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크 볼튼은 나 때문에 온 거야. 난 세계적인 가수가 될 거야.
- 편지를 하나 달랑 써놓고, 짐을 싸가지고 공항에서 그 친구들한테 '나 지금 공항이야 뉴욕가'
- 완전히 정말 노래에 미쳐 있었죠.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가수 소향입니다.
아 근데 혹시 제가 누군지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이 짤을 잠깐 보여드릴까 합니다.
애국가를 부르려다가 제가 키를 너무 높이 잡는 바람에 '에라 모르겠다' 하고 불러버린 게 아마도 많은 분들에게 각인이 된 것 같아요. 좀 생각이 나셨나요?
저는 이제 20살에 CCM 그러니까 컨텀플 퀘스션 뮤직이라는 음악 장르에서 가수로 활동을 시작을 했습니다.
데뷔 때는 잘 몰랐어요. 제가 어느 정도의 실력인지 처음 나가본 거니까.
근데 어느 순간부터 아까 들으신 것처럼 그냥 고음이 쭉쭉 올라가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들으시고 많은 분들이 신기하다 해 주시니까.
'아 ~내가 노래를 좀 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점점 제 안에서 '더 잘해봐야지 더 해봐야지' 하는 욕심이 막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쉬지 않고 연습을 했죠.
뭐 지방을 가건 해외를 가건 뭐 어디를 가도 그냥 일어나면 뒤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 게 제 삶이었어요.
제 삶이 노래였고, 노래가 곧 제 삶일 만큼, 완전히 정말 노래에 미쳐 있었죠.
제가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아마도 여러분들이 기억하시듯이 나는 가수다 2라는 프로그램이었어요.
그때 진짜 많이 떨었어요.
가요라는 장르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또 그런 경연 무대도 처음이어서, 그래서 더 제가 이렇게 떨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막 진짜 최선을 다했어요. 정말 막
온 힘을 다해서 불렀는데, 제가 생각했던 그런 그 노래의 전달력이라는 부분이 많은 분들이 느끼기에는 뭔가 이렇게 공감대가 형성이 안 됐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때 댓글을 보면 '감정이 없다. 가사의 의미가 잘 전달이 안 된다. 소리만 지른다.'
이런 얘기들을 되게 좀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나는 그동안 내가 엄청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평가를 받는 게 되게 얼떨떨하고 약간 무섭기도 하고
다른 가수분들이 거기 나오시잖아요.
그 가수분들을 보면서 나도 좀 배워야겠다.
근데 그분들에게서 느껴지는 어떤 되게 어떤 감성적인 부분들을 과연 어떻게 노래할까?
개인적으로 물어보기도 하고 조언도 구하기도 하고 막 그랬거든요.
근데 그게 어쩌면 저의 어떤 가수로서의 입문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음 무대가 이제 불후의 명곡이라는 프로그램 아시죠?
마이클 보튼이 한국에 오셔가지고 전설이 되셔가지고 했던 경연 프로그램인데 그때 제가 리원미라는 노래를 불렀어요.
사실 진짜 그때 노래할 때 '목숨을 걸었다'라는 표현이 맞다고 할 만큼 노래 한 마디 한 소절을 어떻게 표현할까 어떻게 계획을 짜서 할까 그래서 각각 가삿 말, 그 멜로디 한 부분 한 부분에 거기에 맞는 이미지를 부여하고 그걸 녹음을 해서 그걸 정말 제 몸이 기억할 때까지 진짜 수백 번 연습을 해서 입에 붙였거든요.
툭 쳐도 이렇게 나올 수 있게끔, 그렇게 노래를 연습을 했었던 것 같아요.
왜 그렇게 목숨을 걸었냐면, 저를 세계적인 무대로 이끌어줄 거라고 굉장한 확신이 했었어요.
마이클 볼트는 나 때문에 온 거야. 난 세계적인 가수가 될 거야
아마 근데 결국 아니나 다를까 목숨 걸고 했으니 1등을 했죠.
그래서 마이클 오라버님이랑 이 콘서트에서 티엣도 하고 듀엣을 해보고 나니까
이제 마이클 오라버님이 월드투어 제안도 받고 나도 뭔가 더 크게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뭔가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이런 마음이 막 생기더라고요.
그러니까 그전에 있었던 제 마음의 어떤 욕망보다 더 이렇게 커지는 계기가 됐었던 거죠.
근데 그 뒤로 이제 계속 이제 불후의 명곡 무대들이 이제 이어지는데 진짜 신났었어요.
홀로아리라 트라블 워 같은 그 노래들을 이제 편곡하고,
그전에 생각하지 못했었던 발성 호흡법 기교들을 이제 막
예를 들자면 아리랑 아리랑 하면서 이렇게 노래를 할 때 지금 이 아리랑 부분 같은 경우는 아예 바운스가 없게 정말 어린아이가 부르는 것처럼 했다가 나중에 성숙한 이미지로 갔다가 막 이렇게 그 기교를 막 생각하면서
'반드시 내가 원하는 것을 해내고야 말 거야. 난 할 수 있어.'
그래서 약간 폭주하는 앞만 보고 달려가는 약간 레이싱카 같은 그런 상태가 됐었던 것 같아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무대에만 서면 완벽하게 노래를 부를 수 있다라고 생각했던,
레이싱 카라고 생각했던 그 차에 어느 날 문제가 생깁니다.
저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고음의 문제가 생겼다는 걸 제가 알았거든요.
폐렴 진단을 받은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는 이제 뭐 별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그냥 금방 낫거든요. 근데 이게 계속 반복이 됐어요.
그래서 한 3~4년 동안 한 8번 정도가 반복이 되더라고요.
처음에 잘 났던 게 나중에는 그 낫는 기간도 점점 더 길어지고,
그러니까 이제 뭐 성대가 이게 제가 그전에 생각했던 그대로 이렇게 움직여지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제 성대를 컨트롤하는 게 힘이 너무 들고,
그러니까 이제 그 무대에서 항상 자신감 있었던 진짜 난 이만큼 하는 '소향'이야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그게 갑자기 안 되니까 이게 두려움 이 공포가 이루 말할 수가 없더라고요.
제 목 상태 때문에 고음 내기도 힘들고 막, 그전에 안 했던 실수 막 긴장을 하니까 막 실수를 하게 되는데,
'내가 '소향'인데 이래도 되는 건가?'
정말 비참했던 마음이었다라는 게 그게 맞는 표현인 것 같아요.
그냥 하지 말까 그만둘까 하는 생각이 막 제안에 막 매번 밀려왔다가 나갔다가 밀려왔다가 막 그렇게 막 왔다 갔다 하더라고요.
언제나 이렇게 완벽한 나를 보여주는 소향이었는데 어떻게 이 지경이 되고 말았지?
어디라도 도망치고 싶었어요.
그래서 진짜 도망을 갔어요.
편지를 하나 달랑 써놓고, 짐을 싸가지고 뉴욕으로 그냥 훌쩍 갔어요.
그래서 공항에서 그 친구들한테 '나 지금 공항이야 뉴욕 가' 이러면서 그래서 그냥 실컷 여행이나 해보자.
보스턴도 가고 필라델피아도 가고 막 다니는데,
이제 그 필라델피아를 가는데 어떤 한 공사장에 루스벨트 대통령이 했던 말이 현수막에 써져 있는 거예요.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이다.
근데 그 말을 이렇게 딱 보는데 약간 그림이 그려지는 것처럼
내가 만약에 이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면 하지 않는다면,
내가 5년 후 10년 후에 내가 얼마나 후회를 하게 될까?
마치 그 후회하고 있는 듯한 내 모습을 이렇게 보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다시 결심을 한 거죠.
그래 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다시 돌아가자.
그래서 제일 처음에 들어오는 스케줄을 한번 해보자. 그랬는데 그게 바로 복면 가왕이었어요.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죠. 여전히 진짜 그래도 여전히 두려웠죠.
컨디션이 안 좋으면 어떡하지? 망신살 뻗치면 어떡하지?
막 이런 생각들로 막 이렇게 진짜 이렇게 정말 두려움을 이렇게 가지고서 그 무대에 임했던 것 같아요.
사실 이제 제가 그전에 불후의 명곡이나 나가수를 할 때 수백 번 연습을 하고 나가거든요.
그렇게 연습을 해도 사실 목이 쉬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연습을 할 수 있었어요.
근데 그때 복면가왕 때는 몇 번만 연습을 해도 목이 안 좋아지는 거예요.
사람들이 이렇게 댓글에 저한테 이제 좀 좀 '예전 소향이 아니네' 이렇게 생각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그전보다 부족한 부분이 되게 많았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좋은 말씀들을 저한테 해주시는 거예요.
거기에서 현장에서 들으시는 분들 중에 이제 그분들이 제가 노래를 부르는데, 뭔가 다른 사람이 부르는 것 같다 이런 얘기들을 해주셔서 그래서 되게 굉장히 좀 놀랍고 생소했죠. 그런 반응들이
그래서 저는 정신을 차리고 그때 왜 그럴까?라는 그런 생각을 해보면서,
'내 안에 있는 두려움의 실체가 무엇일까?'라고 이제 곰곰이 생각을 해봤어요.
'난 정확히 뭘 두려워하는 걸까? 뭐 때문에 내가 두려워하는 거지?'
가만히 들여다보니까 제 두려움은 내가 노래를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에서 오는 게 아니고요.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어떡하지? 나 소향인데? 나 고음의 여왕인데? 쟤 이제 끝났구나. 하는 그런 사람들의 시선,
평판에 대한 두려움. 그런 것들이 저를 이렇게 사로잡고 있었던 거예요.
사람이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는 건데. 100점 맞았다가 90점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1등 하다가 2등 아니면 10등으로 떨어질 수도 있잖아요.
근데 저는 항상 100점이었던 제 평판이 90점으로 내려갈까 봐. 이렇게 덜덜덜덜덜덜 떨고 있었던 거예요.
한마디로 저는 그 감정이 되게 창피했어요. 부끄러웠어요.
'나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내가 지금 노래를 왜 하고 있지? 내가 이 목소리를 왜 뭐 때문에 사용하고 있지? 가수가 뭐 하는 사람이지?'
하는 질문을 제 안에 스스로 해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어떻게 보면 이제 다른 데서도 찾을 수 있었겠지만 비기너겐이라는 프로그램이 저한테는 그 답을 찾는 과정 중에 하나였던 것 같아요.
코로나로 지친 한국분들을 위해서 '버스킹'을 하자
그럼 위로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제 버스킹을 해보자 이렇게 기획이 들어갔더라고요.
진짜 좋은 취지였어요.
사실 버스킹이라는 시도가 너무 재밌어 보였고 해보고 싶었고,
그와 동시에 이 노래들로 사람들한테 위로를 해준다는 그런 컨셉이 진짜 좋았거든요.
근데 문제는 이제 제 목 상태였어요.
그전에 한 100을 냈었다면 비긴 어게인 때는 진짜 겨우 한 30 그 정도의 소리만 낼 수 있는 상태였었어요.
그래서 막 진짜 항상 고온만 보여주고 막 진짜 막 확 이렇게 질러서 사람들한테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그런,
그런 걸 전혀 할 수가 없는 그런 때였거든요.
그래서 망했다. 진짜 되게 많이 울었어요. 사실은
근데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내려놔라 그냥 위로를 준다는 마음으로 그냥 내려놓고 해 봐라."
기교도 많이 없고, 고음도 뭐 별로 낼 수 없는 그냥 제가 그냥 딱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지만 되게 간절하게 불렀어요.
근데 이상하게도 그때 뭐가 전달되었는지는 몰라도 그분들이 위로를 받았대요.
죽고 싶었는데, 오늘 하루 또 버텨본대요.
그분들의 말 그분들의 마음이 저를 많이 위로해 줬어요.
그분들을 위로한 게 과연 뭐였을까 난 분명 그전 같지 않았을 텐데 그때 깨달았어요.
아픔을 가져본 자만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이게 재산이구나
다른 가수분들이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는 노래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분들이 그마만큼 아픔의 시간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때 진짜 깨달았거든요.
'아~ 나의 힘든 마음이 사람들의 힘든 마음과 함께 걷게 되는 거였구나.'
그리고 제가 노래하는 이유에 대한 답을 찾았어요.
저는 한때 최고의 실력을 뽐내면서 전력 질주하는 레이싱카가 되고 싶었어요.
세계적으로 빛나는 이제 제가 진짜 원하는 소향이라는 가수는
덜덜거려도 천천히 가도 더 많은 사람들을 태울 수 있는 대형 버스가 되고 싶었다는 거를 요즘 더 많이 깨닫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왜 노래를 하고 싶은지,
어떤 가수가 되고 싶은지,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무엇인지
이제 고통의 시간을 지나면서 찾았어요.
두려워서 도망도 가고 싶었지만, 어떻게 보면 그 두려움에 맞서는 시간을 가졌겠죠.
유레이즈미업이라는 노래 아시죠? 그거를 제가 불후의 명곡 대 불렀었는데 진짜 그때 힘든 때였거든요.
폐렴에 걸린 상태였고 그전 상태처럼 놀이를 할 수가 없어서 하기 직전까지 막 되게 고민을 했었던 것 같아요.
이걸 한다고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근데 이제 그 영상을 녹화를 하고 그냥 이제 뭐 다른 영상들처럼 올라왔겠거니 생각을 했는데
그 노래를 만드신 분이 어느 날 우리 쪽에 연락을 해오셨어요.
그 영상을 보고 곡을 주고 싶다는 말씀을 해주시는 거예요.
심지어 대사관에 전화를 하셔서 막 이렇게 연결 연결해 가지고 어렵게 연결을 하셨는데 정말 너무 신기한 거예요.
나는 내가 별로인 상태였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분이 느끼신 건 그게 아니었구나.
그래서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이 제 노래를 듣고 기교, 완벽함 이런 거를 듣고 연락을 해오신 건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마도 그 안에 숨겨진 제 아픔이 멜로디와 가사와 그런 거, 이렇게 막 녹아난 게 아닌가, 그걸 듣고 마음이 움직이신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러분들이 일을 하시면서 저처럼 때로는 힘든 때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우리에게 오히려 중요한 기회라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고통과 아픔의 시간들은요.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를 보여주는 망원경이자 현미경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보지 못했던 내 진정한 꿈을 보여주는 도구 같은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그 시간을 지나기 전에는 내가 어떤 가수가 되고 싶은지를 정확하게 몰랐던 것 같아요.
혹시 여러분이 고통과 아픔의 시간을 지나고 계신다면,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일을 통해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깊이 생각해 보시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성공을 하는 것도 진짜 물론 좋지만, 그 성공 후에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싶은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그때 해보게 되거든요.
우리 모두가 진짜 내가 원하는 꿈을 찾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여러분들 모두 다 건강하세요.
파이팅.
여러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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