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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자막 세바시 405회 아리랑, 세계일주 고개를 넘다 | 문현우 아리랑 유랑단 단장


강연 소개 : 저는 평범한 대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국악, 서예, 한국무용 등을 전공하는 청년들과 함께 세계를 돌며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세계를 돌며 아리랑으로 세계인들과 소통하는 청년들, 바로 아리랑 유랑단입니다. 저는 왜 아리랑 유랑단을 만들었을까요?그리고 왜 아리랑이었을까요? 또 세계일주 경비는 어디서 났을까요? 좌충우돌 아리랑 유랑단의 이야기! 여러분에게 그 전말을 밝히겠습니다.


게시일: 2014. 3. 24.



[한국어]


(박수)

♪ (연주) ♪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 주소 ♪

♪ 문경새재에 물박달나무 ♪

♪ 홍두깨방망이로 다나가네 ♪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 주소 ♪

(밀양 아리랑)

♪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

♪ 동지 섣달 꽃본듯이 날좀보소 ♪

♪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

♪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

♪ 정든님이 오셨는데 인사를 못해 ♪

♪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 ♪

♪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

♪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

♪ (연주)♪

(박수)

네, 여러분 어떻게 재미있게 잘 보셨나요?

(네)

우선 제 소개부터 드리고 시작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아리랑 유랑단 단장이자 한국문화 기획꾼

문현우 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박수)

예, 사실 제가 단장이긴 하지만 음악적인 재능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중요한 역할이 한 가지 있는데요

바로 가야금 들고 다니기

(웃음)

장구 매기

저의 특기입니다

제가 없으면 또 이 친구들이 음악을 하지 못하겠지요

이렇게 평범한 대학생이 아리랑을 알리러 세계일주를 떠나기 위해

기업에 1억이라는 큰 돈을 후원을 받았던 과정들을 여러분들에게 자세히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아리랑을 알린다고 했을 때

많은 분들이 저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첫 번째 "매일 아리랑을 듣나요?"

아니요, 저는 힙합, 인디 음악을 더 좋아합니다

두 번째 질문 "그럼 평소에 국악 공연을 많이 보나요?"

아니요, 저는 락 페스티벌을 더 좋아합니다

(웃음)

굉장히 경박하죠?

(웃음)

세 번째 "평소 한복을 자주 입나요?"

라고 많이들 질문을 하시는데요

지금 세계일주를 하면서 처음으로 한복을 즐겨입기 시작했고

한복의 미를 알고 나서 부터

이제는 여자 한복까지도 섭렵하고 있습니다

(웃음)

이렇게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했을 때

많은 분들이 공통적으로 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그럼 도대체 네가 왜 아리랑을 알려야 해?"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제 삶 속에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면 좀 수긍이 가실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들을 여러분들께 공개하고자 합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말레이시아'라는 나라로 조기 유학을 떠나게 됐는데요

이제 열 살짜리 밖에 되지 않았던 꼬맹이였습니다

한국어를 배운지도 10년 밖에 되지 않았던 꼬맹이가

말레이시아라는 나라로 떠나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니

그것은 마치 옹알이처럼 영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시간이 흘러서

향수병이라는 병에 걸리게 되었고

향수병을 앓고 있던 때 마침 저에게 하나의 희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바로 축구 국가 대표팀이 말레이시아로 원정 경기를 온다는 소식을 들었죠

재외동포들은 하나같이 응원을 하러 모였구요

저 또한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당시 재외 동포들은 하나가 되어서 아리랑을 응원가로 불렀습니다

저의 3년 동안의 조기 유학 시절 그 때 들었던 아리랑이

저의 향수병을 극복할 수 있었던 하나의 좋은 사례였습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나서 저는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슬픈 소식을 눈 앞에서 보았죠

바로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부모님의 이혼을 눈 앞에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쫓겨나듯이 1평 남짓한 고시원 방에서 살게 되었죠

그런데 인기 가요를 참 좋아했었는데요

노래를 좀 따라 불렀던 적이 있어요

근데 옆 방에서 노크를 하더라구요

문을 열어보니까 고시생이 저에게

"이 곳이 너의 집이냐? 여기는 내가 고시 공부하는 방이야"

"그러니까 좀 조용히 해" 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벙어리처럼 고시원방 생활을 했습니다

근데 저에게 해방구가 하나 있었는데요

2000년, 바로 붉은악마 가입이었습니다

광화문에서 길거리 응원을 한다고 해서 제가 그 곳에 나가게 됐는데요

20명 남짓한 붉은악마가 있더라구요

지금은 수 만명이 모여서 응원을 하지만

그 당시 20명이 모여서 응원을 했거든요

그래서 저희를 보고 다니는 직장인들, 그리고 어르신들이

혀를 끌끌 차면서 갔습니다

근데 불과 2년 뒤에 무슨 일이 있었죠?

수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오히려 그 곳에 가지 않는 사람들을 보고

"야, 미친거 아냐?" 라는 말을 할 역전의 시간이 왔었죠

그렇게 시간이 흘러 흘렀습니다

그리고 2011년, 제가 어느 덧 청년으로 자랐을 때

슬픈 뉴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바로 중국의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아리랑을 빼앗길 위기에 처해 있다는 소식이었죠

근데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라는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 그럼 나는 아리랑을 세계일주를 하면서 알려보자"

정말 뜬 구름 잡는 이야기였죠

저에겐 돈도 없었고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꿈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단원들을 모집하려고 하는데

제가 국악 전공자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그냥 관광을 전공하는 전공자로서

'어떤 방법이 있을까?

'그래, 전국에 있는 국악과에 한번 연락을 해보자'

그래서 국악과 리스트를 뽑아서 다짜고짜 연락을 했습니다

다행히도 서울대 국악과에서 저에게 두 명의 귀한 재원을 추천해 주셨구요

그래서 판소리와 대금을 하는 친구가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진 하단 중앙에 보이는 방금 서예를 했던 친구가

저희 학교, 제가 경기대학교인데요 경기대학교 신문에

'우리학교 스타'라고 해서 나오더라구요

'해를 품은 달' '뿌리 깊은 나무'에서 여자 서예 대필은 다 이 친구가 맡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함께 하자!" 한 12번 연락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같이 공연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가 같은 팀이 되었구요

그렇게 해서 이 여섯 명의 단원을 모았습니다

근데 이제 문제는 바로 돈이었죠

근데 저에게는 귀한 인연이 하나 있었는데요

바로 카페베네 해외 청년 봉사단이었습니다

전 눈에 보이는 열정을 보여주기 위해서 발품 정신을 팔았습니다

바로 티셔츠를 한 장 만들어서 카페베네 20군데를 돌게 됩니다

그래서 다짜고짜 또 아르바이트생한테

"제가 해외 청년 봉사단 가고 싶은데"

"여기 응원 메세지 좀 써 주실 수 있겠습니까?" 했더니 다들 흔쾌히 써주셨고

어느덧 제 티셔츠 가득 응원 메세지로 채워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결과적으로 저는 이 프로그램에 합격을 하였고

결과가 600:1을 뚫었습니다

(박수)

바로 제가 했던 것은 눈에 보이는 열정 바로 '발품 정신'이었습니다

그거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제가 해외 청년 봉사단을 무사히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홍보대사 활동도 열심히 하고 계속 인연을 이어갔는데요

저의 활동상을 보시고 MBC에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겠다고 의뢰가 왔습니다

그리고 너가 카페베네 활동을 많이 했으니

그 대표님을 만나서 인터뷰하는 장면을 넣어 보자고 하시더라구요

대표님은 제가 오기 전에 아리랑에 대한 질문들을 이미 봤기 떄문에

다짜고짜 저한테 아리랑에 대한 질문만 던지시는 거에요

그래서 저도 진정성 있게 제 이야기들을 해드렸죠

근데 제게 저기 멀리 하얀 빛이 보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MBC 카메라였는데요

'지금 내가 후원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용기내어 말씀드렸습니다

"저기 혹시 대표님 저를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근데 대표님께서 거기서 "안 돼!" 라고 할 수 없죠

대표님은 바로 마케팅 이사님을 불러오시더니 한 말씀 하셨습니다

"이 친구 문제 없이 지원해 줘"

네, 감사합니다

(박수)

그래서 저는 1억이라는 큰 돈을 후원받고 세계일주를 떠났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녀 온 곳은 15개국 29개 도시였구요

많은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아리랑 콘서트와 스쿨을 보여주고

문화 외교활동, 문화 소통활동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이 장면은 제가 독일에 갔을 때 파독 간호사 분들의 장면입니다

저희가 정선 아리랑을 불러 드렸을 때 이 분들은 바로 눈물을 흘리셨고

우리가 신나는 진도 아리랑을 불러 드렸을 때는

정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춤사위를 보여주셨습니다

이 분들의 표정과 춤사위를 보면서

제가 앞으로 나아가야 될, 제가 힘을 내서 고개를 넘어야 될 이유를 찾았습니다

이 장면은 제가 아르헨티나에 갔을 때인데요

저의 꿈을 발견한 장면입니다

저희가 아르헨티나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재외동포 2세들이었습니다

저희에게 밤낮 할 것 없이 찾아와서

우리한테 장구를 좀 가르쳐 줄 수 없냐고 계속 요청을 해오셨습니다

장구를 치고 싶은데 장구가 없어서 박스로 연습을 했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한국 문화를 지키려는 이들의 열정을 보고

제가 이 아리랑 유랑단, 아리랑 세계일주가 단순히 프로젝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문화적인 혜택을 잘 받지 못한 그런 분들과 재외동포 분들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그런 꿈이 생겼습니다

여기까지 들으셨을 때 좀 이해는 되시나요? (네)

얘가 왜 아리랑을 알리고 있는지 좀 이해가 되시죠?

좀 더 명확하게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말레이시아에 갔을 때

영어를 처음 배워서 옹알이처럼 하고 향수병을 앓았을 때

저에게 힘이 되었던 건 바로 아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고시원방에 살 때

저에게 타박을 주었던 고시생으로 인해 벙어리가 되었던 것도

붉은악마 활동을 하면서 아리랑 응원가를 부르고 힘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제가 아리랑을 알리러 세계일주의 고개를 넘었고

그 곳에서 아리랑을 부르면서 힘을 드리는

그리고 그 아리랑을 불렀던 것들이 다시 메아리가 되어서 저에게 꿈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세 가지의 단어

뭔가 유추가 되시나요?

바로 아리랑의 어원입니다

아리랑은 제 삶이었고, 또 제가 앞으로도 넘어야 될 고개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고개 고개를 넘어서

저는 아리랑을 알리고 이렇게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넘었던 이 고개들을 이제 여러분들도 넘으셔야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청년들이 지금 눈 앞에 맞닥뜨린 수많은 고개들

제가 넘었던 힘찬 발걸음 처럼 고개 고개 멋지게 넘으셔서

부디 원하시는 꿈 꼭 이루시길 바라겠습니다

여기까지 아리랑 유랑단 문현우였습니다


한글자막 : 문선영 (giraconme@daum.net) 

한글검수 : 최두옥 (dooook@gmail.com)


이 글은 청각을 잃은 제 친구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전체 또는 일부가 잘못듣고 잘못 옮겨적은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해당글에 댓글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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