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을 결실로 만드는 ‘원 모어’ 정신 | 유승민 IOC 위원, 2021-2022 한중 문화교류의 해 홍보대사 | #동기부여 #도전 #공부 | 세바시 1498회
IOC 위원회에 나가려면 회의도 영어로 다 해야 되고 그렇다고 누가 통역이 따라붙을 수도 없고,
그럼 영어 학원부터 등록을 하자.
강남역에 있는 뭐뭐 어학원에 금메달리스트인데 매일 지하철 타고 다니고 버스 타고 다니고 하면서
지금은 IOC의 관계자들이 많이 이야기를 해줍니다.
영어가 처음 왔을 때보다도 너무 자연스럽고 너무 대단하다.
취업 준비생 같은 분들, 또 학생들 어떤 목표를 갖고 도전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 한 끝 차이로 떨어졌다고 그래요.
정말 이 원모 정신으로 도전을 하신다면 다 이루실 수 있을 거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는 전 국가대표 탁구 선수이자 현재 IOC 위원 그리고 대한탁구협회장 그리고 평창 기념재단 이사장 그리고 국제스포츠전략위원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유승민입니다.
여러분 제가 지금 이렇게 보이기에는 굉장히 뭐라 그럴까 푸근해 보이고 이렇게 하는데 선수 시절에 제 별명이 뭔지 혹시 아세요? 모르시죠? 사람들이 저한테 독사라고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정말 제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 그리고 하고 싶은 일에 물불 안 가리고 무아지경에 빠져서 도전하고, 이뤄내고, 남들보다 극한의 노력을 해서 여태까지 지내왔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우리 스승님이 항상 강조하셨던 one more 정신이라는 게 있어요.
탁구가 여러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25년을 정말 이 승부의 세계에서 치열하게 살아왔는데요.
여러분들이 보시기에는 탁구가 굉장히 재미있는 스포츠 똑딱 똑딱 왔다 갔다 하면서
그리고 하기 쉬울 것 같은 하기 쉬울 것 같은 그런 스포츠로 알고 계시지만
사실 25년간 필드에서 정말 이 전쟁터에서 탁구를 친 저는 항상 매 순간이 정말 쫄깃쫄깃하고, 매 순간이 긴장이 되고 정말 매 순간이 너무 힘듭니다. (극복해 내기가)
근데 탁구가 더 매력적이고 저희 선수들한테는 힘든 건 뭐냐 하면 다 한 포인트로 승부가 갈린다라는 거예요.
정말 초집중이 된 극도의 긴장감이 있는 상태에서의 거의 비슷한 레벨의 선수들끼리 경기는 희한하게도 한 포인트로 승부가 결정이 납니다.
저의 경기가 그랬어요.
여러분들이 기억하시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 정말 세계 최강인 중국의 왕하오 선수와 붙었잖아요 결승에서
사실 저 말고 저희 팀 동료 제 부모님까지도 은메달에 만족을 하시더라고요.
이미 경기 들어가기 전에
왜?
그만큼 왕하오 선수가 강한 선수고 올림픽 때 제가 결승에 하기 전까지 6전 6패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생각하실 만하죠
근데 저는 이 한 포인트를 극복하기 위해서 정말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특히 왕하오 선수가 구사하는 이면 타법이라는 타법이 있는데,
짧게 설명을 드리면 탁구는 이 한 면만 쓰는 패널도 그립 제가 이제 그런 패널도 전용이고요.
또 양면이 있어요. 이렇게 양면을 다 쓰는 셰이크핸드 그립이 있는데
왕오호 선수는 이 패널들 그립을 잡고 뒷면에 라바를 붙여서 셰이크핸드 백핸드가 자유롭게 공격을 하는 셰이크핸드의 장점까지 페널드와 셰이크 핸드의 장점을 다 갖춘 전형을 쓰고 있었어요.
그게 이면타법이라고 하는데
전 세계에서 이면타법을 그때 당시에 완벽하게 구사한 선수가 딱 한 명 있었어요.
그게 바로 왕호 선수입니다.
그래서 저는 왕하오 선수 외에는 연습을 할 수가 없잖아요?
왕하호 선수만이 구사를 하고 있는 기술이니까.
그래서 김택수 그때 당시 코치님과 이 이면타법 굳이를 연구하기 위해서 하루에 수천 번 수만 번씩 공을 계속 때렸습니다.
그랬더니 저는 자신감이 올라오고, 이 왕야오 선수랑 딱 결승에서 붙었을 때, 이미 저는 자신이 있었던 게 뭐냐면, 이미 익숙한 거예요. 그 기술 자체가
왜?
하루에 여러분들 생각 한번 해보세요.
수천 번 수만 번 같은 거를 반복을 하다 보면 되게 익숙하거든요.
상대적으로 왕오호 선수는 뭐가 있냐?
원래 6전 6 패하는 동안에는 제가 이 와이어 선수의 이면 다포 기술에 굉장히 당황하고 흔들리고 했는데
초반부터 제가 거세게 밀어붙이니까
거기서 심리적으로 흔들리고 기술적으로 흔들리고, 그래서 제가 이길 수 있었던 겁니다.
근데 여러분들 제가 그렇게 완벽하게 준비를 했다고 해도, 그 세트마다 포인트를 보면요.
첫 세트를 제외하고 전부 다 11 : 9 , 11 : 9 , 13 : 11 , 11 : 9 , 11 : 9 전부 다 한 포인트로 결정이 났습니다.
그게 바로 탁 교의 묘미이고 제가 여태까지 강조하는 one point의 그리고 one more에 정말 부합하는 그런 결과물인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게 비단 탁구 이야기뿐만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탁구를 은퇴하고 이렇게 다양한 역할을 하다 보니까 많은 분들을 만나게 되는데요.
특히 취업 준비생 같은 분들 또 학생들 어떤 목표를 갖고 도전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 한 끝 차이로 떨어졌다고 그래요.
정말 이만큼 차이가 나서 실패 이만큼 차이나 성공이 아닌
정말 비슷한데 정말 다들 잘 준비를 하고 있는데
한 끝 차이로 떨어진 경우를 굉장히 많이 봤고 한 끝 차이로 성공한 경우를 굉장히 많이 봤습니다.
사실 금메달을 딴 이후에도 저의 도전은 계속됐습니다.
정말 이 한 포인트 차이를 또 더 극복하기 위해서 중국 본토에 제가 들어가게 됩니다.
중국은 여러분들 아시겠지만 우리나라 인구수만큼의 탁구 인구를 보유한 정말 탁구 강국입니다.
우리나라 탁구 인구 몇 명인지 혹시 아세요?
전문 체육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실업 선수까지 이 선수 등록된 선수 수가 1396명입니다.
1396명으로 정말 2천만 3천만 5천만에 되는 대군을 이기려면 그 현장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끝나고 인터뷰를 한 게 있어요.
내가 비록 이 자리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나는 최고가 아니라고 생각을 한다.
항상 세계 최강은 중국이다.
그래서 지금 끝나자마자 나는 바로 준비를 해야 된다라고 인터뷰를 한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그 중국 쓰촨 성에 있는 청두 프로팀에 가서 2년간 탁구 리그 용병으로 뛰면서 많은 귀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정말 선수들뿐만이 아니고요.
그냥 길 가다가 공원에서 탁구 치시는 분들도 너무 탁구를 잘 치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 나온 말이 중국은 라켓만 잡고 있으면 잘 친다.
그래서 긴장을 해야 된다라고 얘기를 하는데
그러다 보니까 그런 많은 인프라를 겪고 더 많은 경험담을 공유하고 싶다고 해서 새롭게 제가 도전한 게 바로 IOC 선수위원입니다.
그 IOC 위원이 정원이 115명인데요.
4개 커터가 있습니다.
개인 쿼터 그리고 NC 쿼터 국제연맹 커터 그리고 선수 쿼터가 있는데 선수 위원만 선출직입니다.
선수 위원만 선수들이 직접 뽑아요.
그래서 그만큼 선수들의 여러 가지 활동을 가장 중요시 생각하는 게 IOC이기 때문에 선수 위원이 그만큼 많은 역할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근데 선수 의원 되기 전부터 저는 안 된다라는 편견에 부딪혀야 됐어요.
왜냐 그 24명 23명의 후보자들 중에 가장 인지도가 낮고 그리고 탁구라는 종목이 그렇게 많은 선수 수를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게 선수들이 투표를 하다 보니까 저희 종목이면 저를 또 뽑아줄 수 있는 확률이 높잖아요.
근데 그런 평가를 받았습니다.
근데 저는 당선될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왜냐?
간절함이 있었고 또 이 한 표를 더 얻기 위해서 정말 제가 또 전략적으로 준비를 했거든요.
"오늘 아직 일러서 선수들은 많이 안 와서 오늘은 탐색전이 될 것 같아요.
이 IOC 그 캔디데이트 빼지가 있어요.
그 빼지를 부착하고 그리고 유인물을 받아서 이제 본격적인 선거 활동을 시작할 겁니다.
아무튼 많이 응원해 주세요.
파이팅"
정말 리우 갔는데 땡볕이었어요.
그리고 불특정 다수 그러니까 즉 1만 500명의 선수들을 대상으로 선거를 하는데 막막하더라고요.
선거를 해본 적도 없고 맨날 탁구만 치고 금메달 리스트 어디 가면은 누가 픽업 나와서 대접만 해주다가
그러면서 제가 진짜 스승님한테 배웠던 one more 정신을 통해서 한 명이라도 더 만나고 한 명이라도 더 만나고
진짜 너무 지쳐서 '이제는 그만 들어가야지' 하다가도 누가 보이면 또 가서, 저도 모르게 가서
'나 투표 좀 해줄 수 있겠니? 나는 이런 이런 사람이야'라고 한 거예요.
근데 우리 선생님이 강조한 게 있어요.
왜 one more 나?
주어진 시간이 다 끝났어요.
60분을 연습을 하면 야 1분 더 해. 60분 갔다가 너 만족해?
그렇게 되면 더 하게 되는 거거든요.
제가 그때 전체 2위로 당선이 됐는데요.
정말 표 차 수가 많이 나질 않았어요.
그때 제가 선수촌 내에서 걸은 걸음 수와 거리를 나중에 이 핸드폰에 저장이 돼 있더라고요.
저 깜짝 놀랐습니다. 하루에 25kg 미터 이상 걸었더라고요.
가장 많이 걸었던 게 3만 6700번인가 그래요 끝나고 나니까 5kg가 빠져 있어요.
근데 IOC 위원회에 나가려면 영어가 잘 돼야 되겠죠 국제기 구니 까요.
이걸 하려면 회의도 영어로 다 해야 되고 영어 뭐 그렇다고 누가 통역이 따라붙을 수도 없고,
그러면 영어가 잘 돼야 되는데 어떻게 해야 되나 해서 준비 과정에 그럼 영어 학원부터 등록을 하자.
그때까지도 그래도 얼굴이 좀 알려지고 금메달리스트인데 영어 학원에 간다는 것 자체가 조금 사실은 조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근데 과외라든가 여러 경로도 있었지만 직접 내가 가야지만 이게 더 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다라고 생각을 해서 강남역에 있는 뭐뭐 어학원에 4시간짜리 코스가 있더라고요. 인텐시브 코스가 그거부터 등록을 했습니다.
그래서 3개월을 다녔어요.
매일 지하철 타고 다니고 버스 타고 다니고 하면서 이제 거기 다니면서 공부를 이제 하고 그때 처음 문법 공부도 뭐 정상적으로 시작하게 됐고요.
정말 처음에는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이 어려웠습니다.
영어로 소통하는 것 자체가 워낙 전문 영어도 많고
근데 지금은 IOC의 관계자들이 많이 이야기를 해줍니다.
영어가 처음 왔을 때보다도 너무 자연스럽고 너무 대단하다.
이게 바로 간절함이 아닐까요?
근데 어떤 기적이 일어났냐?
그렇게 정말 발로 뛰고 선수들하고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하다 보니
거기에 저의 또 저를 지지하는 외국에 모르는 다른 종목 선수들도 생기고요.
저를 자원봉사자 같은 사람으로 착각했던 분들도 이제는 제가 왜 이 일을 하는지 느꼈습니다.
총 8년의 임기 중에 벌써 6년을 지금 제가 하고 있는데요.
이제 임기가 2년 남았는데 정말 유종의 미를 거두고자 합니다.
2024년에 2월에 또 강원도에서 뉴스 올림픽이 있죠 제 임기 중에 벌써 올림픽만 두 번을 하는데 동계올림픽만 두 번을 하는데 저한테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영광이고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입니다.
또 2019년부터는 제가 어린 나이에, 그때가 만 38세였으니까요.
대한탁구협회장도 맡고 있습니다.
올해는 탁구전용 체육관을 만들기로 약속을 한 아주 정말 의미 있는 해고요.
의미 있는 일입니다.
탁구 전용 체육관이 지어지는 게 쉬워 보여도 정말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제가 홍천군하고 이렇게 전용 체육관을 짓기로 MOU를 다 끝내고 지금 추진을 하고 있는데요.
제가 딱 홍천군 가서 채권 합시다라고 한 게 아니고
이미 네다섯 군데의 시도를 돌아다니면서 다 설명을 드리고 왜 탁구 전용채권이 필요한지
정말 탁구 전용 채권 탁구인들의 염원이고 그러다 보니까 제가 간절함에 발로 뛰어다녔고 그게 이렇게 성공으로 또 이루어진 케이스죠.
제가 운영했던 탁구 클럽에
중국의 이 탁구클럽 회원들이 왔는데 제가 물어봤어요.
저희는 보통 한 탁구클럽의 회원이 100명에서 200명 작게는 50명 미만도 있고요.
그런데 당신들 타구 클럽 회원이 몇 명입니까? 그랬더니 3천 명이 있다고 그러더라고 3천 명
사이즈 자체가 숫자가 자체가 틀려요. 숫자 자체가 틀려요.
정말 어렵다는 건 알지만 저의 간절함과 우리 선수들의 어떤 그 열정이 있으면 저는 충분히 금메달 딸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중국으로부터 배울 게 아직 많습니다.
다양한 인프라, 선수들의 기량 그리고 운영하는 시스템까지 정말 배울 점은 많은 것 같습니다.
그게 탁구 강국으로서 그래서 저는 중국과의 교류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한중 수교 30주년이기도 합니다. 중국의 MG 세대들이 K 스포츠에 관심이 아주 많다고 하는데요.
저도 한중 문화교류의 홍보 대사로서 양국의 스포츠 교류를 주선해서 대한민국을 스포츠 외교 강국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이미 경험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용병으로 탁구 선수 생활도 해봤고요.
그리고 얼마 전에는 또 베이징 동계올림픽도 다녀왔습니다.
여러분들 다 아시겠지만 2018년도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에 바로 열리는 올림픽이 베이징 동계올림픽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정말 성공적으로 개최된 올림픽
그리고 중국에서 코로나 시기지만 열렸던 동계올림픽이 다 연결이 돼 있고요.
함께 교류를 하는 게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특히 저는 제가 수천 성의 청두라는 곳을 마음의 고향 같이 느끼는데요.
그쪽에 가면 제 친구들도 많고
그런데 거기가 안타깝게도 지진이 한 번 크게 나서 많은 분들이 어려워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도 무언가를 희망을 전하고 싶어서 작게나마 이렇게 기부를 했는데
또 중국 탁구협회가 그걸 잊지 않고 저한테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수찬성에 있는 주민들 시민들이 희망을 갖기 위해서 희망 탁구대회를 자선 탁구대회를 개최하면서 또 제가 참여를 해서 거기서 또 교류도 하고 또 희망과 용기도 드렸던 경험이 있습니다.
한국과 중국이 모두 탁구 강국인 만큼
정말 교류를 통해서 양국이 발전 모델을 만든다면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생각을 하고요.
특히 올해는 좋은 기회들이 몇 번 있습니다.
바로 황조 아시안게임이 올 9월에 있고요.
그리고 바로 황조 아시안게임 끝나자마자 세계탁구선수권 대회가 청두에서 있습니다.
제가 마음의 고향이라고 말씀드린 청두에서 있기 때문에
그런 경험들을 토대로 함께 교류를 하고
또 평창 올림픽과 베이징 올림픽의 성공 사례를 통해서 그 역할을 제가 양국 교류의 중심에 서 한다면
그것만큼 뿌듯하고 양국이 발전되는 모델을 만들 수 있는 기회는 정말 없을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2024년에는 대한민국 부산에서 대한민국 최초로 세계 탁구선수권대회가 열립니다.
탁구 강국이지만 세계 탁구선수권 대회는 중국이 7번 일본이 8번 저희는 처음입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통해서 정말 북한도 저희가 초청을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고요.
또 여러분들 핑퐁에도 아시겠지만 이 작은 공 하나가 양국의 진짜 이 브리지 역할을 하면서 정말 세계 평화의 메시지를 주는 정말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들도 다 꿈이 있으시죠?
그리고 중요한 도전을 항상 앞두고 계실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매 순간이 도전이잖아요?
정말 이 one more 정신으로 모든 것을 도전을 하신다면 다 이루실 수 있을 거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결정적인 때 딱 한 포인트 한 포인트가 여러분들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니까요.
one more 정신 한 포인트를 극복하는 여러분이 되셔서 꼭 승리하시길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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