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규정하는 틀에서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는 방법 | 안시연(Siloe Anzardi) 모델, 배우 | #정체성 #심리 #관계 | 세바시 1501회
이 세상의 그 어느 곳에도 나의 자리가 없다는 것
나를 찾고 있는 사람도 없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도 없다는 것은
어 그걸 느꼈을 때 그 시기가 가장 힘들고 가장 치명적인 시기가 될 수도 있다는 거죠.
슬프게도 우리 사회는 저절로 자연스럽게 소속감을 주는 곳은 아닙니다.
가정, 학교, 직장 지금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느낌이 든다면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25살 한국 이름은 안시현 프랑스 이름은 실로의 어사 지라고 합니다.
저는 어머니는 한국분이시고 아버지는 프랑스 분이셔서 다문화 가정에서 자랐는데요.
어렸을 때부터 연기와 예술이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2015년도 3월달에 당시 16살인 어린 나이에 한국으로 혼자서 오게 됐는데요.
그때 서울 공연예술고등학교라는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 한국으로 혼자서 이민을 오게 됐습니다.
그런데 상상하지도 못한 현실에 부딪혔습니다.
새로운 세상에 혼자 도착한 저는 첫날부터 많은 학생들의 관심거리가 됐던 거죠.
'어 외모는 조금 다른데 어 한국말은 잘하네?'
이러면서 공부하는 저를 옆반에서 많은 친구들이 보러 왔었는데요.
아직도 그 창문에 많은 얼굴들이 저를 보고 있는 게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별명이 생겼습니다.
바로 안시현이 아니라 일명 '프랑스 양아치'라고 불리게 됐습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다른 문화였어요.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웠는데 제가 사실 이 넓은 한국을 이해를 못 했던 거죠.
어 또 저희 학교는 예술계라서 개인 집합부터 시작해서 막 선배님 이제 보면은 '다나까' 저 하나도 모르는 '다나까'로 90도 인사하면서 인사를 매번 해야 됐고 어 그렇게 보수적이고 한국적인 학교였는데 그러다 보니까 오해들도 많이 생기기도 하고 어 어느 순간부터 저를 이해해 주려는 그런 뭔가 다른 시선들이 생겨났지만, 그런 시선들도 저는 역시나 싫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서로 소통을 포기하게 되고,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저를 친구들은 그냥 쉽게 '프랑스 양아치' 프랑스 양아치라서 그러는 거야 어 얘 그냥 둬요.
얘 그냥 프랑스 양아치라서 그래요.
아예 진짜 선생님들한테까지 이렇게 설명을 하면서 저를 설명하게 하게 됐던 거죠.
그렇게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 일주일이 되고 그리고 일주일이 2년이 됐는데 2년 동안 저에게 대화를 시도하는 사람 한 명도 없이 혼자서 보내게 됐습니다.
사실 프랑스는 다문화 사회, 개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프랑스에서 저는 제가 항상 평범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았어요.
근데 한국에 오게 되니까 처음으로 제가 특이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됐는데요.
'어 내가 다른가? 아 내가 다르네'
라는 생각이 계속 들면서 정체성 혼란이 시작이 되었었던 거죠.
그 뒤로 학교 문화에 적응도 못하고 공부도 또 따라가기는 너무 어렵고
막 들어오자마자 진짜 한국말 한 번도 안 배워봤는데 수능을 치라고 하니까
그리고 또 주변에서는 계속 신기하다는 반응 매번 똑같은
"외국인이에요 한국 말 잘하네요 한국에 왜 왔어요?"
라는 질문에 저는 지치기 시작했어요.
다른 친구들과 분리가 되다 보니 결국 나의 소속감을 못 찾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한국말을 잘 하지만 마음을 나눌 수 없고, 진짜 소통이 불가능한 애로 보이게 됐고
학교 생활을 혼자 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소외된 제가 할 수 있는 건 학생들이 노는 시간이든 아니면 수업 시간이든 그냥 잠만 자는 것이었습니다.
나 혼자만 이 집단에 소속되지 못하는 이 외로움 그리고 이 소외감 많은 분들도 느껴보셨을 것 같은데요.
비슷한 상황이 아니어도 학교든 직장이든 이민이든 아마 저와 비슷한 경험을 가져보신 분들도 소속감을 못 느끼는데 정말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마 잘 아실 거예요.
사실 소외감을 경험하게 된 것은 한국 오기 전부터였습니다.
어릴 적에 아무도 모르는 이유 때문에 학교에서 말을 너무 안 한다고 선생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었거든요.
그래서 어머니한테 전화하셔서 이거 상담 받으러 가야 되는 거 아니냐고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할 정도였는데요.
태어나서부터 두 언어를 동시에 배웠기 때문에 말도 조금 늦게 하게 되고, 성격도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로 성장을 하게 됐습니다.
수업 동안에 화장실 가고 싶다고 아니면은 선생님 글씨가 너무 안 보인다고 손을 못 들을 정도였어요.
하지만 저는 감정이 사실은 너무 풍부한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말을 잘못 하는 저에게는 그 감정을 표출하고 제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새로운 통로가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그때 발견한 것은 예술이었습니다.
예술을 통해 저를 표현하기 시작했었던 거죠.
그리고 먼저 무용 그리고 연기를 하게 됐습니다.
단순히 말이 아닌 나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다른 방법을 찾으며, 나의 감정이 안정적인 선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었던 거죠.
그렇게 연기를 향한 관심이 저를 한국까지 오게 했었던 거고,
대학교 진로를 정하는 과정에서 저는 예술 치료에 대해서 알게 되었어요.
그중에서도 연기 치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어 그동안 계속 예술을 통해 그리고 연기를 통해 치료를 경험했던 저에게는 엄청난 발견이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혼자서 아 나는 그냥 예술을 통해 나만의 힐링법을 찾은 거야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사실은 진짜 예술 치료라는 전공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연기 치료를 더 정확하게 배우고 저와 비슷한 다른 사람들에게 치유의 경험을 주기 위해서 한국에서 1년을 대학교를 다니고 미국으로 편입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또 한 번 정체성에 대한 제 질문에 해답을 얻었는데요.
미국에서 심리 치료를 공부하면서 참 신기했던 점은 사람을 부를 때 단어 선택에 대한 신중함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disabled person이 아닌 person with a disability라고 얘기를 했는데요.
장애인이 아니라 장애가 있는 사람이다라고 얘기를 했던 거예요.
이 사람의 장애보다 이 사람이 더 다양한 정체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를 했던 거죠.
장애가 그 사람의 정체성이 되어 버리면 편견과 카테고ization 범주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걸로 인해 사회에서 소외가 되기 때문에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생각보다 중요한 노력이었습니다.
그런 고민 없이 저를 그냥 '프랑스 양아치'라고 부른 친구들은 저를 그 말로 가지고 오해하게 했었다는 거를 아마 몰랐을 거예요.
연기 치료도 이때 배웠는데요.
다른 예술 치료보다 더 마음에 들었던 점이 있었습니다.
연극은 움직임, 음악 등 많은 예술을 종합하기도 했지만 말을 해야 하는 유일한 예술이기도 했어요.
연기 치료를 배우면서 교수님께서 하셨던 말이 마음속에 박혀 있는데요.
'연기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살아보면서 나의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연기를 통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면서 나의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는 거죠.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그 누구도 저에게 말을 하는 방법, 표현을 하는 방법, 전달, 제 감정을 전달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었어요.
그래서 정체성 혼란이 오고 좋은 소속감이 필요할 때, 저는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던 거고, 제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던 거예요.
연기를 통해서 항상 제가 힘들어 했던 목소리를 올바르게 내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던 거죠.
또한 연기 치료는 1:1 치료로도 이뤄지지만, 연기 특성상 '그룹 테라피' 팀으로도 진행이 되는데 제게는 아주 큰 도움이 됐습니다.
safe circle 안정감을 느끼는 서클 정말 중요했는데요.
그 그룹에서 소속감을 느낀다는 것, 각자 해야 할 일, 각자 자리에 정말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작은 사회의 경험을 만드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그때 깨닫게 됐습니다.
사람은 소속감을 느낄 때 정신적으로 가장 건강하다는 것을
이 세상의 그 어느 곳에도 나의 자리가 없다는 것, 나를 찾고 있는 사람도 없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도 없다는 것은
그걸 느꼈을 때 그 시기가 가장 힘들고 가장 치명적인 시기가 될 수도 있다는 거죠.
저는 연기 치료를 받고 많이 달라졌습니다.
항상 그냥 동의합니다 알겠습니다 하거나, 아니면 마음에 안 들면 잠수를 타버렸던 저는
처음으로 제 생각과 감정을 설명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자신감이 없었던 영어로도 더 긴 대화를 하게 되고, 더 깊은 관계를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생각보다 세상에 혼혈, 다문화 가정, 외국 생활 등 소속감을 느끼기 어려워하는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꼭 국적 정체성 문제가 아니더라도, 아직 취업을 못했다거나 아니면 원하는 학교를 못 들어갔다거나
아니면 가족 환경이 그렇게 화목하지 않거나 하는 삶의 불안을 가져다주는 문제들도 소속감의 문제라고 할 수가 있는 것 같아요.
슬프게도 우리 사회는 저절로 자연스럽게 소속감을 주는 곳은 아닙니다.
쉽지 않겠지만 일단 행복해지려면 소속감을 느끼는 곳을 먼저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많은 분들이 동아리나 공동체를 무의식적으로 많이 찾아가죠.
어떤 곳에 소속이 되어 있을 때 심리적인 안정감을 세이프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에요.
좋은 소속감이 바르게 정체성을 갖고 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그래도 가정, 학교, 직장, 내가 살고 있는 나라 등 지금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느낌이 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고등학교 이후로 너무 다르고 다양한 그룹에 소속이 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어려움을 느꼈어요.
다양한 그룹에 있을 때 제 성격이 매번 달라지는 거예요.
그래서 되게 혼란스러운 적들이 많았는데요.
이 그룹에 있을 때는 되게 수줍은 사람인데,
이 그룹에 있을 때는 되게 즉흥적인 사람이고,
또 이 그룹에 있을 때는 되게 스마트한 이미지고, 매번 거의 뭐 다른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었죠.
그래서 저랑 비슷한 삶을 살아온 지인에게 고민을 얘기했던 적이 있어요.
진짜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이런 얘기를 하니까 지인이 대답을 아주 단순하게 해 주는데요.
그것도 너고 저것도 너야. 항상
내 자신을 무의식적으로 어떠한 카테고리에 넣으면서 정체성을 찾아가려고 했던 저에게는 그 말이 신기하게 자유를 주는 말이었어요.
한 곳에만 속해 있을 필요가 없다.
내 안에 다양한 나의 모습을 제 자신이 먼저 인정해야 되더라고요.
다양한 나를 가장 잘 알고, 내 자신이 인정했을 때 진짜 정체성을 갖게 됐습니다.
또한 주변에서 저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인정해 주는 목소리들이 제게는 참 큰 도움이 됐어요.
갈수록 저는 다양한 저를 인정하고 다양한 공간에 주저 없이 가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성장할 기회도 많아졌습니다.
좋은 소속감을 가질 기회가 있다 보니 이후의 정체성도 더 뚜렷해지며 자신감을 갖게 되고.
어디를 가도 누구를 만나도 나로서 따로서 행동을 하고 생각을 하고. 나의 가치관을 따라 살 수 있있었던 거죠.
위축이 되거나 정체성 혼란 없이, 나로서 어떻게 대해도 상대방이 저를 저 그대로 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되니까
자유롭고 솔직하게 됐던 것 같아요.
이제는 자신 있게 친구들에게 다가가면서 안 좋은 추억을 뒤로하게 됐습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사람과 사람을 소개해 주는 주선저 역할도 맡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제가 소개해 준 친구들끼리도 다 같이 만나고 있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여행을 함께 가고 꾸준히 만나는 친구들도 생기고,
예전에는 어떤 관계도 그냥 옆에서 따라가는 역할이었는데, 이제는 주도하고 제안을 합니다.
친구와 함께 있을 때 잘 모르는 사람이 "어? 외국인이세요?"라고 하거나
아니면 제가 그냥 혼자서 어 저 외국인이라서 나 외국인이라서 안 돼 이렇게 얘기하면,
오히려 제 친구들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네가 뭐가 외국인이야 너 누구보다 한국인이야"
이렇게 대답해 줘서 정말 감사하죠.
이처럼 올바른 정체성을 가지려면 주변 사람들의 무심하지만 응원해 주는 몇 마디 정말 큰 힘과 도움이 됩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생겼어요.
여행을 가려고 공항에 들어가서 티켓을 끊으려고 하는데, 저희는 외국인이니까 세 글자가 아니잖아요 그 이름이.
그래서 그 기계에서 티켓을 끊는 게 너무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저는 당연히 너무 자연스럽게 기계가 아닌 사람한테 가니까 오히려 그 직원분이 저한테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이렇게 한국말을 잘하는데 뭐가 외국인이에요. 충분히 기계에서 뽑을 수 있어요. 같이 해봐요."
이런 말을 해 주시는 거예요.
항상 저도 제 자신을 너무 익숙하게 외국인으로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한번 제 진짜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정말 감사한 말이었죠.
그날 이후로 혼자서 자신 있게 기계에서 표를 잘 뽑기도 합니다.
이렇게 인종이나, 국적이 아니라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사람들이 늘어갈 때마다, 더 당당하게 어 쉽게 정체성 혼란에서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문화적인 배경을 가진 분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인종이나 국적, 언어 이런 요소들을 넘어서 있는 그대로 봐주시고, 저를 정체성 혼란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던 말들 인정하고, 응원하는 말들, 제 마음 깊숙이 남고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가끔씩 뭐 양아치 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프랑스 양아치는 아닙니다. 그냥 프랑스 양아치는 아닙니다.
한 때 모델이자 방송인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동생, 누군가의 언니 또 누군가에는 누나로서 한 가족에 속해 있고
또 어떤 대학교 그룹에서도 어떤 프랑스인 공동체에서도 다양한 곳에서 때로는 수줍고 때로는 여유로운, 때로는 엄격한 저를 만날 수 있습니다.
매일 더 다양해지는 여러 곳에 갖게 되는 나의 소속감, 나의 정체성 그냥 나라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세바 씨의 강연자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여러분과 함께 하게 돼서 정말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