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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감과 자존감 | 김찬호 성공회대 교수, '모멸감' 저자 | 세바시 553회


강연 소개 : 일상의 상당 부분은 타인과의 관계로 구성됩니다. 우리는 거기에서 여러 가지 감정들을 경험하는데요. 최근 갑을관계와 감정노동이라는 이슈가 부각되면서 모멸감에 대한 담론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왜 타인을 모욕하고 경멸하는 것일까요. 그런 대접을 받을 때 우리에겐 어떤 반응이 일어날까요. 그리고 그러한 적대적 관계를 넘어서 인격과 품위를 지키는 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여러분과 마음의 문법을 풀이하면서 사람됨의 근본을 되묻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게시일: 2015. 4. 21.




(환호와 박수)

여러분은 동물원에 가끔 가시나요?

(예)

외국의 어떤 동물원에 몇 몇 이런 재미있는 디자인이 있다고 합니다

동물들이 쭉 전시되어 있고

끝 부분의 어딘가에

뭔가 이렇게 문을 열면 들여다 볼 수 있는 그런 코넙니다

사람들이 뭔가 조그만 색다른 동물이 있을까 싶어서 열어보면

놀랍게도 동물이 있지 않고 거기에 거울이 있답니다

거울 속에 자기 모습을 보게 돼 있는 그런 장치입니다

이 뭔가 장난일까요? 

메세지가 있습니다

그 거울 밑에 문구가 하나 써 있습니다 

제가 일부로 빈칸을 남겨놨는데 

'세상에서 가장 어떤 동물'이라는 설명으로 인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동물원에서 객관적으로 동물학적으로, 또는 인문학적으로

인간이라는 동물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여기에 어떤 단어를 집어 넣으시겠어요?

호기심 많은 동물, 또?

희귀한 동물, 또?

잔인한 동물 또? 이게 뭐 자기의 반영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지요

(웃음)

사실 여기에 모든 말이 다 들어가도 괜찮습니다

인간은 가장 다양하기도 하고 가장 위대하기도 하고

착하기도 하고 뭐 여러가지 다 넣을 수 있는데요

이 동물원에는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가장 위험한 동물'

동의가 되십니까?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 위험함을 느끼십니까?

근데, 인간이 가장 위험하다고 할때 또는 잔인하다고 할때

그 무기가 뭘까요? 즉 필살기

우리 몸에서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죽음으로까지 몰아가는 가장 확실한 그런 신체 부위가 어디일까요?

예, 역시 '입' 입니다


인간의 입은 재미있어요

포유류 가운데 인간만큼 이렇게 큰 얼굴을 가진 동물이 없습니다

뇌가 커서 그렇기도 하지요

그런데 재미있게도 입은 유난히 작습니다

우리끼리 매일 봐서 익숙해서 그렇지요?

집에 가서 한 번 강아지하고 같이 거울 앞에서 입을 쫙 벌려보세요

강아지가 훨씬 큽니다

몸집에 비해서 인간은 입이 훨씬 작아요

입의 기능은 먹는 것 물어뜯는 것

또 뭔가 말하는 것 으르렁 거리거나

이 3 가지지 않습니까?

인간은 무기로서의 입을 좀 포기하고

대신 언어소통의 도구로 발달시켰어요

입이 작은 건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악어가 말한다고 생각하면 좀 깝깝하죠? 

입이 작을수록 다양한 발음을 빨리빨리 낼 수가 있습니다 

근데 그 바로 입으로 다른 사람들을 무척 고통스럽게 합니다 


인간은 어느 동물보다도 정신적 고통이 많은 동물입니다 

강아지한테 정신적 고통을 줄 수 있어요? 

때리지 않고 밥 안 주지 않구요 육체적으로 학대하지 않고 그냥 

뭐 째려본다거나 뒷담화를 한다거나 절대 개 고통 않받지요 

근데 인간은 아주 사소한 것으로 별거 아닌 걸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을 딱 정해 놓구요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오로지 입만 가지고 

심지어 그 사람 없는대서 말을 이렇게 저렇게 함으로써 

그 사람을 무척 힘들게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이런 식의 감정을 갖게 되지요 

이 디자인은 제 책의 표지입니다 

제 책을 쫙 펼치면 

모멸감의 그 책의 표지가

한 사람은 모멸감을 주는 거고 한 사람은 받는 건데요

사람이 무시당할 때 뭔가 비하될 때

물건 취급당할 때 투명인간처럼 여겨질 때

그 때 모욕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은근히 경멸할 때 문자메세지를 무시할 때

답이 돌아오지 않을 때 말하기는 모하고

그냥 잠을 자기에는 잠이 오지 않는 그런 상황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게 다 모멸감의 종류라고 할 수 있겠지요?

우리는 가끔 이런 모습으로 자화상을 그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 얼굴 표정을 감추고 싶을 때가 있어요

내 스스로도 거울을 직시하고 싶지 않을 만큼 괴로운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자신 안에 마음 속에 움직이는 감정의 흐름들을 포착하기 싫은

도저히 직면하기 어려운 그런 상황들이 있습니다

근데 칼 융이 이런 말을 했어요

의식되지 않은 무의식은 운명이 된다

전 여기에 무의식 대신에 감정이라는 말을 넣고 싶습니다

의식되지 않은 감정은 운명이 된다

최근에 들어와서 우리 사회에서도 감정에 대한 많은 논의들이 있습니다

성찰의 한 영역으로 자리잡아가는 것 같애요

근데 여러분이 살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은 뭘까요?

동물까지 공유되는 가장 기본 감정 가운데 하나가 뭔가

바로 '두려움' 입니다

여기 재미있는 책 하나가 있습니다

영어 제목 그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The Fear of Insignificance

카를로 스트렝거라는 실존 심리학자가 쓴 책인데

'인시그니피컨스'

'시그니피컨트'라는 것은 중요하다는 거죠?

in(인)이라는 부정사가 붙었으니까 중요하지 않다 별 볼일 없다 시시하다

별 볼일 없음에 대한 두려움

이게 굉장히 우리시대에 지배적인 정서라는 겁니다

이 디자인도 재미있지요?

누군가를 위해서 우산을 받쳐주고 있습니다만

자기는 비를 맞아야 되요

철저한 위계속에서 거의 신분제와 같은 그런 상하 관계속에서 살아가는

뭐 갑질이다 이런 것도 여기에 적용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다른 사람이 나를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시시한 사람으로 못난 사람으로 취급 할까봐 두려워하는 이게 크다는 겁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말씀 들으면 '정말 아 그렇구나' 동의하실 것 같아요 

근데 이 책에서 재미있게 분석하는 건 

이게 점점 더 글로벌 해질수록 정보가 많아 질수록 

이 두려움이 증폭된다는 거죠 

왜냐하면 

여러분 보세요 정보가 많아지면 뭐가 많아질까요? 

욕망이 많아집니다 그 다음에 기대 수준이 높아집니다 

왠만큼 잘나서는 잘났다고 인정을 안해요 

인터넷 열어보세요 

세상의 얼짱들 다 있구요 억대 연봉 넘쳐납니다 

왠만큼 잘났다고 해서 잘날 수가 없습니다 

또 특히 한국사회 같이 급격하게 산업화 된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의미있는 관계들을 그야말로 시그니피컨트한 관계를 맺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자기가 중요하다는 중요하고 싶은 그런 확인은 많이 받고싶은 겁니다 

특히 전통적인 신분 관념 양반 상민 이런거 많이 따졌죠? 

적서 차별 심했죠? 똑같은 양반 자녀라 할지라도 

서자는 데게 서러웠어요 

우린 정말 철저하게 위 아래 귀하다 천하다 이걸 나눴습니다

이게 그대로 남아있어서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어디가든 자기가 저 사람보다 우위에 있는지 

중요한지 재대로 대접 받는지 데게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데게 갑질하는 사람들이 그 곳에 중요성을 많이 부여하죠 

자기가 이 정도 받아야 되는 기대치의 대접을 못 받으면 

사람들은 화를 냅니다 

우리 사회에서 많이 듣는 말이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말하죠? 바로 이겁니다 

해보신 분 별로 없을 꺼에요 들어보신 분이 많이 계실 겁니다

지체 높으신 분들이 굉장히 신경질적으로 내가 누군질 알아? 이렇게 화를 냅니다

근데요 여러분 이런 말을 들을 때 마다 잘 분별하셔야 됩니다

이걸 해석을 잘 하셔야 해요

왜 이렇게 말하는지 아세요?

자기가 누군지 모르니까 물어보는 겁니다

(웃음)


정말 그렇잖아요 내가 누군지 아냐고

알려달라고

절박한 실존의 절규에요 

자아의 감각이 희미하기 때문에 

내가 누군지 스스로 확인하기 어려운 그런 상황에 있는거죠 

그럴수록 주변 사람으로부터 인정 받아야 되고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하느냐 

그게 자기 자신의 전부에요 

한마디로 정체성의 혼란 정도가 아니라 부재지요 

내가 누군지 스스로 규정할 수가 없는 겁니다 


이게 바로 자아감이 희박해지는건데 

여러분은 자기가 살아있다고 이른바 존재감이라는 것을 언제 느끼세요?

어릴때부터 잘 논 친구들은요 

자연속에서 뛰어놀고 

여러가지 경험을 하고 그 다음에 다양한 사람과 관계를 맺고 

그런 사람들은 자아감이 있어요 

이걸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스스로 확신하는 거지요 

어디다 주장하고 내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충족하게 느끼면 되는 거에요 

이런 자아감이 없이 크는 아이들이 정말 많아지고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자아감이 없을 때 

오늘 주제인 자존감도 없는 겁니다 


자존감은 일종의 모욕이 많이 있는 사회에서 면역제 같은 겁니다 

자존감이 튼튼한 사람들은 

왠만한 그런 불행한 상황도 쉽게 견딘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하구요 

공부를 잘하고 돈이 많아도 자존감이 없으면 

엉뚱한 데서 흔들리고 별거 아닌 거에서 좌절합니다 

요즘 회복 탄력성 이런 얘기 많이 하지요 


근데 이런 자존감은 두 가지 큰 내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가 성취감이라고 전 얘기해 보고 싶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딱 20년 전에 

1995년 고베 대지진이 있었습니다 


그 1년 뒤에 제가 그 옆 동네에서 살았어요 

그래서 그때 고베 지진때 일어났던 일들을 많이 에피소드로 듣게 되었는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한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당시에 자원봉사자들을 관리했던 일을 했던 사람이 

어느 강연에서 이런 말을 해요 

고베 지진 났을 때 이번 3일 때도 비슷했는데 

일본이 깜짝 놀랐습니다 


전국에서 엄청난 젊은이들이 자원봉사하겠다고 맨몸으로 달려왔어요 

아무 보상도 물론 바라지 않구요 

굉장히 이기적으로 자기 안에 갖혀있는 그런 신 인류라고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일에 손수 나설 수 있을까? 

뭐 그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근데 그렇게 자원봉사하겠다고 뛰어왔던 청년가운데 한 명이 어떤 경우였냐면 

그날 자살할려고 딱 마음먹고 모든 걸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일 년에 하루에 일본에선 100명이 자살합니다 

우리나라가 43명 정도가 죽는데요 엄청난 자살자죠 

그 중에 한 명이었던 거죠 잘못하면 

근데 자살할려고 인제 딱 준비하고 아침에 일어났는데 

지진이 터진 겁니다 

자살을 포기하고 뛰어온거죠 

왜 왔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자기가 사회적으로 쓰임받는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어딘가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바로 존재감이 생긴거죠 

살아갈 이유가 있는 겁니다 


근데 성취감을 여러분 어디서 느끼십니까? 

학교다니면서 그렇게 공부를 많이하고 

직장생활 열심히 하면서 밤 늦게까지 야근 많이 하는데 

왜 성취감을 못 느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안에 배움과 성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외형적 지표로서 숫자만 있을 뿐입니다 

성적 그리고 성과 

집에서 아이들을 평가하는게 성적이고 

남편을 보는게 월급이잖아요 

그런데 이 세상에 오르지 않는 두 가지가 

아이의 성적과 남편의 월급이라고 하거든요 

성적의 함정은 뭘까요? 

중간고사도 80점 기말고사도 80점 공부 한 겁니까? 안 한 겁니까? 

한 겁니다 

중간고사도 10등 기말고사도 10등 공부 한 거에요? 안 한 거에요? 

한 거에요 그런데도 숫자는 똑같기 때문에 

계속 무력감에 빠집니다 

난 맨날 그 모양 그 꼴이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렇게 상대적인 평가가 아니라 

내 스스로 확신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어야지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다는 향상되고 있다는

고양되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 있을 때 우리는 성취감을 느낍니다

거기에서 자존감이 자라납니다



또 하나의 축은 유대감입니다

제가 어느 노인복지센터 관장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노인복지센터에 매일 오시는 어느 할아버지가 계시는데

꼭 집에 가시면 밤 늦게 전화를 하신데요

그 날 있었던 많은 일들 가운데 

불평 불만 그런 걸 막 털어놓는다는 겁니다 

근데 그게 왜 그렇게 될까요? 

가만히 보니까 이분은 별로 문제가 없는 분이에요 

근데도 불평 불만을 털어놓는 이유는 

그만큼 자기가 하루에 쌓인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러는 겁니다 

근데 이분이 어느 날 

그것 갖고도 안됬는지 와서 막 노발대발 난리를 치는거에요 

안되서 112 전화까지 해서 막 경찰을 불렀데요 

경찰이 와서 보니까 별거 아니거든요 

그래서 일단 모셔가야 되겠다해서 이렇게 경찰서에 실어서 데려가는데 

관장님이 보시기에 평소에 알던 분인데 안됐거든요 

그래서 할아버지에게 물어봤답니다 

할아버지 왜 그러셨어요? 그러니까 

이 할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 외로워서 그랬어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바로 이렇게 누군가와 의미있게 연결되지 못할 때

우리는 그것을 감정적으로 엉뚱하게 내뿜는

이런 공격성으로 드러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와 의미있는 관계를 맺습니까?

바로 여기에서 안정한 관계가 필요한 거지요

오늘 여러분이 이 자리에 모여서 나눈 이 많은 순간들

배움의 커뮤니케이션 이런 것이 전 유대감의 한가지 차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그런 것을 어떻게 이룰까요?


성취감과 유대감을 이루는 그런 영역은 어디일까요?

우린 대체로 이렇게 삽니다

사적 세계와 일터 왔다갔다 하지요

이 두 영역에서 우리는 피곤함을 많이 느낍니다 안락함 보다도요 

오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또 하나의 영역은 

바로 이걸 넘어서는 제 3의 공간이라는 거지요 

잘 모르는 사람 낯선 사람들이 모여서 새로운 일을 기획하는

그리고 의외의 것을 경험하는 그런 자리라고 저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기서 낯선 사람들 이것이 중요하다가 생각합니다


한가지 지난 주에 제가 겪었던 일을 말씀드릴께요

제가 놀이터에 이렇게 지나가는데

어떤 아이들이 공놀이 하다가 공이 이렇게 넘어왔어요 저한테

당연히 차줬죠 근데 재미있게도 그 공이 정확하게 그 애한테 갔어요

전 축구 잘하지도 못하는데 운이 좋았던 거죠 

딱 정확하게 갔습니다 

이걸 축구 전문용어로 '자로 잰 듯한 패스다'라고 설명하는데

이건 하나의 성취감인데 감동이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옆에서 놀던 다른 친구가 자전거 타고 이렇게 오는데

전혀 다른 그룹이었어요

개가 갑자기 자전거를 딱 멈추더니 그 장면을 보고

오~ (박수)

(웃음)

전 정말 그때 온 몸에 전율이 일어나는 것 같았어요 

그 아이 참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만약에 그 아이가 제 아들이었으면 그런 감동이 없었겠지요 

저는 이 제 3의 공간이라는게 

사적세계에 비해서는 열려있고 더 다양한 사람이 만나구요 

일터에 비해서는 좀 더 자유롭고 표현이 되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모인 이 자리가 이런 만남이 

전 새로운 우리의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톨 스토이의 이 말 한 마디 좀 나누고자 합니다

자기를 극복한 사람만이 

남을 비난하지 않는다

극복 극기라고 합니다만

극기훈련 이런게 아니라 자기를 넘어선 겁니다

우리가 보통 자존감 그러면 개인적 차원에서 많이 얘기하는데

저는 오히려 사회적인 차원에서

집단 히스테리 집단적 피해의식 컴플렉스가 있듯이

사회적인 차원에서 자존감이 있는 겁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책임을 지고 돌보는가?

거기에서 자존감의 새로운 틈이 열린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 여기서 나눈 우리들의 느낌 이런 공간 이것이 

우리 삶과 사회를 바꿔가는 새로운 씨앗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한글자막 : 최광효 (jesuslovr0515@gmail.com)







이 글은 청각을 잃은 제 친구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전체 또는 일부가 잘못듣고 잘못 옮겨적은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해당글에 댓글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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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감
국내도서
저자 : 김찬호
출판 : 문학과지성사 2014.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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