족인데

우리 집안이 폐족의 모습을 그래도 이어 나가려면

우리의 흔적을 남기려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학문을 통해서 우리의 흔적을 남겨야 된다"

라고 아들에게 간곡히 간곡히 편지로 답합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요

이 정약용이라는 사람이 18년 긴 유배 생활 동안에

그 많은 기록을 썼던 이유

500여 권 이상 되는 책을 썼던 이유는

바로 이거예요

내가 만약에 이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면,

역사 앞에서 나는 과연 어떻게 평가될 것인지

이 사람은 끊임없이 고민했던 겁니다


내가 만약 나의 기록을,

나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면,

나에 대한 모습은 모두 검찰에 당시에 형조였겠죠,

검찰에 공소장에

그 몇 줄자리 죄인의 낙인으로 나는 남을 것이다

정약용은 역사 앞에서

정확히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던 거예요

그 몇 줄짜리 죄인 정약용의 모습이 아니라,

이 시대의 고민, 이 시대의 변화를 위해서

애썼던 정약용으로 그는 남고 싶었던 겁니다

역사 앞에서 그는 약속했던 거예요


그 죄인 정약용이 아닌,

바로 개혁가, 사상가 정약용으로 남기 위해서

그는 그의 흔적을, 그의 몸짓을

그 500여 권의 책에 남기고 또 남겼던 것입니다


역사 앞에 선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정약용은 정확하게 역사가 무엇인지,

역사가 나를 어떻게 기억해 줄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옷깃을 여미면서

역사의 거울 앞에서 물어보고 또 물어봤던 것이죠


지금 정약용은 죄인의 정약용이 아닌,

실학의 집대성, 대학자, 사상가, 개혁가로 우리에게 정확하게 기억되어 있습니다


역사 앞에 서 있었던 인물 정약용이었습니다




혹시 우리의 외교권을 강탈당했던 사건 아십니까?

어떤 조약에 의해서죠?

그렇죠 잘 아시네요 을사늑약입니다

그 을사늑약 때

이토히로부미를 도와줬던 을사오적이 있습니다

여기 오신 모든 분들은 나라의 외교원을 팔아먹는데 앞장섰던

그 을사오적을 전부 기억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웃음)


자, 한번 가볼까요?

이완용

이지용

이런 이런..

자, 바로 이 인물들입니다

이완용, 저쪽에 이지용, 이근택, 박제순, 권중현입니다

저는 수업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얘들아, 우리나라 팔아먹는데 앞장섰던 그 5명들이다

이 5명들을 이 교실에서, 이 안에서 마음껏 너희들

내가 한번 한 명씩 이름을 부를 때마다

너희들 마음껏 욕 한번 해봐라" 라고 이야기합니다

"자 간다 얘들아"

"이완용"

오호 하시네요 좋아요 좋아

"자, 이지용"

학생들이 그래요

다음에 이근택 이러면 그때부터 웅성웅성 그래요 처음엔 말 못 하다가

그러다가 '권중현' 이러면 그때부턴 신납니다

'도그 베이비' 이런 이야기를 해요

그러다가 마지막에 '박제순' 이러면

아주 걸쭉하게 뽑아냅니다


그때 제가 학생들에게 이 이야기를 합니다

너희들이 신나고 웃고 떠들었던 이 순간을 반드시 기억해라

살면서 역사 사실들

시험에 나올 것들 다 잊어도 되지만

바로 이 시간에 너희들이 욕을 했던 이 장면을 꼭 기억해라

너희들이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

너희들도 언젠가는 선택해야 될,

책임을 져야 할 그 순간이 올 거다

그때, 너희들이 이 수업시간에 했던

너희들의 그 모습을 기억해라


여기 있는 이 을사오적은 죽었어

죽었지만, 그들은 죽지 못하지 않니?

역사 시간마다 이렇게 끊임없이 일으켜 세우면서

그들에게 역사의 단죄를 내리는 너희들의 모습을 기억해라


너희들이 역사 앞에서

어떤 선택을 내려야 되는지 잊어서는 안 된다

오늘의 시간은 그런 의미가 되어야 된다

(박수)


을사늑약을 체결했던 이 을사오적들은

역사 앞에 바로 자신의 모습들을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죠

우리 시대는 어땠을까요?

여러분들은 혹시

역사 앞에 서 보신 경험들이 있으십니까?

저는 역사 앞에 서 있었던 인물과

그 앞에 서 있었지 않았던 인물의 결과는

"너무 다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약용은 그 당시 죄인이었지만

우리에겐 지금 대단한 사상가로 기억남고 있습니다

을사오적들은요, 그 당시 엄청난 부귀영화를 누렸겠지만

지금 역사의 죄인으로 남아있습니다


역사 앞에 서 있었던 사람과

역사 앞에 서 있지 않았던 사람들의 차이는 이렇게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들, 저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사람들이 역사 앞에 서 있기를 바랍니다


왜냐면 

세상을 바꾸는 시간은

역사 앞에서 서 있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박수와 환호)





END


이 글은 청각을 잃은 제 친구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전체 또는 일부가 잘못 듣고 잘못 옮겨 적은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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